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4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680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8738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http://cafe.naver.com/booheong/158759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http://cafe.naver.com/booheong/159115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9124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http://cafe.naver.com/booheong/159285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9318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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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16일

○丙辰命碩翁科羅巴圖魯勞薩及吳拜等齎敕率前鋒全軍還盛京諭留守和碩鄭親王濟爾哈朗多羅武英郡王阿濟格多羅饒餘貝勒阿巴泰等曰去年十二月初八日首隊前鋒兵已渡義州鎮江初九日黎明和碩豫親王多鐸率每牛彔甲士三名多羅貝勒岳託率每牛彔甲士五名並以次相繼而渡初十日朕率大軍渡江首隊前鋒兵於十二月十四日將至朝鮮王京城朝鮮副將二員遊擊四員備禦六員率精兵六十餘迎戰。盡為我兵所殲及至王京。有崔閣臣李侍郎來迎以詭言緩我師時朝鮮國王已率長子群臣出王京城潛逃東奔四十里入南漢山城崔李二人亦用計逃入王京城竟不復來次日前鋒兵始知國王遁走從後追襲至南漢山城方誘與語時和碩豫親王多鐸多羅貝勒岳託等兵繼至繞南漢城立柵困之朕未至之先有原在朝鮮之瓦爾喀巴圖魯葉辰麻福塔率二百戶來歸又朝鮮一巡撫率兵一萬八千分為二隊來援朝鮮王為固山貝子碩託尼堪博和託羅託甲喇章京國舅阿什達爾漢等所敗盡斬之又副將一員率兵五千來援亦為碩託等所敗梅勒章京色勒甲喇章京阿爾津等往截敵兵來路遇一副將率援兵五百來亦擊敗之有敵兵將入南漢山城遇梅勒章京碩翁科羅巴圖魯勞薩甲喇章京吳拜 等截戰斬二百餘人又有南漢兵四百餘出城亦為勞薩所敗朕親率大軍於十二月二十九日至南漢城今年正月初三日朝鮮全羅道沈總兵忠清道李總兵帥兵來援多羅貝勒岳託擊敗之初七日全羅忠清二道巡撫總兵又率兵來和碩豫親王多鐸擊敗之和碩睿親王多爾袞多羅貝勒豪格至長山長山昌州官民棄城於山頂樹柵我兵上下夾攻朝鮮兵墮崖死者甚眾至寧邊有義州總兵黃州元帥率兵五百出寧邊城隨擊敗之並敗其安州兵二百又寧邊副元帥李某及參將三員遊擊四員備禦十五員率馬兵七百步兵三百往援其王遇蒙古固山額真額駙蘇納出掠亦擊敗之生擒副元帥李某我軍至宣屯村獲諜者訊知黃州都元帥於三日前率兵一萬五千往援和碩睿親王多爾袞多羅貝勒豪格即選精騎星夜追襲突入擊敗之多爾袞豪格於正月初十日始達朕營因路狹隘所以遲滯及審問擒來之人云朝鮮王受困城中糧米薪水俱乏朝鮮王遣其國大臣來我軍前請罪言凡事唯命是聽朕猶未允又得人問之有云國王與長子及群臣俱在南漢其餘妻子在江華島又有云王與妻子俱在一處朕意欲造船先攻此島若得其妻子則城內之人自然歸順若猶不順然後攻城計亦未晚觀此島亦似易取但天之助我與否未可知也又諭曰使到之日即揀選謹慎能幹官二員帶領每甲喇驍騎校一員每牛彔甲士一名每牛彔採取木植白身人一名及八家各首領一名再選造船工匠各五名前來靉陽河邊依佟克申式樣造船十艘依朝鮮式樣造馬船十艘可令和碩豫親王多鐸家人托木布路察有向日曾與佟克申造船及知造朝鮮馬船之工匠遣之前來其監造官員須於靉陽河邊擇地方堅固。可達義州江者令其駐彼營造至於造船所需鐵匠亦按數發來更須分撥哨卒善為防守毋致疏虞若國中有大事不便遲緩及緊急信息當遣二三百人來其細小事務信息於二月二十日遣人至通遠堡俟朕有使至同來今所遣人到時即發造船人等起行限二月十五日以內竣工布顏蘇爾德到盛京五日仍令護送造船人來其右翼前鋒到五日可令往噶海駐防左翼前鋒於遼河冰解時可往開城駐防遼河冰若未解可往牛莊駐防冰解後併將駐防牛莊之護軍取往開城一同駐防

○병진일(丙辰)에 명(命)하여 석옹과라(碩翁科羅) 파도로(巴圖魯) 로살(勞薩)은 

오배(吳拜) 등(等)과 더불어 재칙(齎敕/칙서를 지님)하여 전봉(前鋒/선봉)의 전군(全軍)을 인솔(率)하여

성경(盛京)으로 귀환()하여 유수(留守/남아 지킴)하는 화석정친왕(和碩鄭親王) 제이합랑(濟爾哈朗),

다라무영군왕(多羅武英郡) 아제격(阿濟), 다라요여패륵(格多羅饒餘貝勒) 아파태(阿巴泰) 등(等)에게 유지(諭)를 내려 말하길

거년(去年/지난해) 12월 초 8일에 수대(首隊/1차 선봉대)와 전봉(前鋒/선봉)의 병(兵)이 

이미(已) 의주(義州)의 진강(鎮江/압록강)을 도(渡/건넘)하였고,

초 9일 여명(黎明/동틀 무렵)에 화석예친왕(和碩豫親王) 다탁(多鐸)이 매(每) 우록(牛彔) 갑사(甲士) 3명씩을 인솔(率)하고,

다라패륵(多羅貝勒) 악탁(岳託)은 매(每) 우록(牛彔) 갑사(甲士) 5명씩을 인솔(率)하고,

나란히 이차(以次/순서대로)로 상계(相繼/서로 이어나감)하여 도(渡/건넘)하였다.

짐(朕)은 초 10일에 대군(大軍)을 인솔(率)하여 도강(渡江)하였다.

수대(首隊/1차 선봉대)와 전봉(前鋒)의 병(兵)은 12월 14일에 장차(將) 조선(朝鮮) 왕경성(王京城)에 이르니

조선(朝鮮)의 부장(副將) 2원(員)과 유격(遊擊) 4원(員), 비어(備禦) 6원(員)이 정병(精兵) 60여(餘)를 

인솔(率)하여 영전(迎戰/쳐들어오는 적의 군대를 맞아 싸움)하였는데,

모두 아병(我兵)이 섬멸(殲)하였고 왕경(王京)에 이르렀는데,

최(崔) 각신(閣臣)과 이(李) 시랑(侍郎)이란 자들이 있어 내영(來迎/와서 맞이함)하였고,

궤언(詭言/간사하게 속여 꾸미는 말)으로써 아사(我師/우리 군대)를 완(緩/늦춤)하였다.

이때 조선(朝鮮) 국왕(國王)은 이미(已) 장자(長子/세자)와 군신(群臣/뭇 신하)를 인솔(率)하여,

왕경성(王京城)을 출(出/나감)하고 잠도(潛逃/은밀히 도망감)하고 동쪽(東)으로 40리(里)를 분(奔/달아남)하여,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입(入/들어감)하였다.

최(崔)와 이(李) 두 사람 역시(亦) 계도(計逃/도망감을 계획함)를 사용(用)하여 왕경성(王京城)으로 입(入/들어감)하였는데,

마침내 차일(次日/다음날)에 복래(復來/다시 옴)하지 않았다.

전봉(前鋒/선봉)의 병(兵)이 비로소 국왕(國王)이 둔주(遁走/도망쳐 달아남)를 지(知/앎)하여,

종후(從後/뒤를 쫓음)하고 추습(追襲/뒤쫓아 가서 습격함)하여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꾀어서 더불어 말하였다.

이때 화석예친왕(和碩豫親王) 다탁(多鐸)과 다라패륵(多羅貝勒) 악탁(岳託) 등(等)의 병(兵)이 

계지(繼至/계속하여 이름)하여 남한성(南漢城)을 둘러 입책(立柵/목책을 세움)하여 곤(困/통하지 아니 함)하게 하였다.

짐(朕)이 이르지 못하였는데 앞서 조선(朝鮮)에 원래 있었던 와이객(瓦爾喀)의 파도로(巴圖魯) 엽진(葉辰)과 마복탑(麻福塔)이

200호(戶)를 인솔(率)하여 내귀(來歸/귀부하여 옴)하였다.

또 조선(朝鮮)의 한 명의 순무(巡撫)가 병(兵) 1만 8천을 인솔(率)하고 2 대(隊)로 나누어 

조선왕(朝鮮王)을 내원(來援/구원하여 옴)하니,

고산패자(固山貝子) 석탁(碩託), 니감(尼堪), 박화탁(博和託), 라탁(羅託),

갑라장경(甲喇章京) 국구(國舅) 아십달이한(阿什達爾漢) 등(等)이 패(敗/깨트림)하고 진참(盡斬/모두 참함)하였다.

또 부장(副將) 1원(員)이 병(兵) 5천을 인솔(率)하여 내원(來援/구원하여 옴)하였는데

역시(亦) 석탁(碩託) 등(等)이 패(敗/깨트림)하고 매륵장경(梅勒章京) 색륵(色勒)과

갑라장경(甲喇章京) 아이진(阿爾津) 등(等)이 가서 적병(敵兵)의 내로(來路/오는 길)를 절(截/끊음)하였다.

병(兵) 500을 인솔(率)하여 구원(援)하여 오는 한 명의 부장(副將)을 조우(遇)하였는데,

역시(亦)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고,

장차(將)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들어가려는 적병(敵兵)이 있었는데,

매륵장경(梅勒章京) 석옹과라(碩翁科羅) 파도로(巴圖魯) 노살(勞薩), 갑라장경(甲喇章京) 오배(吳拜) 등(等)이 조우(遇)하여

절(截/끊음)하고 싸워 200여인을 참(斬)하였다.

또 남한(南漢)의 병(兵) 400여(餘)가 출성(出城)함이 있었는데 역시(亦) 로살(勞薩)이 패(敗/깨트림)하였다.

짐(朕)이 대군(大軍)을 친솔(親率/친히 통솔함)하여 12월 29일에 남한성(南漢城)에 이르렀다.

금년(今年) 정월(正月) 초(初) 3일에, 조선(朝鮮)의 전라도(全羅道) 심총병(沈總兵)과

충청도(忠清道) 이총병(李總兵)이 수병(帥兵/병을 거느림)하여 내원(來援/구원하여 옴)하였는데,

다라패륵(多羅貝勒) 악탁(岳託)이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다.

초(初) 7일에, 전라(全羅)와 충청(忠清) 2도(道)의 순무(巡撫)와 총병(總兵)이 또 솔병(率兵/병을 인솔함)하여 오니,

화석예친왕(和碩豫親王) 다탁(多鐸)이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다.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 다이곤(多爾袞)과 다라패륵(多羅貝勒) 호격(豪格)이 장산(長山)에 이르니,

장산(長山)과 창주(昌州)의 관민(官民)이 기성(棄城/성을 버림)하고 

산정(山頂/산 정상)에 수책(樹柵/목책을 세움)하였다.

아병(我兵)이 상하(上下)로 협공(夾攻)하니, 조선병(朝鮮兵)이 타애(墮崖/낭떠러지에서 떨어짐)하여 죽은 자가 

심중(甚眾/심히 많음)하였다.

영변(寧邊)에 이르니 의주(義州) 총병(總兵)과 황주(黃州) 원수(元帥)가 병(兵) 500을 인솔(率)하여,

영변성(寧邊城)을 출성(出)하였는데 곧바로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다.

아울러 그 안주(安州)의 병(兵) 200도 패(敗/깨트림)하였다.

또 영변부원수(寧邊副元帥) 이모(李某)가 참장(參將) 3원(員), 유격(遊擊) 4원(員), 비어(備禦) 15원(員)과 더불어

마병(馬兵/기병) 700과 보병(步兵) 300을 인솔(率)하여 그 왕(王)을 왕언(往援/가서 구원함)하였는데,

출약(出掠/약탈하러 나감)한 몽고(蒙古) 고산액진(固山額真) 액부(額駙) 소납(蘇納)과 조우(遇)하여,

역시(亦)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고, 부원수(副元帥) 이모(李某)를 생금(生擒/생포)하였다.

아군(我軍)이 선둔촌(宣屯村)에 이르러 첩자(諜者)를 획(獲/얻음)하여 신(訊/조사함)하여,

황주(黃州) 도원수(都元帥)가 3일 전에 병(兵) 1만 5천을 인솔(率)하여 왕언(往援/가서 구원함)함을 알았다.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 다이곤(多爾袞)과 다라패륵(多羅貝勒) 호격(豪格)이 즉각(即) 정기(精騎/정예 기병)을 선발(選)하여,

성야(星夜/밤새)로 추습(追襲/뒤쫓아 가서 습격함)하여 돌입(突入/돌격하여 들어감)하여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다.

다이곤(多爾袞)과 호격(豪格)이 정월(正月) 초 10일에 비로소 짐(朕)의 영(營)에 도달(達)하였는데,

도로(路)가 협애(狹隘/지세가 몹시 좁고 험함)함으로 인(因)하여 그런 까닭에 지체(遲滯/더디고 막힘)하였다.

금내(擒來/사로잡아 옴)의 사람을 심문(審問/조사하기 위하여 자세히 따져 물음)함에 이르러 말하길

조선왕(朝鮮王)이 성중(城中)의 양미(糧米/양식으로 쓰는 쌀)와 신수(薪水/땔나무와 물)가 

모두 궁핍(乏)하여 수곤(受困/어려움을 당함)하였다 한다.

조선왕(朝鮮王)이 그 나라의 대신(大臣)을 보내 아군(我軍)의 앞으로 와 청죄(請罪/죄를 청함)하여 말하길

어떤 일이든 오직 명(命)을 따르겠다 하였으나, 이 청(聽/들어줌)을 짐(朕)은 오히려 윤허(允)하지 않았다.

또 득인(得人/사람을 얻음)하여 문(問/물어봄)하니 말이 있었는데

국왕(國王)이 장자(長子)와 함께 군신(群臣/뭇 신하)과 더불어 모두 남한(南漢)에 있고,

그 나머지 처자(妻子)는 강화도(江華島)에 있다 하였다.

또 말하길 왕(王)은 처자(妻子)와 함께 일처(一處/한 곳)에 모두 있다 하였다.

짐(朕)은 조선(造船/배를 만듦)하여 이 섬을 선공(先攻/먼저 공격함)할 작정이다.

만약(若) 그 처자(妻子)를 득(得)한다면 곧 성내(城內)의 사람 또한 자연히(自然) 귀순(歸順)할 것이다.

만약(若) 오히려 불순(不順/따르지 않음)한다면 그런 연후(然後)에 공성(攻城)을 계획(計)하여도,

역시(亦) 미만(未晚/늦지 않음)할 것이다.

보아하니 이 섬 역시(亦) 이취(易取/쉽게 취함)할 것으로 보인다.

단지(但) 하늘이 우리를 도울지 여부(與否)는 알 수 없다.

또 유왈(諭曰/유지하여 말함)하길

사신(使)이 이르는 날 즉시(即) 근신(謹慎/신중함)하고 

능간(能幹/일을 잘 감당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재간이 있음)한 관리(官) 2원(員)을 간선(揀選/가려서 뽑음)하여,

매(每) 갑라(甲喇/잘안, 5니루)의 효기(驍騎)의 장교(校) 1원(員)씩,

매(每) 우록(牛彔/니루)의 갑사(甲士) 1명(名)씩,

매(每) 우록(牛彔)의 채취(採取/수집하고 취함)하고 목식(木植/나무를 세움)하는 

백신(白身/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 1명(名)씩과 더불어

8가(家)의 각각(各) 수령(首領) 1명(名)씩을 대령(帶領/인솔함)하고,

조선(造船/배를 만듦) 공장(工匠) 각(各) 5명(名)씩을 재선(再選/재차 선발함)하여,

전래(前來/전에 옴)한 애양하(靉陽河) 변경(邊)의 퉁극신(佟克申)의 식양(式樣/형식)을 의지(依)하여,

10소(艘/척)를 조선(造船/배를 만듦)하고,

조선(朝鮮)의 식양(式樣/형식)을 의지(依)하여 마선(馬船/말 수송배) 10 소(艘/척)를 조(造/만듦)하라.

화석예친왕(和碩豫親王) 다탁(多鐸)의 가인(家人) 탁목포로찰(托木布路察)로 하여금

향일(向日/지난날) 이미 퉁극신(佟克申)의 조선(造船/배를 만듦)과 더불어 

조선(朝鮮)의 마선(馬船/말 수송선)을 조(造/만듦)함을 알고 있는 공장(工匠/장인)을 보내게 하라!

전래(前來/앞서 감)한 그 감조(監造/제조를 감독함)하는 관원(官員)은

모름지기 애양하(靉陽河)의 변경(邊)에 지방(地方)을 택(擇)하여 견고(堅固)히하라!

가히(可) 의주강(義州江)에 도달(達)하는 자(者)는 그곳에 주둔(駐)하라!

그 만든 진영에 조선(造船/배를 만듦)에 소수(所需/필요한 바)하는 철장(鐵匠/대장장이)이 이르면

또한 계속하여 안(按/순시함)을 수차례(數) 발(發)하여 오게 하라!

모름지기 초졸(哨卒/경계병)을 분발(分撥/조를 나눔)하고 최선(善)으로 방수(防守/막아서 지킴)하여 

소우(疏虞/소홀히 하여 일을 그르침)에 이르게 하지 마라!

만약(若) 국중(國中)에 대사(大事)가 있다면 지완(遲緩/더디게 하거나 늦춤)을 편(便/휴식함)하지 마라!

더불어 긴급(緊急/매우 급함)한 신식(信息/소식)은 마땅히 2~3백인을 보내오라!

그 세소(細小/매우 사소함)한 사무(事務)의 신식(信息/소식)은 2월 20일에 

견인(遣人/사람을 보냄)하여 통원보(通遠堡)에 이르러 기다려 짐(朕)이 보낸 사신(使)과 함께 같이 오라!

지금 보내는 사람이 도착하면 즉각(即) 조선인(造船人/배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행(起行/행군을 시작함)하여 출발(發)하여,

2월 15일 이내(以內)로 한(限)하여 준공(竣工/공역을 마침)하라!

포안소이덕(布顏蘇爾德)이 성경(盛京/심양)에 5일에 도착(到)하면

거듭 영(令)을 내려 조선인(造船人/배를 만드는 사람)을 호송(護送)하여 오라!

그 우익(右翼)의 전봉(前鋒)이 5일에 도착(到)하면 영(令)을 내려 갈해(噶海)로 가 주방(駐防/주둔하여 지킴)하게 하라!

좌익(左翼)의 전봉(前鋒)은 요하(遼河)의 얼음이 풀릴 때에는 개성(開城)으로 가 주방(駐防/주둔하여 지킴)하라!

요하(遼河)의 얼음이 만약(若) 풀리지 않으면 우장(牛莊)으로 가 주방(駐防/주둔하여 지킴)하고,

빙해(冰解/얼음이 풀림)한 후(後)에는 아울러 

장차(將) 주방(駐防/주둔하여 지킴)하는 우장(牛莊)의 호군(護軍/바야라군)을 취(取)하여

일동(一同/함께) 개성(開城)으로 주방(駐防/주둔하여 지킴)하라!>


*석옹과라(碩翁科羅) 파도로(巴圖魯) 로살(勞薩)

 : 청나라 장수 로오사(loosa)의 칭호 숑코로 바투루[xongkoro baturu].

   만주어 뜻은 [송골매 용사]. 

   이전에는 후금 5대 개국공신 중 1인인 안퍙워/안비양고(安費揚古)의 칭호였다.

*오배(吳拜)

 : ubai[우바이], 누르하치에 의해 용맹하다 칭찬받은 후금과 청나라의 맹장.

   강희제에 의해 숙청당한 일명 만주 제일용사라는 오배(鼇拜)/오보이(oboi)와는 다른 인물.

*화석정친왕(和碩鄭親王) 제이합랑(濟爾哈朗)

 : 누르하치의 친동생인 슈르가치의 6남 지르갈앙(jirgalang)의 봉작명.

   만주어로는 호쇼이 우전 친왕[hoxoi ujen cinwang]

*다라무영군왕(多羅武英郡王) 아제격(阿濟格)

 : 누르하치의 12남 아지거[ajige]의 봉작명.

   만주어로는 도로이 바투루 균왕[doroi baturu giyvn wang].

*다라요여패륵(格多羅饒餘貝勒) 아파태(阿巴泰)

 : 누르하치의 7남 아바타이[abatai]의 봉작명.

   만주어로는 도로이 바얀 버이러[doroi bayan beile].

*화석예친왕(和碩豫親王) 다탁(多鐸)

 : 누르하치의 15남 도도[dodo]의 봉작명.

   만주어로는 호쇼이 어르커 친왕[hoxoi erke cin wang].

*최(崔) 각신(閣臣) :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

*이(李) 시랑(侍郎) : 동중추부사 이경직(李景稷).

*다라패륵(多羅貝勒) 악탁(岳託)

 : 누르하치의 2남인 다이샨의 1남 요토[yoto]의 봉작명, 만주어로는 도로이 버이러[doroi beile]

   원 봉작명은 화석성친왕(和硕成亲王), 만주어로는 호쇼이 무터부러 친왕[hoxoi mutebure cin wang]

*와이객(瓦爾喀) : 동해여진 부족 와르카(warka)

*엽진(葉辰) : 조선에 내투하였던 와르카 부족인, 만주어 예천(yecen).

*마복탑(麻福塔) : 조선에 내투하였던 와르카 부족인. 만주어 마푸타(maputa).

*고산패자(固山貝子) : 궈사 버이서[gvsa beise], 버이러 밑의 관직명.

*석탁(碩託) : 쇼토(xoto), 인명.

*니감(尼堪) : 니칸(nikan), 인명.

*박화탁(博和託) : 보호토(bohoto), 인명.

*라탁(羅託) : 로토(loto), 인명.

*갑라장경(甲喇章京) : 잘안 장긴(jalan janggin), 관직명.

*국구(國舅) 아십달이한(阿什達爾漢) : 아시다르한 낰추[asidarhan nakcu]

*매륵장경(梅勒章京) : 머이런 장긴(meiren janggin), 관직명.

*색륵(色勒) : 설어(sele), 인명.

*아이진(阿爾津) : 아르진(arjin), 인명.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 다이곤(多爾袞)

 : 누르하치의 14남 도르곤[dorgon]의 봉작명.

   만주어로는 호쇼이 머르건 친왕[hoxoi mergen cin wang]

*다라패륵(多羅貝勒) 호격(豪格)

 : 홍 타이지의 1남 호오거[hooge]의 봉작명, 만주어로는 도로이 버이러[doroi beile]

   원 봉작명은 화석예친왕(和硕豫亲王), 만주어로는 호쇼이 어르커 친왕[hoxoi erke cin wang]

*퉁극신(佟克申) : 인명. 와르카 부족민으로 추정되며 니루 장인을 역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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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 강화도 & 강도지도(江都地圖)>



○ 1637년 1월 16일에 명을 내려 석옹과라 파도로(숑코로 바투루) 로살(로오사)은 오배(우바이) 등과 더불어

칙서를 지니고 선봉의 전군을 인솔하여 성경(청의 수도 심양)으로 귀환하게 하였다.

본국에 남아 수비하던 화석정친왕(호쇼이 우전 친왕) 제이합랑(지르갈앙), 다라무영군왕(도로이 바투루 균왕) 아제격(아지거), 

다라요여패륵(doroi bayan beile) 아파태(아바타이) 등에게 유지를 내려 말하길

   <지난해 12월 8일에 수대(1차 선봉대, 마푸타의 300기병)와 선봉의 병력이 이미 의주의 진강(압록강)을 건넜고 

    9일 동틀 무렵에 화석예친왕(호쇼이 어르커 친왕) 다탁(도도)이 1 우록(니루)당 갑사 3명씩을 인솔하고

    다라패륵(도로이 버이러) 악탁(요토)은 1 우록당 갑사 5명씩을 인솔하고 나란히 순서대로 서로 이어나가 강을 건넜다.

    짐은 10일에 대군을 인솔하여 도강하였다.

    수대와 선봉의 군대는 12월 14일에 장차 조선 왕경성(서울)에 이르렀는데

    조선의 부장 2명, 유격 4명, 비어 6명이 정병 60여를 인솔하고 맞아 싸우러 오니

    모두 아군이 섬멸하고는 왕경(서울)에 이르렀는데

    최 각신(최명길)과 이 시랑(이경직)이란 자들이 있어 와서 맞이하였고 내영(來迎/와서 맞이함)하였고,

    간사하게 속여 꾸미는 말로써 우리 군대를 늦췄다.

    이때 조선 국왕(인조)은 이미 장자(소현 세자)와 뭇 신하를 인솔하여 왕경성을 나가

    은밀히 도망가 동쪽으로 40리를 달아나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최와 이 두 사람 또한 도망가기를 획책하여 왕경성으로 들어갔다가 마침내 다음날에 다시 오지 않았다.

    선봉의 군대가 비로소 국왕이 도망쳐 달아났다는 것을 알고는 뒤를 쫓아 남한산성에 이르러

    바야흐로 조선을 꾀어서 더불어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때 화석예친왕(호쇼이 어르커 친왕) 다탁(도도)과 다라패륵(도로이 버이러) 악탁(요토) 등의 군대가

    계속하여 이르러 남한성을 둘러 목책을 세우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짐이 아직 이르지 못하였는데 앞서 조선에 원래 있었던 와이객(와르카)의 파도로(바투루) 엽진(예천)과 마복탑(마푸타)이

    200호를 인솔하여 귀부하여 왔다.

    또 조선의 순무 한 명이 군사 1만 8천을 인솔하고 2 대로 나누어 조선왕을 구원하여 오니

    고산패자(궈사이 버이서) 석탁(쇼토), 니감(니칸), 박화탁(보호토), 라탁(로토)와

    갑라장경(잘안 장긴) 국구(낰추) 아십달이한(아시다르한) 등이 깨트리고 모두 참하였다.

    또 부장 1명이 군사 5천을 인솔하여 구원하여 왔는데 또한 석탁 등이 깨트렸고

    매륵장경(머이런 장긴) 색륵(설어)과 갑라장경 아이진(아르진) 등이 가서 적병의 오는 길을 끊었다.

    군사 500을 인솔하여 구원하여 오는 한 명의 부장과 조우하여 또한 공격하여 깨트리고

    장차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려는 적병이 있었는데 매륵장경 석옹과라 파도로 노살과 갑라장경 오배 등이 조우하여

    길을 끊고 싸워 200여인을 참하였다.

    또 남한산성의 군사 400여가 출성하였는데 또한 로살이 깨트렸다.

    짐은 대군을 친히 통솔하여 12월 29일에 남한성에 이르렀다.

    금년 정월 초 3일에 조선의 전라도 심총병과 충청도 이총병이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여 왔는데

    다라패륵 악탁이 공격하여 깨트렸다.

    7일에 전라와 충청 2도의 순무와 총병이 또 군사를 인솔하여 오니 화석예친왕 다탁이 공격하여 깨트렸다.

    화석예친왕(호쇼이 머르건 친왕) 다이곤(도르곤)과 다라패륵 호격(호오거)이 장산에 이르니

    장산과 창주의 관민이 성을 버리고 산 정상에 목책을 세웠다.

    아군이 위아래로 협공하니 조선군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자가 심히 많았다.

    (도르곤과 호오거가) 영변에 이르니 의주 총병과 황주 원수가 군사 500을 인솔하여 영변성을 나왔는데 

    곧바로 공격하여 깨트렸다.

    아울러 그 안주의 병 200도 깨트렸다.

    또 영변부원수 이모가 참장 3명, 유격 4명, 비어 15명과 더불어 기병 700과 보병 300을 인솔하여

    그 왕을 구원하러 가는 것을 약탈하러 나온 몽고 고산액진(궈사이 어전/기주) 액부(어푸/사위) 소납이 조우하여

    또한 공격하여 깨트리고 부원수 이모를 생포하였다.

    (도르곤의) 아군이 선둔촌에 이르러 첩자를 잡아 조사하여 

    황주 도원수(김자점)가 3일 전에 병 1만 5천을 인솔하여 구원하러 간 것을 알게 되었다.

    화석예친왕 다이곤과 다라패륵 호격이 즉각 정예 기병을 선발하여 밤을 새워 뒤쫓아 가서 습격하여 깨트렸다.

    다이곤과 호격이 정월 초 10일에 비로소 짐의 군영에 도달하였는데

    도로가 좁고 험하였기 때문에 지체되었다 한다.

    사로잡아 온 사람을 심문하니 말하길

    조선왕이 성중의 양식과 땔나무 및 물이 모두 궁핍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하였다.

    조선왕이 그 나라의 대신을 보내 아군의 앞으로 와 죄를 청하여 말하길

    어떤 일이든 오직 명을 따르겠다 하였으나 짐은 오히려 윤허하지 않았다.

    또 사람을 얻어 물어보니 말하길

    국왕이 장자(세자)와 함께 뭇 신하와 더불어 모두 남한에 있고 그 나머지 처자는 강화도에 있다 하였다.

    또는 말하길 왕은 처자와 함께 한 곳에 모두 있다고도 하였다.

    짐은 배를 만들어 이 섬을 먼저 공격할 작정이다.

    만약 그 처자를 얻는다면 곧 성내의 사람 또한 자연히 귀순할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이후에 공성을 계획하여도 또한 늦지 않을 것이다.

    보아하니 이 섬 또한 쉽게 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늘이 우리를 도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또 유지를 내려 말하길

   <사신이 이르는 날 즉시 신중하고 능력이 있는 관리 2명을 가려서 뽑아

    1 갑라(잘안)당 효기의 장교 1명씩, 1 우록(니루)당 갑사 1명씩,

    1 우록(니루)당 나무를 베고 세울 벼슬이 없는 사람 1명씩과 더불어

    8호마다 각각 수령 1명씩을 인솔하고 배를 만들 장인 각각 5명씩을 재차 선발하여

    앞서가는 애양하 변경의 퉁극신의 형식에 의지하여 배 10척을 만들고

    조선의 형식에 의지하여 마선(말 수송배) 10척을 건조하라!

    화석예친왕 다탁의 가인(보오이) 탁목포로찰로 하여금 지난날에 이미 퉁극신 방식으로 배를 만드는 방법과

    조선식 마선의 건조를 알고 있는 장인을 보내게 하라!

    앞서가는 그 제조를 감독할 관리는 모름지기 애양하의 변경에 땅을 택하여 견고히 지키라!

    의주의 강에 도달하는 자는 그곳에 주둔하라!

    그 만든 진영에 배를 만드는데 필요한 대장장이가 이르면 또한 계속하여 순시를 수차례 시행하여 오게 하라!

    모름지기 경계병을 여러 조로 나누어 최선을 다해 막아 지킬 것이며 소홀히 하여 일을 그르침에 이르게 하지 마라!

    만약 나라안에 큰일이 있다면 더디거나 늦추게 하지 마라!

    더불어 긴급한 소식은 마땅히 2~3백인을 보내오라!

    그 외의 사소한 사무의 소식은 2월 20일에 사람을 보내 통원보에 이르게 하고

    짐이 보낸 사신을 기다려 함께 오라!

    지금 보내는 사람이 도착하면 즉각 배 만드는 사람들은 출발하여 2월 15일 이내로 공사를 마치도록 하라!

    포안소이덕은 성경(청의 수도 심양)에 5일에 도착하면 거듭 영을 내려 배 만드는 사람을 호송하여 오게 하라!

    그 우익의 선봉이 5일에 도착하면 영을 내려 갈해로 가 주둔하여 지켜라!

    좌익의 선봉은 요하의 얼음이 풀릴 때에는 개성으로 가 주둔하여 지켜라!

    만약 요하의 얼음이 풀리지 않으면 우장으로 가 주둔하여 지키고

    얼음이 풀린 후에는 아울러 우장에 주둔하여 지키는 호군(바야라군)을 취하여 함께 개성으로 가 주둔하여 지켜라!>



요약.

1637년 1월 16일 홍 타이지는 로오사와 우바이에게 선봉대의 병력을 이끌고

본국 수도인 성경(심양)으로 되돌아 가게 한다.

또한 본국을 지키고 있던 지르갈앙, 아지거, 아바타이에게 조선 정벌의 전황을 알려준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1636년 12월 8일 1차 선봉대 마푸타의 300 기병 의주의 압록강 도강

2. 12월 9일 아침 2차 선봉대 도도(+쇼토+니칸) 정예 바야라 1천 압록강 도강

   → 약 333니루에서 1니루당 3갑병씩 차출

3. 12월 9일 4차 선봉대 요토(+양우리) 3천 기병 압록강 도강

   → 약 333니루에서 1니루당 5갑병씩 차출

4. 12월 10일 5차 홍 타이지의 본대 압록강 도강

5. 12월 14일 1차 선봉대 마푸타 300기병 한양 도착

   → 조선군 72명의 선발대 도전해 오니 섬멸

   → 최명길+이경직 시간을 끌기 위해 마푸타 속임

   → 그사이 인조+소현세자 남한산성으로 도주

   → 최명길+이경직 마저 다음날 남한산성으로 도주

   → 마푸타 300기병 조선 인조 추격하여 남한산성 포위

   → 마푸타 병력 부족과 극심한 피로로 조선측과 위장 대화 시도

6. 12월 16일 2차+4차 선봉대 도도+요토 4천 기병 남한산성에 도착해 목책 두르고 포위 시작

7. 12월 21일 조선에 내투한 동해여진 와르카 부족의 예천+마푸타 200호를 데리고 청에 항복

   → 조선 4도 근왕병 정보 알림

8. 12월 25일 홍 타이지 본대 5기에서 1니루당 5갑사, 1바야라병을 뽑아 도도에게 추가병으로 보냄

9. 12월 29일까지 조선군 격파 요약

   → 쇼토+니칸+보호토+로토+아시다르한 조선 근왕병 1만 8천+5천= 총 2만 3천 격파

   → 설어+아르진 조선 근왕병 500 격파

   → 로오사+우바이 조선 근왕병 200 격파

   → 로오사 남한산성에서 출격한 조선군 400 격파

10. 12월 29일 홍 타이지의 본대 남한산성 도착

11. 1637년 1월 3일 요토가 조선 전라+충청 근왕병을 격파

12. 1637년 1월 7일 도도가 조선 전라+충청 근왕병을 격파

13. 좌익군 도르곤+호오거 만주+몽고 3기의 전투보고

   → 1636년 12월 8일 3차 좌익군 도르곤+호오거 벽동에서 압록강 도강

   → 장산, 창주 군관민 도륙

   → 영변(철옹산성) 조선군 500격파

   → 안주 조선군 200격파

   → 영변 부원수 이모(신경원)의 기병700+보병300을 약탈나간 몽고 기주 소납이 격파하고 이모씨 생포

   → 선둔촌(황주인근)에서 착생하여 도원수 김자점이 1만5천(실상 5천)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3일 전 출격했다는 정보 알아냄

   → 정예 기병 선발하여 추격 개시

   → 토산에서 김자점 군을 발견하고 기습하여 격파

   → 1637년 1월 10일 좌익군 남한산성 도착(길이 험하여 늦었다고 보고)

14. 남한산성에서 알아낸 정보 요약

   → 남한산성에 식량+땔감+물이 얼마 없음.

   → 조선 왕과 세자가 남한산성에 있음

   → 나머지 처자는 모두 강화도에 있음

15. 홍 타이지의 작전 계획 요약

   → 조선의 철군 요청 윤허 못함

   → 강화도를 먼저 함락하면 조선왕이 항복할 것이고, 항복하지 않으면 공성하여 함락할 계획 수립

   → 강화도는 쉽게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함.


한편 홍 타이지는 강화도 공략과 가도의 명군 소탕을 위한 선박 건조를 명한다.

우선 사신이 성경에 이르면 즉각 선박 건조를 감독할 유능한 관리 2명을 선발하고

1잘안(5니루)당 효기 장교 1명씩, 1니루당 갑병 1명씩, 1니루당 나무를 조달할 사람 1명씩,

8호마다 수령 1명씩을 차출하고 장인 5명씩을 따로 선발하여

퉁극신의 방식대로 배 10척, 조선의 말 수송배의 형식으로 10척 건조를 명한다.

홍 타이지는 배 건조를 2월 15일까지 완료하라 명한다.

또한 선박을 건조하는 곳의 방비를 철저하게 할 것이며 결코 실수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 강조한다.

한편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선봉대의 우익은 갈해로 이동하여 수비하고

좌익은 요하의 얼음이 풀리면 개성을 지키고, 얼음이 얼어 있으면 우장을 지킬 것이며

만약 얼음이 풀리면 우장을 지키는 바야라군과 함께 개성으로 이동하여 수비하라 명한다.

홍 타이지는 본국을 수비하는 왕과 버이러들에게 긴급한 소식은 즉각 2~300명을 보내 보고하고

급하지 않은 소식은 2월 20일에 통원보에 이르러 자신이 보낸 사신과 함께 조선으로 오게 하였다.


-10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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