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4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80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738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http://cafe.naver.com/booheong/158759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http://cafe.naver.com/booheong/159115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9124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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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10일

○庚戌和碩睿親王多爾袞多羅貝勒豪格等率左翼軍來會奏稱。我軍既入朝鮮境長山昌州城軍民。知不能禦。

皆棄城奔山立寨我正白鑲白正藍三旗護軍騎兵。攻克之值朝鮮安州總兵黃州元帥率兵五百出寧邊城。

臣等親軍敗之於城下又安州兵二百。亦為臣等護衛所敗尋寧邊城李元帥率參將三員。遊擊四員備禦十五員率馬兵七百。

步兵三百來戰為蒙古固山額真額駙蘇納。梅勒章京吳塔齊宜木圖陶海得馨德阿蘭都。昂阿代吳巴什額墨爾齊古魯虎桑噶爾寨等所敗。

生擒李元帥時我軍五十人。至宣屯村於朝鮮下營處捉生問之云彼元帥與黃州總兵聞伊國王為大軍所圍率兵一萬五千前往

救援已去三日是夜即選鑲白旗正藍旗兩旗護軍騎兵每牛彔下甲士五名蒙古兩旗每牛彔下甲士五名行一晝夜至日出。

追及之乘其未覺。遂擊敗之至於率兵擊敵則鑲白旗梅勒章京薩穆什喀護軍參領陳泰崇阿正藍旗梅勒章京席爾都。

護軍參領俄羅塞臣宜成格蒙古梅勒章京吳塔齊正藍旗候痕巴圖魯額參等也

○경술일(庚戌)에,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 다이곤(多爾袞)과 다라패륵(多羅貝勒) 호격(豪格) 등(等)이 

좌익군(左翼軍)을 인솔(率)하여 내회(來會/와서 만남)하였다.

주칭(奏稱/아뢰어 일컬음)하길,

   <아군(我軍)이 이윽고 조선(朝鮮) 지경(境) 장산(長山)과 창주(昌州) 성(城)에 들어가니,

    군민(軍民/군과 백성)이 방어(禦)가 불능(不能)함을 알고, 

    모두 기성(棄城/성을 버림)하고 분산(奔山/산으로 달아남)하여 입채(立寨/목책을 세움)하였습니다.

    우리 정백(正白), 양백(鑲白), 정람(正藍) 3기(旗)의 호군(護軍/바야라군)과 기병(騎兵)이 공격(攻)하여 

    극(克/함락함)하였습니다.

    그 즈음 조선(朝鮮) 안주총병(安州總兵)과 황주원수(黃州元帥)가 병(兵) 500을 인솔(率)하여 영변성(寧邊城)을 나왔는데,

    신(臣) 등(等)의 친군(親軍)이 성하(城下)에서 패(敗/깨트림)하였고,

    또한 안주(安州)의 병(兵) 200 역시(亦) 신등(臣等)의 호위(護衛)로 하여금 패(敗/깨트림)하였습니다.

    잇달아 영변성(寧邊城) 이원수(李元帥)가 참장(參將) 3원(員)과 유격(遊擊) 4원(員)과 비어(備禦) 15원(員)을 인솔(率)하고,

    마병(馬兵/기병) 700과 보병(步兵) 300을 인솔(率)하여 내전(來戰/싸우러 옴)하였는데,

    몽고(蒙古) 고산(固山) 액진(額真) 액부(額駙) 소납(蘇納)과 매륵(梅勒) 장경(章京) 오탑제(吳塔齊), 

    의목도도해(宜木圖陶海), 득형덕(得馨德), 아란도(阿蘭都), 앙아대오(昂阿代吳) 파십(巴什), 

    액묵이제(額墨爾齊) 고로호(古魯虎), 상갈이채(桑噶爾寨) 등(等)이 패(敗/깨트림)하였고,

    이원수(李元帥)를 생금(生擒/생포)하였습니다.

    이때 아군(我軍) 50인이 선둔촌(宣屯村)에 이르렀는데,

    조선(朝鮮)이 하영(下營/군영을 떠남)한 곳에서 착생(捉生/적의 백성을 포로로 삼아 심문하는 행위)하여

    심문(問)하니 말하길

    저쪽 원수(元帥)가 황주총병(黃州總兵)과 함께 그들 국왕(國王)이 대군(大軍)에 의해 

    포위(圍)되었다는 것을 듣고는, 병(兵) 1만 5천을 인솔(率)하여 구원(救援)하기 위해 

    전왕(前往/앞으로 감)하여 이미(已) 간지 3일이라 하였습니다.

    그 밤에 곧 양백기(鑲白旗) 정람기(正藍旗) 양기(兩旗)의 호군(護軍/바야라)과 기병(騎兵),

    매(每) 우록(牛彔)의 예하(下)의 갑사(甲士) 5명, 

    몽고(蒙古) 양기(兩旗)의 매(每) 우록(牛彔) 예하(下) 갑사(甲士) 5명을 선발(選)하여,

    하루 주야(晝夜/밤낮)를 행군(行)하여 일출(日出/해가 뜸)에 이르러 추급(追及/뒤쫓아서 따라붙음)하여,

    그 미각(未覺/알아채지 못 함)을 틈타, 마침내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습니다.

    솔병(率兵/병을 인솔함)하여 격패(擊敵/공격하여 깨트림)한 자들을 말하자면,

    곧 양백기(鑲白旗) 매륵장경(梅勒章京) 살목십객(薩穆什喀)과 호군참령(護軍參領) 진태숭아(陳泰崇阿),

    정람기(正藍旗) 매륵장경(梅勒章京) 석이도(席爾都)와 호군참령(護軍參領) 아라새신의성격(俄羅塞臣宜成格),

    몽고(蒙古) 매륵장경(梅勒章京) 오탑제(吳塔齊)와, 정람기(正藍旗) 후흔파도로(候痕巴圖魯) 액참(額參) 등(等)이옵니다.>


○是日、多羅安平貝勒杜度等護送紅衣礮將軍礮、火藥重器等車至。奏言、初六日、遣人往視臨津江渡口回報云冰已盡解。

即步行亦難。臣意此非架橋之時輜重何由得渡心甚憂之。及將至渡口之前一夜。天氣清朗。忽然陰翳。雨雪交作寒甚。

冰既泮復凝正月初七日。至臨津江向以徒步不可行者數萬軍士。坦然徑渡矣

上曰禎祥洊至。皆天意也

○이날에, 다라(多羅) 안평패륵(安平貝勒) 두도(杜度) 등(等)이 홍의포(紅衣礮)와 장군포(將軍礮) 및

화약(火藥) 중기(重器) 등(等)의 차(車/수레)를 호송(護送)하여 이르렀다.

주언(奏言/아뢰어 말함)하길

   <초(初) 6일에, 견인(遣人/사람을 보냄)하여 임진강(臨津江) 도구(渡口/나루터)를 왕시(往視/가서 봄)하게 하였는데,

    회보(回報/돌아와서 보고함)하여 말하길 얼음이 이미(已) 모두 녹아,

    곧 보행(步行) 역시(亦) 난(難/어려움)하다 하였습니다.

    신(臣)의 생각에 이는 가교(架橋/다리를 놓음)의 때가 아니라면 

    치중(輜重/군수품)을 어떤 도리로 득도(得渡/건넘을 얻음)하겠는가? 하며 

    마음이 심히(甚) 우(憂/근심함)하였습니다.

    도구(渡口/나루터)의 앞에 이르러 하룻밤을 보내니, 천기(天氣)가 청랑(清朗/맑음)하였는데,

    홀연히(忽然) 음예(陰翳/하늘에 구름이 덮여 어두움)하였고, 

    우설(雨雪/눈과 비)이 교작(交作/썪여 내림)하여 한심(寒甚/매우 추움)하였고,

    얼음이 이윽고 반(泮/물가)이 복응(復凝/다시 얼어붙음)하였습니다.

    정월(正月) 초(初) 7일에, 임진강(臨津江) 방향(向)에 이르러 

    도보(徒步)로 건너지 못하던 수만(數萬) 군사(軍士)가 탄연(坦然/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음)하게 

    경도(徑渡/가로질러 건넘)하였나이다.>

상(上/임금, 청 태종)이 말하길

   <정상(禎祥/상서로운 조짐)이 천지(洊至/연거푸 이름)하였으니, 모두 천의(天意/하늘의 뜻)이로다!>


*도르곤+호오거의 팔기 좌익군 진군상황
병자호란 조선의 첫 반격과 청 좌익군 진군로 http://cafe.naver.com/booheong/157631

*홍 타이지의 조선 백성 착생(捉生) 금지령

 : 병자호란 당시 홍 타이지는 선봉대와 정찰부대 이외의 팔기군 병사는 누구라도

   조선 백성을 포로로 잡는 행위를 금하게 하였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7162


*하늘의 뜻인가? 임진강이 때맞춰 얼다!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 다이곤(多爾袞)
 : 누르하치의 14남 도르곤[dorgon]의 봉작 호쇼이 머르건 친왕[hoxoi mergen cin wang]
*다라패륵(多羅貝勒) 호격(豪格)
 : 홍 타이지의 1남 호오거[hooge], 도로이 버이러[doroi beile], 
   원 봉작명은 호쇼이 파풍아 친왕[hoxoi fafungga cin wang], 화석 숙(肃)친왕.
*다라(多羅) 안평패륵(安平貝勒) 두도(杜度)
 : 추옝의 1남 두두[dudu], 도로이 얼어훈 버이러[doroi elehun beile].

<청나라 좌익과 우익+본군의 진군로>


<영변 철옹산성 공방전 도르곤+호오거 vs 신경원>




<조선 도원수 김자점군의 이동로>





○1637년 1월 10일에 화석예친왕(호쇼이 머르건 친왕) 다이곤(도르곤)과 다라패륵(도로이 버이러) 호격(호오거) 등이 
좌익군을 인솔하여 와서 만났다.
아뢰어 말하길
   <아군이 이윽고 조선 땅 장산과 창주성에 들어가니 조선군과 백성들이 방어가 불능함을 알고 
    모두 성을 버리고 산으로 달아나 목책을 세웠습니다.
    우리 정백, 양백, 정람 3기의 호군(바야라군)과 기병이 공격하여 함락하였습니다.
    그 즈음 조선 안주총병(유림)과 황주원수(김자점)가 병력 500을 인솔하여 영변성(철옹산성)을 나왔는데 
    신등의 친위군이 성 아래에서 깨트렸고 
    또한 안주의 병력 200 역시 신등의 호위군으로 하여금 깨트리게 하였습니다.
    잇달아 영변성 이원수가 참장 3명, 유격 4명, 비어 15명을 인솔하고 기병 700과 보병 300을 인솔하여 싸우러 왔는데
    몽고 고산액진(궈사 어전/기주) 액부(어푸/사위) 소납과 매륵장경(머이런 장긴) 오탑제, 의목도도해, 득형덕, 
    아란도, 앙아대오 파십(밬시), 액묵이제 고로호, 상갈이채 등이 깨트리고 이원수를 생포하였습니다.
    이때 아군 50인이 선둔촌에 이르렀는데 조선군이 떠난 곳에서 
    착생(적의 백성을 포로로 삼아 심문하는 행위)하여 심문하니 말하길
    저쪽 원수(김자점)가 황주총병과 함께 그들 국왕이 대군에 의해 포위되었다는 것을 듣고는 
    병력 1만 5천을 인솔하여 구원하기 위해 앞으로 간지 이미 3일이라 하였습니다.
    그 밤에 곧 양백기와 정람기 양기의 호군(바야라)과 기병, 매 우록(니루)의 예하의 갑사 5명씩,
    몽고 (양백, 정람) 양기의 매 우록 예하 갑사 5명씩을 선발하여,
    하루 밤낮으로 행군하여 해가 뜰 때쯤 뒤쫓아서 따라붙어 그들이 알아채지 못한 틈을 타서 마침내 공격하여 깨트렸습니다.
    병력을 인솔하고 공격하여 깨트린 자들을 말하자면
    곧 양백기 매륵장경 살목십객과 호군참령 진태숭아,
    정람기 매륵장경 석이도와 호군참령 아라새신의성격,
    몽고 매륵장경 오탑제와 정람기 후흔파도로 액참 등이옵니다.>

○이날에 다라(도로이) 안평패륵(얼어훈 버이러) 두도(두두) 등이 홍의포와 장군포 및 화약 중병기 등의 수레를 
호송하여 이르렀다.
아뢰어 말하길
   <초 6일에 사람을 보내 임진강 나루터를 가서 보게 하였는데 돌아와 보고하여 말하길
    얼음이 이미 모두 녹아 곧 걸어서 건너기가 또한 어렵다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 이는 다리를 놓지 않고서는 치중을 어떤 도리로 건널 수가 있겠는가? 하며 마음이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나루터 앞에 이르러 하룻밤을 보내니 하늘이 맑았는데 홀연히 구름이 덮이고 어두워졌고
    눈과 비가 썪여 내려 매우 춥게 되었고 얼음이 이윽고 물가에 다시 얼어붙었습니다.
    정월 초 7일에 임진강 방향에 이르러 도보로 건너지 못하던 수만 군사가 모두 아무 걱정 없이 강을 가로질러 건넜나이다.>
상(임금, 청 태종)이 말하길
   <상서로운 조짐이 연거푸 이뤄졌으니 모두 하늘의 뜻이로다!>

요약.
팔기 좌익군을 이끌고 1636년 12월 8일 조선 벽동으로 침입한 도르곤과 호오거
1637년 1월 10일 남한산성의 홍 타이지 본대에 합류한다.
도르곤은 그간의 전투 상황을 보고한다.
좌익군 정백, 양백, 정람 만주+몽고 3기로 이뤄졌고 장산과 창주를 함락하고 남진하여 
12월14일에 영변(철옹산성)에 도착하여 19일까지 공방전을 펼쳤고 12월 20일 안주성에 도착한다.
도르곤은 안주총병과 황주원수의 병력 500을 팔기 3기가 영변성 아래에서 격파하였고
안주성 병력 200은 도르곤의 호위군이 격파하였고,
영변성 이원수의 기병700+보병300을 몽고 팔기군이 격파했다고 보고한다.
도르곤은 영변성 이원수를 생포했다고 보고한다.
실상은 철옹산성을 지키던 신경원이 출성하여 청군을 추격하다
영변 남쪽 40리에서 매복한 청군의 기습을 받아 궤멸되고 포로가 된 사건을 의미한다.
한편 좌익군은 12월 23일 황주에 도착하였는데 인근을 착생한 결과
조선의 원수가 남한산성을 구원하기 위해 1만5천을 이끌고 구원을 갔다는 첩보를 얻게 된다.
실상 황주 정방산성에 있던 도원수 김자점이 5천 병력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출격한 일을 말한다.
도르곤은 양백, 정람 2기의 바야라군과 기병, 매 니루마다 갑병 5명,
몽고 팔기 2기 니루마다 갑병 5명씩을 총 2800여명을 선발하여 김자점을 추격하게 한다.
밤낮으로 추격전을 개시한 좌익 정예군은 12월 25일 토산에 진을 친 김자점의 군대를 발견하고
조선군이 알아차리지 전에 기습하여 김자점군을 격파한다.
토산 전투에서 패한 김자점은 2천을 수습하여 미원으로 이동한다.
한편 1월 10일 청의 마지막 6차부대인 두두의 중화기 수송부대가 마침내 남한산성에 도착한다.
두두는 홍이포, 장군포 등의 중화기 수송을 맡은 부대이다.
두두는 1월 6일 임진강에 도착하였으나 강물이 모두 풀려 건널 수가 없었는데
1월 7일 갑자기 한파가 찾아와 강물이 얼어 마침내 수만 군사를 이끌고 도강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홍 타이지는 연거푸 임진강의 강물이 때맞춰 언 것은 모두 하늘의 뜻이라 말한다.

김자점 동선령 전투와 토산 전투 재구성 https://cafe.naver.com/booheong/168195
김자점 토산전투 청군의 규모 https://cafe.naver.com/booheong/168170

-8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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