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4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80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738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http://cafe.naver.com/booheong/158759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http://cafe.naver.com/booheong/159115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9124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http://cafe.naver.com/booheong/159285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13일

○癸丑朝鮮國王李倧奉書至書曰曩者小邦宰臣奉書軍門有所陳請回稱

皇帝將有後命小邦君臣延頸企踵日俟德音今已浹旬。未荷鑒照勢窮情迫能不再鳴。惟

皇帝垂察焉小邦昔蒙大國之惠猥托兄弟昭告天地雖疆域有分而情意未間自以為子孫萬世無疆之福豈意盤血未乾疑釁中結坐陷危迫之禍重為天下笑然求厥由皆緣天性柔弱為群臣所誤昏迷不察以致如此亦惟自責而已。更有何詞但念兄之於弟見有過則怒而責之理也然責之太嚴反乖兄弟之義。豈不為上天所怪乎小邦僻在海隅惟事詩書。不習兵革以弱臣強以小事大乃理之常豈敢與大國相較哉祗以世受明國厚恩名分素定曾值壬辰之難小邦旦夕且亡神宗皇帝動天下之兵拯濟生民於水火之中小邦之人至今銘鏤心骨寧獲過於大國不忍負明國此無他其樹恩厚而感人心深也恩之加人非一途苟有能蘇其民命救其國危者則發兵而救難與釋罪以矜全。其事雖殊其恩則一也昨年小邦處事。昏謬蒙大國勤教屢矣。猶不自悟致。煩大國之兵。君臣父子久處孤城其窘亦甚矣大國誠於此時舍其既往許其自新俾得保守宗社長奉大國則小邦君臣矢心感戴。至於子孫永世不忘天下聞之亦無不服大國之威信。是大國一舉而結大恩於東土施廣譽於四國也不然惟快一朝之怒務窮兵力傷兄弟之義閉自新之路以絕諸國之望其在大國恐亦未為長算以

皇帝之睿智何不慮及此乎秋殺而春生天地之道也矜弱而恤亡霸王之業也今

皇帝以英武之略撫定諸國而新建大號首揭

寬溫仁聖四字將以體天地之道而恢霸王之業則如小邦之願改前愆自託洪庇者宜若不在棄絕之中茲敢不避尊嚴更布區區以請命於下執事

○계축일(癸丑)에,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인조)의 봉서(奉書/바치는 서신)가 이르렀다.

서신(書)에 말하길

   <낭자(曩者/지난번)에 소방(小邦)의 재신(宰臣)이 군문(軍門)에 봉서(奉書/서신을 바침)하여

    진청(陳請/사정을 말하여 간절히 청함)한 바가 있었는데, 회칭(回稱/돌아와 일컬음)하길

    황제(皇帝)께서 장차(將) 후명(後命/이후의 명령)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방(小邦)의 군신(君臣)은 연경(延頸/목을 길게 뺌)하고 기종(企踵/발꿈치를 들어 멀리 내다봄)하여

    덕음(德音/임금의 좋은 말씀)을 일사(日俟/하루 종일 기다림)하였나이다.

    지금(今) 이미(已) 협순(浹旬/열흘이 지남)하였는데 아직 하(荷/꾸짖음)와 감조(鑒照/아랫사람의 사정을 살핌)하지 못하니,

    세궁(勢窮/형세가 궁함)하고 정박(情迫/사정이 급함)하여 재명(再鳴/재차 이야기함)하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생각건대 황제(皇帝)께옵서 수찰(垂察/미루어 헤아려 주심)하소서.

    소방(小邦)은 앞서 어리석게도 대국(大國)의 은혜(惠)로 외람(猥)되이 형제(兄弟)를 탁(托/의지함)하여,

    천지(天地)에 조고(昭告/명백히 고함)하였나이다.

    비록 강역(疆域/국가의 영토)은 유분(有分/나뉘어 있음)하나 정의(情意/애정)는 미간(未間/간격이 없음)하다 할 것입니다.

    스스로 자손만세(子孫萬世) 무강(無疆/끝이 없음)의 복(福)이라 생각하였나이다.

    어찌하여 무릇 반혈(盤血/쟁반의 피)이 미건(未乾/마르지 않음)하였는데 

    의흔(疑釁/의심의 틈새)이 중결(中結/가운데 맺힘)하여,

    좌함(坐陷/함정에 빠짐)과 위박(危迫/위험이 눈앞에 닥침)의 화(禍)가 중(重)하여, 천하(天下)의 소(笑/웃음)가 되었습니까?

    그러나 그 연유(由)를 구(求)하면 모두 천성(天性/타고난 성품)이 유약(柔弱)한 까닭으로,

    군신(群臣/뭇 신하)이 소오(所誤/그르친 바)한 것을 혼미(昏迷)하고 불찰(不察)하여, 이로써 이르게 되었나이다.

    이 역시(亦) 오직 자책(自責/스스로의 책임)일 뿐이오니, 다시 어떤 말이 있겠나이까?

    단지(但) 염(念/생각함)하자면 형(兄)이 제(弟/아우)에게 화(過)가 있음을 보면 즉(則) 노(怒)하고 책(責)함이 도리(理)입니다.

    그러나 태엄(太嚴/크게 엄격함)하여 책(責)하면 반대(反)로 형제(兄弟)의 의(義)가 괴(乖/어그러짐)하나이다.

    어찌 상천(上天/하늘)이 괴이(怪)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소방(小邦)은 궁벽(僻)하고 해우(海隅/바다의 한 구석)에 있으며 오직 시서(詩書/시경과 서경)만을 사(事/일삼음)하고,

    병혁(兵革/무기와 갑옷)을 불습(不習/익히지 않음)하여, 약(弱)으로써 신강(臣強/강국에 신복함)하였고

    소(小/작음)로써 사대(事大/소국이 대국을 떠받들어 섬김)함은 곧 마땅한 도리(理)이옵니다.

    어찌 감히(敢) 대국(大國)과 더불어 상교(相較/서로 견줌)하겠습니까?

    단지 대대로 명국(明國)의 후은(厚恩/두터운 은혜)을 수(受/받음)하여 명분(名分)이 소정(素定/본래부터 정해짐)하였나이다.

    일찍이 임진(壬辰)의 난(難)을 당하여 소방(小邦)은 단석(旦夕/아침과 저녁)으로 또한 망(亡)하게 되었는데,

    신종황제(神宗皇帝/명 13대 황제 주익균, 만력제)께옵서 천하(天下)의 병(兵)을 동(動/움직임)하여,

    수화(水火/물에 빠지고 불에 타는 재난)의 중(中)에서 생민(生民/살아있는 백성)을 증제(拯濟/건져 구제함)하니,

    소방(小邦)의 사람은 지금(今)에 이르도록 마음과 골(骨/뼈)에 명루(銘鏤/잊지 않도록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둠)하나이다.

    차라리 대국(大國)에 획화(獲過/화를 얻음)할지언정 

    명국(明國)을 부(負/저버림)하는 것은 부인(不忍/차마 하기가 어려움)하나이다.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라 그 수은(樹恩/남에게 은혜를 베풂)이 후(厚/두터움)하고 

    인심(人心)을 감(感/고맙게 여김)함이 심(深/깊음)한 것이옵니다.

    사람에게 은혜(恩)를 가(加)하는 도(途/길)는 하나가 아니나이다.

    진실로 그 민명(民命/백성의 목숨)을 소(蘇/되살림)하고 그 국위(國危/나라의 위태로움)를 구(救)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발병(發兵/군사를 일으킴)하여 구난(救難/재난에서 구함)하고 

    더불어 긍(矜/불쌍히 여김)함으로써 온전히(全) 석죄(釋罪/죄를 용서함)하는 

    그 일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은혜(恩)는 곧 하나입니다.

    작년(昨年/지난해)에 소방(小邦)의 처사(處事/일을 처리함)가 혼류(昏謬/어리석고 잘못함)하고 어리석어,

    대국(大國)의 근교(勤教/걱정하여 가르침)가 여러 번이었나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자오(自悟/스스로 깨달음)하지 못하고 번(煩)거롭게 대국(大國)의 병(兵)을 이르게 하였나이다.

    군신(君臣)과 부자(父子)가 고성(孤城/고립된 성)에 구처(久處/오랫동안 머묾)하여 그 군색(窘) 역시(亦) 심(甚)하나이다.

    대국(大國)이 참으로 이때에 그 기왕(既往/과거)을 석(舍/베풂)하고,

    그 자신(自新/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함)을 허(許)하여

    종사(宗社/종묘와 사직)를 보수(保守/보전하여 지킴)하고 대국(大國)을 장봉(長奉/오랫동안 받듦)할 수 있도록 한다면,

    곧 소방(小邦)의 군신(君臣)은 시심(矢心/마음속으로 맹세함)하고 감대(感戴/감격하여 떠받듦)하여,

    자손영세(子孫永世/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불망(不忘/잊지 아니 함)하겠나이다.

    천하(天下)가 문(聞/들음)한다면 역시(亦) 대국(大國)의 위신(威信/위엄과 신망)을 

    불복(不服/복종하지 않음)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대국(大國)이 일거(一舉/한번 일으킴)하여 동토(東土/조선)에 대은(大恩/큰 은혜)을 결(結/맺음)하고,

    사국(四國/사방의 나라)에 광예(廣譽/드넓은 명예)를 시(施/베풂)함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오직 일조(一朝/하루 아침)의 분노(怒)를 쾌(快/즐김)하여,

    병력(兵力)으로 무궁(務窮/추궁하여 힘씀)한다면 형제(兄弟)의 의(義)를 손상(傷)하고,

    자신(自新/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함)의 길을 폐(閉/막음)하여

    이로써 제국(諸國/여러 나라)의 희망(望)을 절(絕/끊음)한다면,

    그것은 대국(大國)에 있어서도 공(恐/두려움)하고 역시(亦) 장산(長算/장구한 셈)은 되지 못하니,

    황제(皇帝)의 예지(睿智/슬기로운 지혜)로써 어찌 이에 이르러 부려(不慮/생각하지 않음)하겠나이까?

    추살(秋殺/가을에 죽임)하고 춘생(春生/봄에 살림)함은 천지(天地)의 도리(道)이나이다.

    긍약(矜弱/약자를 아낌)하고 휼망(恤亡/망하는 것을 구휼함)함은 패왕(霸王)의 업(業)이나이다.

    지금(今) 황제(皇帝)께서는 영무(英武/영민하고 용감함)의 전략(略)으로써 제국(諸國/여러 나라)를

    무정(撫定/어루만지고 안정시킴)하시고 대호(大號/천자의 칭호)를 신건(新建/새롭게 세움)하시어,

    관온인성(寬溫仁聖)의 4자(字)를 수게(首揭/머리 높게 듦)하시고,

    장차(將) 이로써 천지(天地)의 도(道)를 체험(體)하시고 패왕(霸王)의 업(業)을 회(恢/넓힘)하시니,

    곧 소방(小邦)의 원함(願)과 같이 전건(前愆/전의 허물)을 개(改/고침)하고,

    홍비(洪庇/넓게 덮어 가림)를 자탁(自託/스스로 의탁함)하는 자(者)는,

    마땅히 이에 기절(棄絕/끊어서 버림)의 중(中)에 있게 하여서는 안되나이다.

    이에 감히(敢) 존엄(尊嚴)의 경(更/고침)을 불피(不避/무릅씀)하여 구구(區區/구차스러움)를 포(布/드러냄)하여

    이로써 하집사(下執事)에게 청명(請命/명령을 청함)하나이다.>


○1637년 1월 13일에 조선국왕 이종(인조)이 바치는 서신이 이르렀다.

서신에 말하길

   <지난번에 소방(소국)의 재상이 군문에 서신을 바쳐 사정을 말하여 간절히 청한 바가 있었는데 돌아와 일컫기를

    황제께서 장차 후명(이후의 명령)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소방의 군신(임금과 신하)은 목을 길게 빼고 발꿈치를 들어 멀리 내다보며

    덕음(임금의 좋은 말씀)을 하루 종일 기다렸나이다.

    지금 이미 열흘이 지났는데도 아직 꾸짖음과 아랫사람의 사정을 살피겠다는 말을 듣지 못하니

    형세가 궁하고 사정이 급하여 재차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생각건대 황제께옵서 미루어 헤아려 주시오소서.

    소방은 앞서 어리석게도 대국의 은혜로 외람되이 형제를 의탁하여 천지에 명백히 고하였나이다.

    비록 강역(국가의 영토)은 나뉘어 있으나 애정은 간격이 없다 할 것입니다.

    스스로 자손만대의 끝이 없는 복이라 생각하였나이다.

    어찌하여 무릇 맹세의 피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의심의 틈새가 가운데 맺히어 

    함정에 빠지고 위험이 눈앞에 닥치는 화가 중하게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까?

    그러나 그 연유를 구하자면 모두 저의 천성이 유약한 까닭으로 뭇 신하가 그르친 바를 

    혼미하고 살피지 못하여 이로써 이르게 되었나이다.

    이 역시 오직 스스로의 책임일 뿐이오니 다시 어떤 말이 있겠나이까?

    단지 생각하자면 형이 아우에게 잘못이 있음을 보면 곧 노하고 꾸짖는 것이 도리이옵니다.

    그러나 크게 엄하게 꾸짖으면 반대로 형제의 의가 어그러지나이다.

    어찌 하늘이 괴이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소방은 궁벽한 바다의 한구석에 있으며 오직 시서(시경과 서경)만을 일삼고

    무기와 갑옷은 익히지 않으며 약소국으로 강대국에 신하로 복종하며 소국으로써 사대하는 것은 곧 마땅한 도리이옵니다.

    어찌 감히 대국과 더불어 서루 견주겠나이까?

    단지 대대로 명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 명분이 본래부터 정해졌나이다.

    일찍이 임진난을 당하여 소방은 아침과 저녁으로 또한 망하게 되었는데

    신종황제(명 13대 황제 주익균, 만력제)께옵서 천하의 병력을 움직여 

    물에 빠지고 불에 타는 재난 중에서 살아있는 백성을 건져 구제하시니 

    소방의 사람은 지금에 이르도록 마음과 뼈에 잊지 않도록 깊이 새겨 두었나이다.

    차라리 대국에 화를 얻을지언정 명나라를 저버리는 것은 차마 하기가 어려웠나이다.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라 그 베푼 은혜가 두텁고 고맙게 여기는 인심이 깊기 때문이옵니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길은 하나가 아니나이다.

    진실로 그 백성의 목숨을 되살리고 그 나라의 위태로움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군사를 일으켜 재난에서 구하거나 더불어 불쌍히 여김으로써 온전히 죄를 용서하는 그 일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은혜는 곧 하나입니다.

    작년에 소방의 일 처리가 어리석고 잘못하여 대국의 걱정하는 가르침을 여러 번 받았나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번거롭게 대국의 군대를 이르게 하였나이다.

    군신(임금과 신하)과 부자(아버지와 아들, 인조와 소현세자)가 고립된 성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그 군색함 역시 심하나이다.

    대국이 참으로 이때에 그 과거를 용서하고 저희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하는 것을 허락하시어

    종묘와 사직을 보전하여 지키고 대국을 오랫동안 받들 수 있도록 한다면

    곧 소방의 군신(임금과 신하)은 마음속으로 맹세하고 감격하여 떠받들며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잊지 아니하겠나이다.

    천하가 듣는다면 역시 대국의 위신(위엄과 신망)을 복종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대국이 한번 일으켜 동토(조선)에 큰 은혜를 맺게 하여 사방의 나라에 드넓은 명예를 베푸는 것이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오직 하루아침의 분노를 풀고자 하여 병력으로 힘써 추궁하여

    형제의 의를 손상하고 스스로 잘못을 고칠 길을 막음으로써 여러 나라의 희망을 끊는다면

    그것은 대국에 있어서도 두려운 일이고 또한 장구한 셈은 되지 못하니

    황제의 슬기로운 지혜로써 어찌 이에 이르러 생각하시지 않겠나이까?

    가을에 죽이고 봄에 살리는 것은 천지의 도리이나이다.

    약자를 아끼고 망하는 것을 구휼하는 것은 패왕(霸王)의 업이나이다.

    지금 황제께서는 영민하고 용감한 전략으로써 여러 나라를 어루만지고 안정시켜

    대호(천자의 칭호)를 새롭게 세우시고 관온인성(寬溫仁聖)의 4 글자를 머리 높게 드시고

    장차 이로써 천지의 도를 체험하시고 패왕의 업을 넓히시니

    곧 소방의 원함과 같이 전의 허물을 고치고 넓게 덮어 가림에 스스로 의탁하는 자는

    마땅히 이에 끊어서 버리는 가운데에 있게 하여서는 안되나이다.

    이에 감히 존엄을 고치는 것을 무릅쓰고 구차하게 속마음을 드러내니

    이로써 하집사(일을 주관하는 청 관리)에게 명령을 청하나이다.>


요약.

1637년 1월 13일 인조는 다시 한번 청 태종에게 강화 서신을 보낸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홍 타이지를 황제라 칭하며 청나라를 대국, 조선을 소국이라 칭한다.
인조는 조선은 문을 추구하는 연약하고 궁벽한 나라라며 나라와 대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사정한다.
인조는 소국이 강대국에 사대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나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만력제가 구원해 준일로 은혜가 두텁다
청나라에 화를 입을지언정 명나라를 배신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이는 조선의 백성 인심이 그러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인조는 1636년 2월 사신 용골대와의 일은 신하들이 일을 잘못 처리하여 벌어진 일
자신이 혼미하여 살피지 못하여 책임이 있다고 시인한다.
그 후 청나라의 가르침을 조선이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하여 전쟁이 발발했다고 말한다.
인조는 청나라가 대국답게, 패왕답게 소국을 한번 꾸짖었으니 너그럽게 용서해 준다면
조선은 자손만대 잊지 않을 것이고 사방의 나라들도 모두 청의 위엄에 복종할 것이라 말한다.
또한 홍 타이지의 존호인 [관온인성]을 언급하며 패왕의 업을 운운하며 철군을 요청한다.


*관온인성한(寬溫仁聖汗)
   : 1636년 4월 후금과 몽고의 버이러들이 홍 타이지에게 바친 존호이다.
     만주어로는 gosin onco hvwaliyasun enduringge han[고신 온초 훠와랴순 언두링어 한]
     직역은 [인자한 너그러운 상냥한 성스러운 한]이다.
     이 존호를 두고 2월 홍 타이지는 형제지맹의 조선국에 이를 상의하라 명하였고
     용골대가 후금과 몽고 버이러들의 명의로 된 서신을 가지고 조선에 왔으나
     조선은 이를 황제 참칭이고 조선을 속국화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삼사를 중심으로 후금과의 결사항전의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이 존호가 기존 중국의 황제와 제후국의 개념이라 보기에는 여러 의문점이 있으나
     병자호란 직후에는 상국과 속국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황제 칭호는 이전 누르하치대에도 계속 있어왔던 일이고, 홍 타이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편 조선은 용골대를 객관에 머물게 하고 서신마저도 방치한다.
     이에 용골대는 화를 내며 북쪽으로 돌아간다.
     이에 인조는 용골대에게 파발 기병을 보내 화를 풀고자 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전국에 교지를 내려 전쟁 준비를 하게 한다.
     이때 파발 기병에게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에게 보내는 교지도 같이 보냈는데
     평양 관사로 들어가지 않고 노숙하며 극도의 경계를 서고 있던 용골대는
     이 파발 기병의 몸을 수색하여 교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 교지는 곧장 홍 타이지에게 전달되었고 홍 타이지는 조선이 형제지맹을 파기하였다며 분노한다.
     홍 타이지는 1636년 4월에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연호도 천총에서 숭덕으로 바꾼다.
     홍 타이지는 조선에 11월 26일 동짓날 전까지 해명하고 왕자와 대신을 보내라 말한다.
     결국 11월 26일까지 조선의 해명 사신은 당도하지 못하였고 
     11월 26일 홍 타이지는 하늘과 누르하치의 묘에 조선 정벌의 정당성을 알리며 전쟁을 선포한다.

-9부에서 계속-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