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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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0일

○是日朝鮮國王李倧稱臣以奏書至書曰朝鮮國王臣李倧謹上書於大清國

寬溫仁聖皇帝陛下臣獲罪於天坐困孤城自分朝夕就亡細思從前罪戾無以自贖雖迫於私情屢上書以求自新而實不敢必於赫怒之天茲奉

恩旨盡釋前愆弛秋霜之嚴威布陽春之惠澤將使東方數千里生民得脫於水火豈但延一城性命而已哉君臣父子感激流涕不知所報前承出城之命實多疑畏適當

天怒未收之日不敢盡陳所懷今蒙開示悃愊引諭丁寧真古人所謂推赤心置人腹中者也臣自事大國以來十有餘年服

陛下之信義久矣往時言行無不相符况絲綸之命信如四時乎臣不復以此為慮抑臣有迫切之私請為

陛下布之東方風俗迫隘禮節瑣陋見其君上動止稍異常度則駭目相視以為怪事若不因俗為治終無以立國自丁卯來朝臣果多異同之論臣是以務為鎮定不敢遽為呵責者蓋慮此也至於今日滿城百官士庶同見事勢危迫歸命之議同然一辭而獨於出城一節皆謂我國從來未有之事以死自期不欲其出若大國督之不已恐他日所得不過積屍空城而已今此城中人皆知旦夕且死所言尚如此况其他者乎自古亡國之禍不專在於敵兵雖使蒙

陛下恩德復得主國而以今日人情觀之身一出城必不欲戴以為君此臣之所為大懼也

陛下之所以許歸命者亦欲保全小邦宗社若因此一事不為國人所容終至於滅亡或非

陛下憐恤之本心也且

陛下以雷霆之師深入千里未及兩月臣其國而撫其民此天下之奇功前代所未有也豈必待臣出城然後謂之克此城乎無捐於

陛下之威武而有關於小邦之存亡者在此一舉况大國於此城非不能攻也第攻城所以討有罪耳今既臣服何用城為伏惟

陛下睿智出天明照萬物其於小邦真情實狀必洞燭無餘矣至敗盟一事小邦例有臺諫諸官職分諍論向日所為誠極謬妄使小邦生民塗炭至此無非此輩之罪故昨年秋已摘其浮論誤事者悉加斥黜矣今承

皇命曷敢違越但念此輩見識褊淺不知天命所歸意欲膠守故常而然也今

陛下方以君臣大義風勸一世若此輩者似宜在矜恕中矣伏惟

陛下大度如天既赦國君之罪此蟣虱小臣直付之小邦刑政之中益見寬大之德故並陳愚見以俟

陛下裁處臣既蒙

陛下霽威布信不覺誠心親附畢其所懷縷縷至此煩凟之誅誠無所逃謹昧死以聞

○ 이날에,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인조)이 주서(奏書/서신을 바침)로써 칭신(稱臣)하였다.

이른 서신(書)에 말하길

   <조선국왕(朝鮮國王) 신(臣) 이종(李倧)은 삼가(謹) 대청국(大清國) 관온인성(寬溫仁聖) 황제폐하(皇帝陛下)께 상서(上書/글을 올림)하나이다.

    신(臣)이 하늘에 획죄(獲罪/죄를 지음)하여 고성(孤城/고립된 성)에서 좌곤(坐困/꼼짝 못함)하며,

    자분(自分/스스로 헤아림)하니 조석(朝夕/아침과 저녁)으로 취망(就亡/망할 길로 나아감)하였고,

    세사(細思/꼼꼼하게 생각함)하니 종전(從前)의 죄려(罪戾/죄악)를 자속(自贖/스스로 속죄함)함이 없었나이다.

    오직 사정(私情/사사로운 정)에 박(迫/가까이 함)하여 누차(屢) 상서(上書/서신을 올림)하여 

    이로써 자신(自新/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함)을 구(求)하였는데,

    그러나 실(實)은 필히(必) 혁노(赫怒/얼굴을 붉히며 버럭 성을 냄)의 하늘에 불감(不敢/감히 하지 못 함)하였나이다.

    이때 전건(前愆/이전의 죄)을 진석(盡釋/모두 용서함)한다는 은지(恩旨/은혜로운 교지)를 봉(奉/받듦)하니,

    추상(秋霜)의 엄위(嚴威/무서운 위엄)을 이(弛/늦춤)하시고,

    양춘(陽春/따뜻한 봄)의 혜택(惠澤/은혜와 덕택)을 포(布/베풂)하시어,

    장차(將) 동방(東方) 수천리(數千里)의 생민(生民)으로 하여금 

    수화(水火/물에 빠지고 불에 타는 고통)에서 득탈(得脫/탈출을 얻음)하였으니,

    어찌 단지(但) 일성(一城)의 성명(性命/생명)만 연장(延)할 뿐이겠나이까?

    군신(君臣)과 부자(父子)가 감격(感激)하여 유체(流涕/눈물을 흘림)하고,

    소보(所報/보답할 바)를 부지(不知/알지 못 함)하나이다.

    전(前)의 출성(出城)의 명(命)을 승(承/받아들임)하여 실로(實) 의외(疑畏/의심하고 두려워함)가 다(多/많음)하였나이다.

    마침 천노(天怒/하늘의 분노)가 미수(未收/거두지 않음)의 날을 당(當)하여,

    감히(敢) 소회(所懷/마음속에 품고 있는 바)를 진진(盡陳/모두 진술함)하지 못하였나이다.

    지금(今) 몽개(蒙開/어리석음을 깨우침)하고 곤핍(悃愊/진실함)과 인유(引諭/이끌고 타이름)를 시(示/보임)하시니,

    정녕(丁寧) 진실로(真) 고인(古人/옛사람)이 소위(所謂) 

    적심(赤心/진심, 붉은 심장)을 추(推/밂)하여 인복(人腹/사람의 배) 중(中)에 치(置/둠)하는 것이다 라 할 것이옵니다.

    신(臣/인조)이 스스로 대국(大國)을 사(事/섬김)한 이래(以來) 10여 년간 

    폐하(陛下)의 신의(信義)에 복종(服)함이 오래되었나이다.

    왕시(往時/지나간 때)에 언행(行)이 상부(相符/서로 일치함)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하물며 신(信/믿음)이 사시(四時/사계절)과 같은 사륜(絲綸/조칙의 글)의 명(命)이겠나이까?

    신(臣)이 다시 이로써 염려(慮)하지 않나이다.

    삼가 신(臣)은 박절(迫切/절박함)의 사정(私請)이 있어 폐하(陛下)께 포(布/드러냄)하나이다.

    동방(東方)의 풍속(風俗)은 예절(禮節)의 쇄루(瑣陋/자질구레하고 협소함)를 박애(迫隘/다그치고 제한함)하여,

    그 군상(君上/임금)의 동지(動止/행동거지)를 보고 약간이라도 이상(異常)의 법도(度)면,

    곧 해목(駭目/놀란 눈)으로 상시(相視/서로를 바라봄)하며 괴사(怪事/괴이한 일)라 생각하나이다.

    만약(若) 풍속(俗)을 치(治/다스림)함에 의지하지 않으면, 

    종국(終)에는 이로써 입국(立國/나라를 세움)하지 못하나이다.

    정묘(丁卯/1627년)년 이래(來)로부터 조신(朝臣/조정의 신하)가 

    과연(果) 이동(異同/서로 같지 아니함)의 논(論)의가 다(多/많음)하였나이다.

    신(臣/인조)이 이에 무(務/힘씀)으로써 진정(鎮定)하였는데

    감히(敢) 갑작스럽게 가책(呵責/꾸짖어 책망함)하지 못한 것은 대개(蓋) 이를 염려(慮)한 것이옵니다.

    금일(今日)에 이르러 만성(滿城/성에 가득 참)의 백관(百官)과 사서(士庶/일반 백성)가

    사세(事勢/일이 되어 가는 형세)가 위박(危迫/위험하고 급박함)함을 동견(同見/함께 봄)하여

    귀명(歸命/귀부)의 의논(議)이 일사(一辭/하나의 말)도 동연(同然/다름이 없음)하였는데,

    그러나 오직 출성(出城)의 일절(一節/한 구절)은 모두 이르기를

    아국(我國)이 종래(從來/여태껏) 있지 않은 일이니,

    죽음으로써 자기(自期/스스로 마음속에 기약함)하여 그 출성(出)을 하지 않고자 하나이다.

    만약(若) 대국(大國)이 독촉(督)을 멈추지 않는다면 타일(他日/다른 날)에 소득(所得/얻은 바)은

    적시(積屍/겹겹이 쌓인 시체)와 공성(空城/빈 성)뿐에 불과(不過)할까 두렵나이다.

    지금(今) 이 성중(中)의 사람이 모두 단석(旦夕/아침과 저녁)에 또한 죽는 것을 아는데도

    소언(所言/말하는 바)이 오히려 이와 같습니다.

    하물여 그 다른 것이겠나이까?

    자고(自古)로 망국(亡國)의 화(禍)는 오로지 적병(敵兵)에 있지 않나이다.

    비록 폐하(陛下)의 은덕(恩德)을 입어 다시 주국(主國/나라의 주인)을 득(得)하여도

    금일(今日)의 인정(人情)을 관(觀/봄)함으로서 몸이 한번 출성(出城)하면,

    필히(必) 군(君/임금)으로 여기며 대(戴/받듦)하지 않을 것이나이다.

    이는 신(臣/인조)이 대구(大懼/크게 두려워함)하는 바이나이다.

    폐하(陛下)의 귀명(歸命/귀부)을 허(許)한다는 소이(所以/이유)라는 것은,

    역시(亦) 소방(小邦)의 종사(宗社)를 보전(保全)하고자 함이옵니다.

    만약(若) 이 일사(一事/한가지 일)로 인(因)하여 국인(國人)이 소용(所容/용납하는 바)하지 않고,

    종국(終) 멸망(滅亡)에 이르게 된다면,

    혹(或) 폐하(陛下)의 연휼(憐恤/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풂)의 본심(本心)이 아닐 것이옵니다.

    또한 폐하(陛下)의 뇌정(雷霆/세찬 천둥소리)의 군사(師)로써 천리(千里)를 심입(深入/깊게 들어옴)하여,

    양월(兩月/두 달)을 미급(未及/아직 미치지 못 함)하였는데,

    그 나라를 신하(臣)로 하고 그 백성을 무(撫/어루만짐)하였으니,

    이는 천하(天下)의 기공(奇功/뛰어난 공로)로 전대(前代)에 있은 적이 없는 바이옵니다.

    어찌 필히(必) 신(臣/인조)의 출성(出城)을 대(待/기다림)한 연후(然後)에 

    이 성(城)을 극(克/함락함)하였다 이르겠나이까?

    폐하(陛下)의 위무(威武/위세와 무력)에 무연(無捐/덜지 않음)하고

    소방(小邦)의 존망(存亡)에도 유관(有關/관계가 있음)하는 것이 이 일거(一舉/한 번의 행동)에 있나이다.

    하물며 대국(大國)은 이 성(城)에 공격(攻)함이 불능(不能)한 것이 아니옵니다.

    다만 공성(攻城)의 소이(所以/까닭)은 유죄(有罪/죄가 있음)를 토벌(討)하는 것이옵니다.

    지금(今) 이미 신복(臣服/신하로 복종함)하였으니 어찌 성(城)을 용(用/다스림)하고자 하나이까?

    복유(伏惟/삼가 엎드려 생각하옵건대)하니 폐하(陛下)께서는 

    예지(睿智/총명하고 지혜로움)하고 출천(出天/하늘이 냄)하여, 만물(萬物)을 명조(明照/밝게 비춤)하나이다.

    그 소방(小邦)의 진정(真情/진실한 사정)과 실상(實狀/실제의 상태)에 필히(必) 

    통촉(洞燭/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사정을 깊이 헤아려 살핌)이 무여(無餘/남은 것이 없음)할 것이옵니다.

    패맹(敗盟/맹세를 깨트림)의 일사(一事/한가지 일)에 이르자면 

    소방(小邦)의 예(例/법식)은 대간(臺諫/사간원, 사헌부)의 여러 관직(官職)이 있어 나누어 쟁논(諍論/논쟁)하나이다.

    향일(向日/지난날) 성극(誠極/참으로)으로 유망(謬妄/터무니없음)한 바,

    소방(小邦)의 생민(生民/백성)으로 하여금 도탄(塗炭)에 이르게 하니,

    이는 이 배(輩/무리)의 죄(罪)가 아님이 없나이다.

    이런 연고(故)로 작년(昨年) 가을에 이미(已) 그 부론(浮論/쓸데없는 논의)하고 

    오사(誤事/일을 그르침)한 자(者)를 적발(摘)하여 남김없이 척출(斥黜/벼슬을 빼앗고 내쫓음)을 가(加)하였나이다.

    지금(今) 황명(皇命)을 승(承/받듦)하였으니, 갈감(曷敢/어찌 감히)히 위월(違越/어김)하겠나이까?

    단지(但) 이 배(輩/무리)를 염(念/생각함)하면 견식(見識/문견과 학식)이 편천(褊淺/좁고 얕음)하고,

    천명(天命)의 소귀(所歸/귀부하는 바)를 부지(不知/알지 못 함)하고,

    고상(故常/옛 관례)을 교수(膠守/융통성이 없이 굳게 지킴)하고자 하여 그리된 것이옵니다.

    지금(今) 폐하(陛下)께옵서 바야흐로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로써 일세(一世/온 세상)을 

    풍권(風勸/감화시키고 인도함)하나이다.

    만약(若) 이 배(輩/무리)같은 자(者)들도 마땅히 긍서(矜恕/가엾게 여겨 용서함) 중(中) 있게 하여야 하나이다.

    복유(伏惟/삼가 엎드려 생각하옵건대)하니 폐하(陛下)께옵서는 하늘과 같이 대도(大度/도량이 큼)하시고,

    이미 국군(國君/국왕)의 죄(罪)를 사(赦)하셨으니 이 기슬(蟣虱/서캐와 이)의 소신(小臣/작은 신하)은

    소방(小邦)의 형정(刑政/형벌과 정치)의 중(中)에 직부(直付/직접 하도록 줌)토록 하신다면,

    관대(寬大)의 덕(德)이 익견(益見/더욱 보임)할 것이옵니다.

    이런 연고(故)로 우견(愚見/어리석은 의견)을 병진(並陳/모두 진술함)하였으니,

    이로써 폐하(陛下)의 재처(裁處/판단하여 처리함)를 사(俟/기다림)하겠나이다.

    신(臣/인조)은 이미 폐하(陛下)의 제위(霽威/노여움을 거둠)와 포신(布信/신의를 베풂)을 몽(蒙/받음)하였는데도,

    성심(誠心/정성어린 마음)을 불각(不覺/깨닫지 못 함)하였나이다.

    친부(親附/가깝게 따름)가 필(畢/마침)하였으나 그 소회(所懷/마음에 품고 있는 바)가 

    누누(縷縷/끊임없이)하게 이 번독(煩凟/너저분하고 많이 더러움)에 이르렀나이다.

    주(誅/책함)하신다면 진실로 소도(所逃/도망갈 곳)가 없나이다.

    삼가 매사(昧死/죽기를 무릅쓰고 말함)하여 이문(以聞/임금께 아룀)하나이다.>


○ 1637년 1월 20일 이날에 조선국왕 이종(인조)이 서신츨 바치고 칭신하였다.

이른 서신에 말하길

   <조선국왕 신 이종(인조)은 삼가 대청국 관온인성 황제폐하께 글을 올리나이다.

    신이 하늘에 죄를 지어 고립된 성에서 꼼짝 못하며 스스로 헤아리니 아침저녁으로 망할 길로 나아갔고,

    꼼꼼하게 생각하니 종전의 죄악을 스스로 속죄함이 없었나이다.

    오직 사사로운 정에 의지하여 누차 서신을 올려 이로써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하는 것을 구하였는데,

    그러나 실은 필히 천자께옵서 성을 내실까 감히 하지 못하였나이다.

    이때 이전의 죄를 모두 용서하신다는 은혜로운 교지를 받드니

    추상과 같은 무서운 위엄을 늦추시고 따뜻한 봄과 같은 은혜와 덕택을 베푸시어

    장차 동방 수천리의 살아있는 백성으로 하여금 물에 빠지고 불에 타는 고통에서 구출하여 주셨으니

    어찌 단지 한 성의 생명망 연장할 뿐이겠나이까?

    군신과 부자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보답할 바를 알지 못 하나이다.

    전의 성을 나오라는 명령을 받아들임에 실로 의심하고 두려움이 많았나이다.

    마침 하늘의 분노가 거두지 않은 날을 당하여 감히 품고 있는 생각을 모두 진술하지 못하였나이다.

    지금 어리석음을 깨우치시고 진실로 이끌고 타이르시는 것을 보이시니

    정녕 진실로 옛사람이 소위 [붉은 심장을 밀어 배 가운데로 두는 것이다]라 할 것이옵니다.

    신(인조)이 스스로 대국을 섬긴 이래 10여 년간 폐하의 신의에 복종함이 오래되었나이다.

    지나간 때에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하물며 믿음이 사계절과 같은 조칙의 글의 명령이겠나이까?

    신은 다시 이로써 염려하지 않나이다.

    삼가 신은 절박한 사정이 있어 폐하께 드러내나이다.

    동방의 풍속은 예절이 자질구레하고 협소하며 다그치고 제한하여,

    그 군상(임금)의 행동거지를 보고 약간이라도 이상한 법도가 있으면

    곧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괴이한 일이라 생각하나이다.

    만약 풍속을 다스리는 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이로써 나라를 세우지 못하나이다.

    정묘년(/1627년) 이래로부터 조정의 신하가 과연 서로 다른 논의가 많았나이다.

    신(인조)이 이에 힘써 진정시켰는데 감히 갑작스럽게 꾸짖어 책망하지 못한 것은 대개 이를 염려한 것이옵니다.

    금일에 이르러 성에 가득 찬 백관과 백성이 사세가 위험하고 급박한 것을 함께 보고는

    귀부의 의논은 하나의 말도 다름이 없었는데 그러나 오직 성을 나오라는 한 구절에 대해서 말하길

    아국이 여태껏 있지 않은 일이니 죽음을 기약하며 그 출성을 하지 않고자 하나이다.

    만약 대국이 독촉을 멈추지 않는다면 다른 날에 얻은 바는 겹겹이 쌓인 시체와 빈 성밖에 불과할까 두렵나이다.

    지금 이 성중의 사람이 모두 아침과 저녁으로 또한 죽을 것을 아는데도 말하는 바가 오히려 이와 같습니다.

    하물여 그 다른 것이겠나이까?

    자고로 망국의 화는 오로지 적병에 있지 않다 합니다.

    비록 폐하의 은덕을 입어 다시 나라의 주인을 얻게 되어도 금일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면

    제 몸이 한 번 성을 나가게 되면 반드시 임금으로 여기며 받들지 않을 것이나이다.

    이는 신(인조)이 크게 두려워하는 바이나이다.

    폐하의 귀부을 허락한다는 이유라는 것은 역시 소방(소국)의 종사를 보전해 주시고자 함이옵니다.

    만약 이 한가지 일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고 종국에 멸망에 이르게 된다면,

    혹 이는 폐하의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는 본심이 아닐 것이옵니다.

    또한 폐하의 세찬 천둥소리 같은 군사로써 천리를 깊게 들어와 두 달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그 나라를 신하로 하고 그 백성을 어루만지셨으니 이는 천하의 뛰어난 공로로 전대에 있은 적이 없는 바이옵니다.

    어찌 필히 신(인조)이 성을 나오길 기다리신 연후에 이 성을 함락하였다 이르겠나이까?

    폐하의 위세와 무력에 덜지 않고 소방의 존망에도 관계가 있는 것이 이 한 번의 행동에 있나이다.

    하물며 대국은 이 성에 공격하는 것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옵니다.

    다만 공성의 까닭은 죄가 있는 자를 토벌하는 것이옵니다.

    지금 이미 신복(신하로 복종함)하였으니 어찌 성을 다스리고자 하나이까?

    삼가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폐하의 총명과 지혜로움은 하늘이 낸 것으로 만물을 밝게 비추나이다.

    그 소방의 진실한 사정과 실상에 필히 통촉하심이 남은 것이 없다 할 것이옵니다.

    맹세를 깨트린 한가지 일에 이르자면 소방의 법식은 대간(사간원, 사헌부)의 여러 관직이 있어 나누어 논쟁하나이다.

    지난날 참으로 터무니없이 소방의 백성으로 하여금 도탄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이 무리의 죄가 아닌 것이 없나이다.

    이런 연고로 작년 가을에 이미 그 쓸데없이 논의하고 일을 그르친 자들을 적발하여

    남김없이 벼슬을 빼앗고 내쫓았나이다.

    지금 황명을 받들었으니 어찌 감히 어기겠나이까?

    단지 이 무리를 생각하자면 문견과 학식이 좁고 얕아 천명으로 귀부하는 바를 알지 못하였고

    옛 관례를 융통성 없이 굳게 지키고자 하여 그리된 것이옵니다.

    지금 폐하께옵서는 바야흐로 군신의 대의로써 온 세상을 감화시키고 인도하시나이다.

    만약 이 무리 같은 자들도 마땅히 가엾게 여겨 용서하는 가운데에 있게 하여야 하나이다.

    삼가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폐하께옵서는 하늘과 같은 큰 도량으로 

    이미 국군(국왕)의 죄를 사하셨으니 이 서캐(이알)와 이(벼룩) 같은 작은 신하들은

    소방의 형벌과 정치 가운데에 직접 하도록 허락하신다면 폐하의 관대한 덕이 더욱 내보이게 될 것이옵니다.

    이런 연고로 어리석은 의견을 모두 진술하였으니 이로써 폐하의 판단과 처리를 기다리겠나이다.

    신(인조)은 이미 폐하께옵서 노여움을 거두시고 신의를 베푸시는 것을 입었음에도 그 정성 어린 마음을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귀부하는 일이 이미 결정되었으나 그 마음에 품고 있는 바가 누누하게 이토록 너저분하고 더러움에 이르렀나이다.

    책하신다면 진실로 도망갈 곳이 없나이다.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말하여 황제께 아뢰나이다.>


요약.

1637년 1월 20일 청 태종은 인조의 강화 요청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인조의 출성과 척화대신 3~4명의 박송(포박하여 보냄)이었다.

홍 타이지는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 8도를 유린하고 백성을 도륙하겠다 엄포를 놓는다.

이미 인조는 회답 서신을 의논하게 하여 마침내 칭신하기로 결정한다.

칭신 결정에 대해 대사헌 김수현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불가를 외쳤으나 김류는 입장을 보류하였으나

최명길은 즉각적인 칭신이 유리하다 주장하여 관철하였다.

1월 19일 최명길이 청진영으로 갔을 때 용골대(잉월다이)를 만난 자리에서

이미 청군이 강화도를 점령하기 위해 떠났다는 소식도 전해진 상태였다.

이때 조선은 용골대와 마부대(마푸타)에게 각각 은자 1만 냥의 뇌물을 주기로 결정하여 용골대에게 통보하였다.

홍 타이지의 서신이 이르자 인조는 두 가지 조건 모두 들어줄 수 없다며 다른 방책을 마련하라 말한다.

이에 최명길은 용골대를 만나 인조의 출성은 죽을지언정 할 수 없으

척화대신의 박송은 이미 지난가을에 벌을 받아 지방으로 흩어졌으므로 청군이 물러나면 잡아서 보내겠다 말한다.


1월 20일 보낸 조선의 국서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죄를 사한다는 황제의 교지를 받으니 감격할 따름이다.

2. 조선의 법도는 매우 엄격하여 왕이 한 번이라도 성을 나간다면 

   신하와 백성들이 자신을 왕으로 따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출성을 계속 요구한다면 청군이 보게 될 것은 우리의 쌓인 시체뿐일 것이다.

   두 달 만에 조선을 신하국으로 만들었으니 천하에 이름을 드높였다.

   이쯤에서 물러나달라!

3. 척화대신의 박송에 관해서는 조선은 간관들이 하는 일이 논쟁이다.

   쓸데없는 논쟁으로 대국에 죄를 지어서 지난가을에 이미 이들을 모두 벌주고 쫓아냈다.

   조선왕도 용서하는 큰 관용으로 벼룩같이 하찮은 신하들도 용서해달라!

   조선의 죄를 지은 신하는 본인이 직접 처리했으면 한다.

4. 솔직하게 말했으니 모든 것은 황제의 처분만 기다리겠다!

   죽이고자 한다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죽기를 무릅쓰고 황제께 아뢴다!


-1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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