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 희종 국역 03부-희종 부친의 묘호를 휘종이라 하다. 금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일전에 시조 함보부터 태종 오걸매까지 금사 본기를 국역하였는데요.

금 3대 황제 희종(熙宗)의 본기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01부-14세에 후계자(암반발극렬)가 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40637

02부-17세에 즉위&혼덕공(송휘종)이 죽으니 부조하다. http://cafe.naver.com/booheong/140686


금사 시조 함보 ~ 태종 오걸매 국역 http://cafe.naver.com/booheong/83588

금사 리뉴얼 국역 1부~3부 http://cafe.naver.com/booheong/133746

만주어 금사 1부~22부 http://cafe.naver.com/booheong/139268

송사 휘종 조길 1부~27부 http://cafe.naver.com/booheong/108420

송사 흠종 조환 1부~17부 http://cafe.naver.com/booheong/139562
송사 고종 조구 1부~43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5197
요사 천조황제 야율연희 1부~2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07134
거란국지 천조황제 야율연희 1부~12부 http://cafe.naver.com/booheong/104758

금 완안부 1세~10세 계보도 http://cafe.naver.com/booheong/110904


원문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9%87%91%E5%8F%B2/%E5%8D%B74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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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月甲申,左副元帥宗輔薨。

九月壬申,追尊皇考豐王爲景宣皇帝,廟號徽宗,皇妣蒲察氏爲惠昭皇后。

戊寅,尊太祖后紇石烈氏、太宗后唐括氏皆爲太皇太后,詔中外。

乙酉,改葬徽宗及惠昭后爲興陵。

十一月,以尚書令宋國王宗磐爲太師。

乙亥,初頒曆。

己卯,以元帥左監完顏希尹爲尚書左丞相兼侍中,太子少保高慶裔爲左丞,平陽尹蕭慶爲右丞。

己丑,建天開殿爲爻剌。

十二月癸亥,始定齊、高麗、夏朝賀、賜宴、朝辭儀。

以京西鹿囿賜農民。

[천회(天會/금 2대 황제 태종의 #1연호) 13년(1135년)] 5월 갑신일(甲申)에,

좌부원수(左副元帥) 종보(宗輔/금 태조 아골타의 #3남)가 훙(薨)하였다.

[천회(天會/금 2대 황제 태종의 #1연호) 13년(1135년)] 9월 임신일(壬申)에, 

황고(皇考/임금의 돌아가신 아버지) 풍왕(豐王)을 추존(追尊/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리는 것)하여 

경선황제(景宣皇帝)로 하고, 묘호(廟號)는 휘종(徽宗)이라 하였으며, 

황비(皇妣/죽은 선대의 황후) 포찰씨(蒲察氏)는 혜소황후(惠昭皇后)로 하였다.

무인일(戊寅)에, 태조(太祖)의 황후(后) 흘석렬씨(紇石烈氏)와 태종(太宗)의 황후(后) 당괄씨(唐括氏)를 

존(尊/높임)하여 모두 태황태후(太皇太后)로 하여, 중외(中外/천하)에 조(詔)하였다.

을유일(乙酉)에, 휘종(徽宗/금 3대 황제 희종의 부친 완안종준)과 더불어 혜소(惠昭) 황후(后)를

개장(改葬/이장)하여 흥릉(興陵)이라 하였다.

[천회(天會/금 2대 황제 태종의 #1연호) 13년(1135년)] 11월에,

상서령(尚書令) 송국왕(宋國王) 종반(宗磐/금 2대 황제 태종의 장남)을 태사(太師)로 삼았다.

을해일(乙亥)에, 처음으로 반력(頒曆/책력을 반포함)하였다.

기묘일(己卯)에, 원수좌감(元帥左監) 완안희윤(完顏希尹)을 상서좌승상(尚書左丞相) 겸(兼) 시중(侍中)으로 삼고,

태자소보(太子少保) 고경예(高慶裔)를 좌승(左丞)으로 삼았으며,

평양윤(平陽尹) 소경(蕭慶)을 우승(右丞)으로 삼았다.

기축일(己丑)에, 효랄(爻剌)에 천개전(天開殿/행궁)을 건(建/세움)하였다.

[천회(天會/금 2대 황제 태종의 #1연호) 13년(1135년)] 12월 계해일(癸亥)에,

비로소 제(齊/괴뢰국 유예의 제나라)와 고려(高麗) 및 하(夏)의 

조하(朝賀/조정에 나아가 임금에게 올리는 하례), 사연(賜宴/연회를 베풂), 

조사(朝辭/외국의 사신이 떠나기에 앞서 임금께 하직 인사를 드리는 일)의 의식(儀)을 정(定)하였다.

경서(京西)의 녹유(鹿囿/사슴 방목장)를 농민(農民)에게 하사(賜)하였다.


*북송의 8대 황제 조길의 묘호는 고종에 의해 1137년 9월 05일에 휘종(徽宗)이 되었으며

 금의 3대 황제 희종 완안단에 의해 추존된 완안종준의 묘호 휘종(徽宗)은 1135년 9월 02일이다.


*완안희윤(完顏希尹)

 : 본명은 곡신(穀神)이며, 올실(兀室)/오실(悟室)/호사(胡舍)라고도 함.

   환도(歡都)의 아들로, 아골타의 명에 의해 여진문자를 창제하였음.

   완안종한을 따라 천조제를 사로잡고 요의 서경(西京)을 항복받아내는 공을 세움

   1차 북송 정벌전에서 원수(元帥) 우감군(右監軍)에 임명되어 송의 태원(太原)을 공격함.

   2차 북송 정벌전에서는 개봉을 포위하고 휘, 흠종과 황족을 사로잡았으며,

   종한을 따라 송의 강왕 조구(남송 고종)를 추격하였음.

   희종이 제위에 오르자 상서좌승상(尚書左丞相) 겸 시중(侍中)에 임명됨

   1139년에는 진왕(陳王)에 봉해졌으며, 종간(宗幹)과 함께 종반(宗磐)과 종준(宗雋)을 주살하였음.

   1140년 9월 희종에 의해 "마음에 임금이 없다"라는 죄목으로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음.

   1143년 희종에 의해 형국공(邢國公)으로 추증되었으며, 1151년에 해릉왕에 의해 예왕(豫王)에 봉해졌음.


*완안종보(完顏宗輔)

 : 금 태조 아골타의 #3남으로 금사 세기보(世紀補)에는 예종(睿宗)으로 추존되었다.

   본래 여진 이름은 와리타(訛里朵)이고 후에 종보(宗輔)로 바꿨는데 세종에 의해 추존되면서 종요(宗堯)로 바뀌었다.

   장남 완안유(完顏褎)가 금 5대 황제 세종이 되면서 예종으로 추존되었다.

   형 종망의 사후 좌부원수를 이어 받아 사촌 종한과 더불어 희종을 옹립하고 남송전쟁을 주도하였다.

   1135년 5월 규주(媯州)에 가다가 죽으니 나이 40이었다.


*완안종반(完顏宗磐)

  : 금 2대 황제 태종의 장남으로 여진 이름은 포로호(蒲魯虎)이고 한족식 이름은 종반(宗磐)이다.

    1132년 국론홀로발극렬(國論忽魯勃極烈)에 임명되어 공식적인 서열은 NO.3였다.

    희종이 등극하자 상서령에 임명되고 송국왕에 봉해졌다.

    1138년 완안창과 결탁하여 송에 땅을 할양하였고, 이듬해에 희종 완안단에 의해 주살당하였다.


*고경예(高慶裔)

   : 발해인으로 요나라에서 관리를 지내다 금에 항복하였다.

     외국어에 정통해 종한의 통역관으로 일했으며, 금과 송의 해상동맹 중에 1122년 4월 사신으로 송에 가기도 하였다.

     이로써 종한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어 1129년에는 서경유수가 되었다.

     금이 1130년 괴뢰국 유예의 제나라를 세우자 책봉사로 제나라에 갔다.

     희종이 즉위하자 상서좌승에 임명되었으나 1137년 종한의 병권을 회수하려는 희종의 정치투쟁에 휘말려

     재물을 착복하였다는 완안종반의 탄핵으로 하옥되고 1137년 6월에 처형되었다.

     처형되기 직전에 종한이 고경예를 찾아와 눈물로 이별하였는데 고경예는 종한이 자신의 말대로 하였다면

     오늘날 종한이 병권을 회수당하고 자신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경예의 죽음 이후 종한 역시 식사를 하지 않고 얼마 안있어 죽게 된다.


*소경(蕭慶)

   : 요의 신하로 1121년 5월 요 도통 야율여도를 따라 금에 투항하였다.

     1127년 2차 개봉 포위전에서는 금의 사신으로 개봉성에 들어와 협상을 주도하였다.

     태종 말에 평양윤이 되었고 희종이 즉위하자 상서우승에 임명된다.

     1130년 금이 괴뢰국 유예의 제나라를 세우고 연호를 부창(阜昌)이라 하였는데

     소경이 원수부사로 개봉에 들어와 제황제 유예와 송과의 일을 자주 상의하였다.

     1140년 9월 희종에 의해 "마음에 임금이 없다"라는 죄목으로 좌승상 완안희윤과 함께

     소경도 우승으로 살해당했다.


1135년 5월 11일에 좌부원수 종보(태조 아골타의 #3남)가 훙하였다.

1135년 9월 02일에 황제의 부친 풍왕 완안종준(宗峻/태조 아골타의 #5남)을 추존하여

경선황제로 하고 묘호를 휘종(徽宗)이라 하였으며, 모친 포찰씨는 혜소황후라 하였다.

9월 08일에 태조의 황후 흘석렬씨, 태종의 황후 당괄씨를 높여 모두 태황태후로 하여 중외에 조서를 내렸다.

9월 15일에 휘종(완안종준)과 더불어 혜소황후를 이장하여 흥릉이라 하였다.

11월에 상서령 송국왕 종반(태종 오걸매의 장남)을 태사로 삼았다.

11월 06일에 처음으로 책력을 반포하였다.

11월 10일에 원수좌감 완안희윤을 상서좌승상 겸 시중, 태자소보 고경예를 좌승, 평양윤 소경을 우승으로 삼았다.

11월 20일에 효랄 지역에 행궁 천개전을 건설하였다.

12월 25일에 비로소 제, 고려, 하의 조하, 사연, 조사의 의식을 정하였다.

경서의 사슴 방목장을 농민에게 베풀었다.


요약.

1135년 9월 즉위 원년에 희종은 자신의 부친이자 태조 아골타의 5남인 종준을 황제로 추존하고

묘호를 휘종이라 하였는데 북송의 8대 황제 도군황제의 묘호인 휘종과 동일하다.

희종은 종실에 대한 유화책을 써서 전 황제 오걸매(우치마이)의 장남 송국왕 종반을 태사로 삼는다.

이해에 금의 괴뢰국 제나라를 비롯하여 고려, 서하의 사신의 의례를 정하였다.


-0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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