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 희종 국역 05부-괴뢰국 제나라를 폐하다(1137년) 송사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일전에 시조 함보부터 태종 오걸매까지 금사 본기를 국역하였는데요.

금 3대 황제 희종(熙宗)의 본기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01부-14세에 후계자(암반발극렬)가 되다.

02부-17세에 즉위&혼덕공(송휘종)이 죽으니 부조하다.

03부-희종 부친의 묘호를 휘종이라 하다.

04부-권신 종한의 권력을 줄이다!


금사 시조 함보 ~ 태종 오걸매 국역

금사 리뉴얼 국역 1부~3부

만주어 금사 1부~22부

송사 휘종 조길 1부~27부

금 완안부 1세~10세 계보도


원문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9%87%91%E5%8F%B2/%E5%8D%B74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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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五年正月癸亥朔,上朝太皇太后于明德宮。

齊、高麗、夏遣使來賀。

初用《大明曆》。

己卯,萬壽節,齊、高麗、夏遣使來賀。

六月庚戌,尚書左丞高慶裔、轉連使劉思有罪伏誅。

七月辛巳,太保、領三省事、晉國王宗翰薨。

丙戌夜,京師地震。

封皇叔宗雋、宗固,叔祖暈皆爲王。

丁亥,汰兵興濫爵。

十月乙卯,以元帥左監軍撻懶爲左副元帥,封魯國王。

宗弼右副元帥,封瀋王。

知樞密院事兼侍中時立愛致仕。

十一月丙午,廢齊國,降封劉豫爲蜀王,詔中外。

置行台尚書省爲汴。

十二月戊辰,劉豫上表謝封爵。

癸未,詔改明年爲天眷元年。

大赦。

命韓昉、耶律紹文等編修國史。

以勖爲尚書左丞、同中書門下平章事。

徙蜀王劉豫臨潢府。

[천회(天會/금 2대 황제 태종의 #1연호)] 15년(1137년) 정월(正月) 초하루 계해일(癸亥)에,

상(上/임금, 희종)이 명덕궁(明德宮)에서 태황태후(太皇太后)를 조(朝/문안)하였다.

제(齊/괴뢰국 유예의 제나라)와 고려(高麗) 및 하(夏)가 견사(遣使/사신을 보냄)하여 내하(來賀/하례하여 옴)하였다.

처음으로 《대명력(大明曆/금나라 태종 때 만든 역서)》을 사용(用)하였다.

기묘일(己卯)에, 만수절(萬壽節/희종의 생일)이었는데, 

제(齊)와 고려(高麗) 및 하(夏)에서 견사(遣使/사신을 보냄)하여 내하(來賀/하례하여 옴)하였다.

6월 경술일(庚戌)에, 상서좌승(尚書左丞) 고경예(高慶裔)와 전련사(轉連使) 유사(劉思)가 유죄(有罪/죄가 있음)하여 복주(伏誅/처형함)하였다.

7월 신사일(辛巳)에, 태보(太保)와 영삼성사(領三省事) 및 진국왕(晉國王) 종한(宗翰)이 훙(薨)하였다.

병술일(丙戌) 야밤(夜)에, 경사(京師/수도)에 지진(地震)이 있었다.

황숙(皇叔) 종준(宗雋)과 종고(宗固) 및 숙조(叔祖/작은 할아버지) 훈(暈)을 봉(封)하여 모두 왕(王)으로 삼았다.

정해일(丁亥)에, 병흥(兵興/군사를 일으킴)과 남작(濫爵/작위를 남발함)을 태(汰/걸러냄)하였다.

10월 을묘일(乙卯)에, 원수(元帥) 좌감군(左監軍) 달라(撻懶)를 좌부원수(左副元帥)로 삼고,

노국왕(魯國王)에 봉(封)하였다.

종필(宗弼)을 우부원수(右副元帥)로 삼고, 심왕(瀋王)에 봉(封)하였다.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겸(兼) 시중(侍中) 시립애(時立愛)가 치사(致仕/나이가 들어 퇴직함)하였다.

11월 병오일(丙午)에, 제(齊) 나라를 폐(廢)하였고, 유예(劉豫)를 강봉(降封/내려 봉함)하여 촉왕(蜀王)으로 삼았으며,

중외(中外)에 조(詔)하였다.

변(汴/개봉)에 행태(行台/고관이 지방을 순시할 때의 임시 주재소) 상서성(尚書省)을 설치(置)하였다.

12월 무진일(戊辰)에, 유예(劉豫)가 상표(上表/표문을 올림)하여 봉작(封爵/작위를 봉함)을 사례(謝)하였다.

계미일(癸未)에, 조(詔)하여 명년(明年/다음 해)를 개(改/고침)하여 천권(天眷) 원년(元年)으로 하였다.

대사(大赦/크게 사면함)하였다.

명(命)하여 한방(韓昉)과 야율소문(耶律紹文) 등(等)에게 국사(國史)를 편수(編修/국사를 편찬함)하게 하였다.

욱(勖)을 상서좌승(尚書左丞)과 동중서(同中書)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로 삼았다.

촉왕(蜀王) 유예(劉豫)를 임황부(臨潢府)로 사(徙/옮김)하였다.


*대명력(大明曆)

 : 금나라 태종 때 사천(司天) 양급(楊級)이 만든 역서로 유송 조충지(祖沖之)의 대명력과는 관련이 없다.

   중수대명력은 금 사천감(司天監) 조지미(趙知微)가 중수하였고,

   조선의 세종도 이 대명력을 교정하여 사용하였다.


*고경예(高慶裔)

   : 발해인으로 요나라에서 관리를 지내다 금에 항복하였다.

     외국어에 정통해 종한의 통역관으로 일했으며, 금과 송의 해상 동맹 중에 1122년 4월 사신으로 송에 가기도 하였다.

     이로써 종한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어 1129년에는 서경유수가 되었다.

     금이 1130년 괴뢰국 유예의 제나라를 세우자 책봉사로 제나라에 갔다.

     희종이 즉위하자 상서좌승에 임명되었으나 1137년 종한의 병권을 회수하려는 희종의 정치투쟁에 휘말려

     재물을 착복하였다는 완안종반의 탄핵으로 하옥되고 1137년 6월에 처형되었다.

     처형되기 직전에 종한이 고경예를 찾아와 눈물로 이별하였는데 고경예는 종한이 자신의 말대로 하였다면

     오늘날 종한이 병권을 회수당하고 자신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경예의 죽음 이후 종한 역시 식사를 하지 않고 얼마 안 있어 죽게 된다.


*종한의 책사 발해인 고경예 관련 번역 http://cafe.naver.com/booheong/140760

*황제 오걸매의 권력을 능가한 종한(宗翰) http://cafe.naver.com/booheong/83677

*완안진화상의 선조인 종한의 가계도 http://cafe.naver.com/booheong/96942

*오랑캐! 너만 골탕 먹일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 http://cafe.naver.com/booheong/140751

*남송 고종<반란군으로 괴뢰국을 친다!> http://cafe.naver.com/booheong/153859

*남송 고종<반란군은 반란군으로 제압하라!> http://cafe.naver.com/booheong/153275

*흠종을 보내 남송과 싸우게 하면 어떻게 될까? http://cafe.naver.com/booheong/152468


1137년 1월 1일에 상(희종)이 명덕궁에서 태황태후를 문안하였다.

제(괴뢰국 유예의 제나라), 고려, 서하가 사신을 보내 하례하여 왔다.

처음으로 <대명력(금나라 태종 때 만든 역서)>을 사용하였다.

1월 16일에 만수절(희종의 생일)이었는데 제, 고려, 서하에서 사신을 보내 하례하여 왔다.

6월 20일에 상서좌승 고경예와 전련사 유사가 죄가 있어 처형되었다.

7월 21일에 태보, 영삼성사, 진국왕 종한이 훙하였다.

7월 26일 야밤에 수도에 지진이 있었다.

황숙 종준, 종고 및 숙조(작은 할아버지) 훈을 봉하여 모두 왕으로 삼았다.

7월 27일에 출병과 작위 남발을 걸러냈다.

10월 26일에 원수 좌감군 달라를 좌부원수로 삼고 노국왕에 봉하였다.

종필을 우부원수로 삼고 심왕에 봉하였다.

지추밀원사 겸 시중 시립애가 퇴직하였다.

11월 18일에 제나라를 폐하고 유예를 촉왕으로 내려 봉하여 천하에 조서를 내렸다.

개봉에 행태(임시) 상서성을 설치하였다.

12월 11일에 유예가 표문을 올려 봉작을 사례하였다.

12월 26일에 조서를 내려 다음 해를 고쳐 천권 원년으로 하였다.

대사면령을 내렸다.

명을 내려 한방과 야율소문 등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욱을 상서좌승과 동중서 문하평장사로 삼았다.

촉왕 유예를 임황부로 옮겼다.


요약.

1137년 희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종한의 군권을 내려놓게 하고 조정에 들어오게 하였다.

선황제 태종조에 이미 황제의 권한을 뛰어넘는 군사 통솔권을 가졌으며

북송을 멸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두 인물 종망과 종한 중에 종망은 사망하고 오직 종한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종한의 책사 고경예는 종한에게 절대 군권을 내려놓지 말라 하였으나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고

마침내 1137년 6월 희종은 고경예를 처형한다.

종한은 그제서야 후회하였으나 이미 때는 기울었고 식음을 전폐하였고 결국 사망한다.

희종은 대규모 출병과 작위 남발을 못하게 하여 내치를 다지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즉위 3년차를 마감하며 희종은 태종의 연호인 천회 사용을 중지하고

즉위 4년차부터는 고유의 연호인 천권을 사용한다.

또한 1137년 11월 18일 금의 두 번째 괴뢰국이었던 유예의 제나라를 폐하고 유예를 촉왕에 봉하여

임황부로 옮긴다.

유예를 폐할 때를 살펴보면 군사작전처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희종은 달라와 올출을 사령관으로 남송을 정벌한다고 칭하며 군을 몰고 개봉으로 갔다.

올출은 수천 기병을 이끌고 개봉성으로 곧장 진입하여 유예를 사로잡고

제의 백관을 소집하여 희종의 폐위 교서를 선포한다.

올출은 유예가 8년 동안 제위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면서

금에 억류 중인 흠종을 데려와 다시 황제에 세울 것이라 말하여 개봉성민을 안심시킨다.

유예가 폐위될 때 이를 반대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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