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410부-조선 임금아 네 맘대로 해라! 더 이상 말 않겠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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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mini gaiha babe. si ainu nungnembi seme gemu waha.

미니 가이하 바버. 시 아이누 눙넘비? 서머 거무 와하.

나의 취한 땅을. 너 어찌하여 침해하느냐? 하며 모두 죽였다.


○ orin emu de. amaga aisin gurun i han. solho han de bithe unggirengge.

○ 오린 어무 더. 아마가 아이신 구룬 이 한. 솔호 한 더 빝허 웅이렁어!

○ 20 1 에. 후 금 국 의 한. 고려 한 에 글 보낸것!


suwe nikan de kemuni cooha dambi seci. da.

숴 니칸 더 커무니 초오하 담비 서치. 다!

너희 한족 에 다시 군대 돕는다 하면. 도와라!


darakv seci. giyang be doome genehe nikan be gemu amasi bederebu.

다라쿠 서치. 걍 버 도오머 거너허 니칸 버 거무 아마시 버더러부!

돕지않게 되면. 강 을 건너며 간 한족 을 모두 뒤로 돌려보내라!


te liyoodung ba i nikasa be warakv gemu ujifi uju fusifi.

터 료오둥 바 이 니카사 버 와라쿠 거무 우지피 우주 푸시피.

지금 요동 땅 의 한족들 을 죽이지않고 모두 돌보고 머리 밀고.


fe kemuni hafasa de hergen bufi ujimbi.

퍼 커무니 하파사 더 허르건 부피 우짐비.

지금 다시 관리들 에 관직 주고 돌본다.


suwe nikan de geli cooha dafi. jai minde ume hendure.

숴 니칸 더 걸이 초오하 다피. 자이 민더 우머 헌두러!

너희 한족 에 또 군대 도와서. 다시 나에게 말아라 말하지.


suweni solho. tondo gurun.

숴니 솔호. 톤도 구룬!

너희의 고려. 공정한 나라!


suweni sarkv aibi. suweni ciha dere.

숴니 사르쿠 아이비? 숴니 치하 더러.

너희가 모르고 어찌하느냐? 너희의 뜻 인것이니라.


○ orin ninggun de. hai jeo i tofohon niyalma dahame jihe.

○ 오린 닝운 더. 하이 저오 이 토포혼 냘마 다하머 지허.

○ 20 6 에. 해 주 의 15 사람 항복하며 왔다.


tere tofohon niyalma be gaifi.

터러 토포혼 냘마 버 가이피.

그 15 사람 을 취하고.


*fusimbi[푸심비] : 깎다, 밀다.

*hai jeo[하이 저오] : 해주(海州), 지명.





나의 취한 땅을 너(몽고 칼카 부족민) 어찌하여 침해하느냐? 하며 모두 죽였다.

○ (1621년 3월) 21일에 후금국의 한(누르가치)이 고려 한(광해군)에게 글 보낸 것!

   <너희가 한족에 다시 군대 돕는다 하면 도와라!

    돕지 않게 된다면 (압록)강을 건너며 간 (요동) 한족을 모두 뒤로 돌려보내라!

    지금 요동 땅의 한족들을 죽이지 않고 모두 돌보고 머리 밀고

    지금 다시 관리들에 관직 주고 돌본다.

    너희가 한족에 또 군대 도와서는 다시 나에게 말하지 말아라!

    너희의 고려는 공정한 나라다!

    너희가 모른다면 어찌하겠느냐? 너희의 뜻인 것이니라.

○ (1621년 3월) 26일에 해주의 15명이 항복하며 왔다.

그 15명을 취하고


요약.

1621년 3월 19일에 심양성에 약탈 온 몽고 칼카 부족민 2~3천 명을 팔기군 소속의 몽고군이 공격하여 쫓아낸다.

30명을 사로잡고 24명을 처형하고 6명을 풀어 보냈다.

3월 21일 누르하치는 마침내 조선에 최후통첩을 보낸다.

심양과 요양성 함락으로 많은 요동 한족들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도주하였는데

누르하치는 광해군에게 중립의 나라라면 도주한 한족을 모두 돌려보내라 말한다.

만약 계속 명나라를 돕게다면 마음대로 할 것이며 다시는 후금에 사신을 보내지 말라 경고한다.

특이한 것은 최초로 후금국이 만문노당에 기록된 점이다.


*최초로 만문노당 1621년 3월 21일에 기록된 후금국 기록

 만주어 아마가 아이신 구룬[amaga aisin gurun]


-41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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