만주어 만문노당 409부-심양으로 약탈 온 칼카몽고 vs 8기몽고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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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buceki sembi seme henduhe manggi. jang ciowan be futa i tatame wafi. giran be icihiyaha.

부처키 섬비! 서머 헌두허 망이. 장 쵸완 버 푸타 이 타타머 와피. 기란 버 이치햐하.
죽고자 한다! 하며 말한 뒤에. 장 전 을 밧줄 로 당기며 죽이고. 시신 을 처리하였다.


○ juwan uyun de. kalka i joriktu beile i gurun. darhan baturu i gurun. bagadarhan i gurun. barin i sirhvnak i gurun.

○ 주완 우윤 더. 칼카 이 조맄투 버이러 이 구룬. 다르한 바투루 이 구룬. 바가다르한 이 구룬. 바린 이 시르훠낰 이 구룬.

○ 10 9 에. 칼카 의 조맄투 버이러 의 부족. 다르한 바투루 의 부족. 바가다르한 의 부족. 바린 의 시르훠낰 의 부족.


simiyan i hecen be gaiha be donjifi.

시먄 이 허천 버 가이하 버 돈지피.

심양 의 성 을 취함 을 듣고서.


ulin jeku aika tetun be gaiki seme juwe ilan minggan niyalma. morin. temen. ihan. sejen i jihengge be.

울인 저쿠 아이카 터툰 버 가이키! 서머 줘 일안 밍안 냘마. 모린. 터먼. 이한. 서전 이 지헝어 버.

재물 식량 모든 그릇 을 취하자! 하며 2 3 천 사람. 말. 낙타. 소. 수레 로 온것 을.


jakvn gvsai nuktere monggo be simiyan i hecen de jeku isabu seme werihe bihe.

자퀀 궈사이 눜터러 몽오 버 시먄 이 허천 더 저쿠 이사부! 서머 워리허 비허.

8 기의 유목할 몽고 를 심양 의 성 에 식량 모이게하라! 하며 남겨 있었다.


tere jihe kalka i monggo be boxofi. ilan tanggv ihan. orin morin. duin temen gaiha.

터러 지허 칼카 이 몽오 버 보쇼피. 일안 탕우 이한. 오린 모린. 두인 터먼 가이하.

그 온 칼카 의 몽고 를 뒤쫓고. 3 100 소. 20 말. 4 낙타 취했다.


gvsin niyalma jafafi. ninggun niyalma be bithe jafabufi sindafi unggihe.

궈신 냘마 자파피. 닝운 냘마 버 빝허 자파부피 신다피 웅이허.

30 사람 잡고서. 6 사람 을 글 잡게하고 놓아서 보냈다.


gvwa be

궈와 버

그밖 을





    죽고자 한다!>

하며 말한 뒤에 장전을 밧줄로 당기며 죽이고 시신을 처리하였다.

○ (1621년 3월) 19일에 칼카의 조맄투 버이러의 부족,

다르한 바투루의 부족, 바가다르한의 부족, 바린의 시르훠낰의 부족이

심양성을 (후금이) 취함을 듣고서 

   <재물과 식량 및 모든 그릇을 취하자!>

하며 2~3천 사람이 말, 낙타, 소, 수레로 온 것을

8기의 유목할 몽고를 

   <심양성에 식량 모이게 하라!>

하며 남겨 있었다.

그 온 칼카의 몽고를 뒤쫓고 300마리 소, 20마리 말, 4마리 낙타 취했다.

30명을 잡고서 6명을 글 잡게 하고 놓아서 보냈다.

그밖을


요약.

1621년 3월 20일 요양성 함락 후 순안어사 장전은 홍 타이지의 투항 권고를 재차 마다한다.

이에 결국 장전은 처형당하고 홍 타이지는 장례를 치러준다.

이달 19일에 몽고 칼카의 조맄투, 다르한, 바가다르한, 시르훠낰

심양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약탈을 위해 2~3천 명을 보낸다.

이때 심양성에는 후금에 내투한 8기의 유목 몽고인들이 심양성 주변에서

식량을 끌어모으기 위해 남아 있었는데 칼카 부족민들을 보고 공격하여

30명을 사로잡아 6명에게 서신을 쥐여주고 나머지는 모두 죽였다.


-410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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