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간신열전(7) 진회 열전 국역 4부-계략으로 재상이 되다!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남송의 간신 진회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1부-할지는 절대 아니되옵니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7242

2부-북송 멸망 최후의 충신 진회! http://cafe.naver.com/booheong/158570
3부-의심스러운 금나라 탈출! http://cafe.naver.com/booheong/159103


<간신 열전>

1편 송사 간신열전 채경 http://cafe.naver.com/booheong/98808

2편 송사 간신열전 곽약사 http://cafe.naver.com/booheong/103206

3편 송사 환자열전 동관 [방랍 포함] http://cafe.naver.com/booheong/85702

4편 송사 간신열전 장방창(張邦昌) http://cafe.naver.com/booheong/140479

5편 송사 간신열전 황잠선(黃潛善) http://cafe.naver.com/booheong/141227

6편 송사 반신열전 묘부/유정언 http://cafe.naver.com/booheong/152079


<인물 열전>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청사고

왕올당, 왕고, 대선/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저영/추옝, 서이합제/슈르하치, 아이합제/야르하치 

피옹돈[비영동], 호호리[하화례], 어이두[액역도], 안퍙워[안비양고]훠르한/호이한부찰씨(푸차 군다이) 

영아이대/용골대/잉월다이액이덕니/어르더니 밬시양고리/양우리


송서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5%AE%8B%E5%8F%B2/%E5%8D%B7473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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紹興元年二月,除參知政事

七月,宗尹罷。

先是,范宗尹建議討論崇寧、大觀以來濫賞,檜力贊其議,見帝意堅,反以此擠之。

宗尹既去,相位久虛。

檜揚言曰:

「我有二策,可聳動天下。」

或問何以不言,檜曰:

「今無相,不可行也。」

八月,拜右僕射、同中書門下平章事兼知樞密院事。

九月,呂頤浩再相,檜同秉政,謀奪其柄,風其黨建言:

「周宣王內修外攘,故能中興,今二相宜分任內外。」

頤浩蓫遂建都督府於鎮江。

帝曰:

「頤浩專治軍旅,檜專理庶務,如種、蠡之分職可也。」

소흥(紹興/남송 1대 황제 고종의 #2연호) 원년(元年/1131년) 2월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제수(除)하였다.

7월에, 범종윤(宗尹)이 파직(罷)되었다.

이에 앞서, 범종윤(范宗尹)이 숭녕(崇寧/북송 8대 황제 휘종의 #2연호)과 대관(大觀/북송 8대 황제 휘종의 #3연호) 이래(以來) 

남상(濫賞/상을 남발함)을 토론(討論)하자 건의(建議/의견을 말함)하였는데,

진회(檜)가 그 의논(議)을 역찬(力贊/힘써 도와줌)하였는데,

제(帝)의 의지(意)가 견고함(堅)을 보고는, 반대로(反) 이로써 제(擠/배척함)하였다.

범종윤(宗尹)이 이윽고 퇴거(去)하자, 상위(相位/재상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었다.

진회(檜)가 양언(揚言/공공연하게 말함)하여 말하길

「나에게는 두 가지 책략(策)이 있는데, 가히(可) 천하(天下)를 용동(聳動/두려워하고 동요함)할 것이다.」

혹자(或)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말하지 않으며, 진회(檜)가 말하길

「지금(今) 재상(相)이 없으니, 행(行)함이 불가(不可)하다.」

8월에, 우복사(右僕射)와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겸(兼)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를 배(拜/벼슬을 줌)하였다.

9월에, 여이호(呂頤浩)가 재차(再) 재상(相)이 되었고, 진회(檜)가 함께 병정(秉政/정권을 잡음)하였는데,

그 병(柄/권력)을 모탈(謀奪/꾀하여 빼앗음)하여, 그 당(黨)이 멋대로 건언(建言/의견을 제기함)하길

「주(周)의 선왕(宣王)은 내수외양(內修外攘/안으로는 나라를 다스리고 밖으로는 외적을 물리침)하여,

   이런 연고(故)로 능히(能) 중흥(中興/쇠약한 힘이 다시 일어남)하였나이다.

   지금(今) 두 재상(相)은 마땅히 내외(內外)를 분임(分任/일을 나누어 맡음)하여야 합니다.」

여이호(頤浩)가 마침내 진강(鎮江)에 도독부(都督府)를 세웠다.

제(帝)가 말하길

「여이호(頤浩)는 군려(軍旅/군대)를 전치(專治/오로지 한 분야만을 힘씀)하고,

   진회(檜)는 서무(庶務)를 전리(專理/오로지 다스림)하면,

   문종(種)과 범려(蠡)의 분직(分職/직분을 나눔)과 가히(可) 같다 할 것이다.」



*주(周)의 선왕(宣王)

 : 서주(西周)의 11대 왕으로 본명은 희정(姬靜)으로 10대 왕 여왕(厲王)의 아들이다.

   부친 여왕(厲王)이 폭동으로 쫓겨나고 타국으로 도주하였고

   서주는 왕이 없는 공화제가 실시되었으나 기원전 828년 귀국하고 827년 즉위하였다.

   주정공(周定公), 소목공(召穆公), 방숙(方叔), 윤길보(尹吉甫), 중산보(仲山甫)를 중용하여

   내치를 회복하여 선왕중흥(宣王中興)이라 불리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무리한 국외 원정으로 국력이 크게 쇠하여 결국 아들이자 12대 왕인

   유왕(幽王) 희궁녈(姬宮涅) 때에 서주는 견융 등의 침공을 받아 멸망한다.

   서주 멸망 후 제후들은 희의구(姬宜臼)를 옹립하여 동주를 세웠지만

   주왕실은 명목상으로만 남고 제후들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된다.


*종(種)과 려(蠡)

 : 전국시대 월나라의 두 신하인 문종(文種)과 범려(範黎)를 뜻한다.

   초나라 사람들인 두 사람은 나란히 월나라로 망명하여 대부가 된다.

   월왕 구천이 기원전 494년 오나라왕 부차에게 패하여 구천은 오나라에 포로로 끌려간다.

   이때 범려는 구천에게 군사의 일은 자신이 위나 국정은 문종이 위라며

   비어있는 월나라를 문종에게 맡기라 청한다.

   이에 구천은 범려를 대동하고 오나라에 가서 3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다.

   20여 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마침내 월나라는 오월쟁패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그 후 범려는 미련 없이 월나라를 떠났으나 문종은 월나라에 남는다.

   이때 범려가 문종에게 한 말이 토사구팽이다.

   이후 문종은 구천에 의해 자결한다.


1131년 2월에 참지정사에 제수되었다.

7월에, 범종윤이 파직되었다.

이에 앞서 범종윤이 숭녕(1102~1106년)과 대관(1107년~1110년) 이래 남발한 포상에 대해 토론하자 건의하였는데

진회가 그 의논에 힘껏 찬성하였다.

그러나 황제의 의지가 견고한 것을 보고는 돌아서 이 건의를 배척하였다.

범종윤이 이윽고 벼슬에서 물러나자 재상의 자리가 오랫동안 비었다.

진회가 공공연하게 말하길

   <나에게는 두 가지 책략이 있는데 가히 천하를 흔들만한 것이다>

혹자가 어떤 책략인지 묻자 진회가 답하지 않고 말하길

   <지금 재상이 없으니 실행하는 것은 불가하다.>

8월에 우복사, 동중서문하평장사 겸 지추밀원사에 올랐다.

9월에 여이호가 재차 재상이 되었고 진회가 함께 정권을 잡았는데 그 권력을 빼앗고자 모의하여 그 당여가 멋대로 건의를 올리길

   <주나라의 선왕은 안으로는 나라를 다스리고 밖으로는 외적을 물리쳐 이런 연고로 능히 중흥하였나이다.

    지금 두 재상은 마땅히 안과 밖을 나누어 맡아야 하나이다.>

여이호가 마침내 진강에 도독부를 세웠다.

황제가 말하길

   <여이호는 오로지 군사일에만 힘쓰고 진회는 오로지 서무만을 다스린다면

    문종과 범려가 직분을 나눈 것과 가희 같다 할 것이다!>


요약.

1131년 2월 남송으로 돌아온 지 1년 만에 진회는 예부상서에서 참지정사로 승진한다.

7월에 재상 범종윤은 남송 개국 후 포상이 남발한 점을 들어 휘종조부터 조사하여 포상의 남발을 줄이자 건의한다.

범종윤의 천거로 조정에 들어온 진회는 처음에는 범종윤의 의견을 좇았으나

고종이 포상 규제에 난색을 표하자 곧장 돌아서 범종윤에 대항한다.

결국 범종윤은 파직되어 물러나 재상 자리가 비게 되었다.

진회는 자신이 재상감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으며 마침내 여이호와 함께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진회의 도당들은 정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계략을 부려 주 선왕의 예를 들며 

여이호는 군권을 쥐고 외지로 나가게 하고 내치는 진회에게 맡기라 고종에게 건의한다.

이에 여이호는 진강에 도독부를 개설하고 임지로 나갔고 조정은 진회가 1인자가 된다.

고종은 외치와 내치를 구분한 것을 두고 월나라 범려와 문종의 예와 같다고 흡족해한다.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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