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군대가 온다는 봉화를 막은 김자점 병자호란 이야기

1636년 12월 2일 청나라 수도 성경(심양)을 출격한 5만 청군은 조선 정벌을 위한 남진을 개시합니다.

마푸타의 300 선봉대가 의주의 압록강을 건넌 날이 12월 8일입니다.

동시에 좌익군 도르곤+호오거가 벽동의 압록강을 건넌 날도 12월 8일이지요.

당시 의주에서 벽동까지 압록강변을 따라 설치된 봉화대는 여지도에는 약 20여 곳으로

대략 4~5km마다 1곳씩 설치되어 있더군요.

병자록에 의하면 최초 봉화가 일어난 날은 12월 6일입니다.

압록강을 건너기 2일 전에 이미 청나라군의 움직임을 간파하였다는 의미이지요.

봉화는 신속하게 남하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만 황주 정방산성에 있던 사령관 도원수 김자점의 의해 커트되었습니다.

이유는 <적이 올 리가 없는데 잘못된 정보가 도성으로 들어가면 크게 혼란할 것이다!> 라는 것이었지요.

이미 청나라는 수차례 11월 25일 동짓날까지 해명 사신을 보내지 않으면 

반드시 조선을 정벌하겠노라라고 말했던 터였는데

도원수는 홍 타이지가 날짜까지 지목한 이 말을 한 귀로 흘렸나 봅니다.

여하튼 작계에 의해 산성으로 모두 들어간 서북방 진들로 인해 도로는 무인지경이 되었고

마푸타의 선봉 300 기병은 <조선에 화친하러 간다~~~>는 소리를 질러가며

서울까지 아무런 저항조차 받지 않고 7일 만에 1200리, 약 480km를 돌파하고

한양을 포위하고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끊었으며 인조를 남한산성에 몰아넣습니다.


마푸타가 서울에 도착한 날이 12월 14일인데,

김자점의 파발 기병이 한양에 급보를 전한 것이 12월 13일 오후입니다.



병자록 中

○ 김자점(金自點)이 피곤한 백성을 몰아쳐 정방성(正方城)을 쌓는데, 또 형벌과 매질로써 위엄을 세워 인심을 점점 더 잃었다. 일찍이 말하기를, “오랑캐가 올 겨울에는 반드시 오지 않을 것이다.” 하고, 어떤 사람이 혹, “적이 온다.”고 하면 바로 성을 내었다. 동방(冬防)이 이미 지났는데도 성을 지킬 군졸을 하나도 더 첨가하여 방비하지 않고, 의주 건너편에 있는 용골산(龍骨山)부터 봉화불을 두어, 원수(元帥)가 있는 정방성에서 그치게 하였으니, 대개 이는 봉화가 만일 도성에 이르면 소란스러워질까 염려해서였다. 12월 6일 이후에 연이어 두 번 봉화를 들었는데, 자점은 말하기를, “이것은 박노가 들어가서 오랑캐가 반드시 나와 환영하는 것이다. 어찌 적이 올 리가 있겠는가.” 하고는 즉시 치계(馳啓)하지 않다가 9일에서야 비로소 군관 신용(申榕)을 보내 의주에 가서 살펴보게 하였다.신용이 순안(順安)에 이르니 적의 기병이 이미 가득 차 있자, 곧장 돌아와 감사 홍명구(洪命耈)에게 고하니, 명구가 크게 놀라 단기(單騎)로 자모산성에 달려 들어갔다. 신용이 돌아와 자점에게 보고하니, 자점이 말하기를, “망녕된 말로 군정(軍情)을 어지럽힌다.” 하고, 목을 베려고 하자, 신용이 말하기를, “적이 내일에는 마땅히 여기에 당도할 터이니 우선 나를 죽이지 마시오.” 하였다. 조금 있다가 나중에 보냈던 군관이 또 와서 급함을 보고하는데 신용이 말한 바와 같으니, 비로소 장계를 올렸다. 대개 적병은 강을 건너서 성진(城鎭)을 돌아보지도 않고 곧장 올라오면서 화친을 맺으려 한다고 칭하며, 바람같이 달려와, 변방을 지키던 신하들이 올리는 장계를 적이 모두 탈취하였다. 이 때문에 조정에서는 까마득히 변방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합니다! 도원수가 김자점이옵니다!-


덧글

  • Fedaykin 2018/09/21 16:01 #

    전방에서 잘 내려오던 봉수가 도원수 있던곳에서 끊겼군요.
    에휴 ㅠㅠ
  • 길공구 2018/09/22 00:52 #

    김자점의 한계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잘못된 정보로 조정을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었으니까요.
    당시 정보력이 너무 불확실해서 김자점의 파발이 좀 늦더라도
    정확한 병력 상황만 보고했다면 인조가 허겁지겁 마푸타의 300병력에
    남한산성으로 가지는 않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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