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14부-강화도 함락!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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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2일

○壬戌往取江華島和碩睿親王多爾袞遣納敏代音楚興格內來奏云我軍至島朝鮮有兵船四十餘於渡口迎戰我軍用紅衣礮攻擊。敵不能當東西逃散黎明我軍乘船進攻。入江華島殺鳥鎗手百人又擊殺伏兵千餘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3일

癸亥遣外藩科爾沁扎魯特敖漢奈曼諸部落兵出咸鏡道往征瓦爾喀地方。命蒙古衙門承政尼堪甲喇章京季思哈牛彔章京葉克書。率每旗甲士十人導之以行

○是日。和碩睿親王多爾袞、自江華島。遣法楚渾、必楊古、穆成格、善都喀以圍江華島城來奏。既而復遣布賴、雅布蘭、奏稱江華島城已降。島內獲朝鮮王妃一王子二、閣臣一、侍郎一、其城內財物。及群臣妻子家口俟察明再奏

○ 임술일(壬戌)에, 강화도(江華島)에 왕취(往取/가서 취함)한 화석(和碩) 예친왕(睿親王) 다이곤(多爾袞)이 보낸

납민(納敏), 대음초(代音楚), 흥격내(興格內)가 내주(來奏/와서 아룀)하여 말하길

   <아군(我軍)이 섬에 이르니 조선(朝鮮)의 병선(兵船) 40여 척이 있어

    도구(渡口/나루터)에서 영전(迎戰/맞아 싸움)하였습니다.

    아군(我軍)이 홍의포(紅衣礮)를 사용(用)하여 공격(攻擊)하니,

    적(敵)이 당(當)함이 불능(不能)하여 동서(東西)로 도산(逃散/도망쳐 흩어짐)하였습니다.

    여명(黎明/동틀 무렵)에 아군(我軍)이 승선(乘船/배를 탐)하고 진공(進攻/공격하여 나아감)하여

    강화도(江華島)에 들어가 조총수(鳥鎗手) 100인을 살(殺)하였고,

    또 복병(伏兵) 천여(千餘)를 격살(擊殺/공격하여 죽임)하였습니다.>


계해일(癸亥)에 외번(外藩) 과이심(科爾沁/코르친), 찰노특(扎魯特), 오한(敖漢) 나만(奈曼)의 

여러 부락(部落)의 병(兵)을 보내,

함경도(咸鏡道)를 나가서 와이객(瓦爾喀) 지방(地方)을 왕정(往征/가서 정벌함)하게 하였다.

명(命)하여 몽고(蒙古) 아문승정(衙門承政) 니감(尼堪), 갑라장경(甲喇章京) 계사합(季思哈),

우록장경(牛彔章京) 섭극서(葉克書)는 매(每) 기(旗)마다 갑사(甲士) 10인을 인솔(率)하고,

인도(導)하여 이로써 행(行)하게 하였다.


○ 이날에, 화석(和碩) 예친왕(睿親王) 다이곤(多爾袞)이 강화도(江華島)에서부터

법초혼(法楚渾), 필양고(必楊古), 목성격(穆成格), 선도객(善都喀)을 보내

강화도(江華島)의 성(城)을 포위(圍)하였다 내주(來奏/와서 아룀)하였다.

얼마 안 있어 다시 포뢰(布賴), 아포난(雅布蘭)을 보내 주칭(奏稱/아룀)하길

   <강화도(江華島) 성(城)이 이미(已) 항복(降)하였고, 

    섬 내(內)에서 조선왕비(朝鮮王妃) 1, 왕자(王子) 2, 각신(閣臣) 1, 시랑(侍郎) 1, 

    그 성내(城內)의 재물(財物)과 더불어 군신(群臣/뭇 신하)의 처자(妻子)와 가구(家口/가족)을 

    획(獲/사로잡음)하였습니다.

    찰명(察明/조사하여 판명함)을 사(俟/기다림)하여 재주(再奏/다시 아룀)하겠습니다.>





○ 1637년 1월 22일에 강화도로 공격하러 간 화석 예친왕(호쇼이 머르건 친왕) 다이곤(도르곤)이 보낸 납민, 대음초, 흥격내가 와서 아뢰길

   <아군이 섬에 이르니 조선의 병선 40여 척이 있어 나루터에서 맞아 싸웠습니다.

    아군이 홍의포를 사용하여 공격하니 적이 당하지 못하고 동서로 도망쳐 흩어졌습니다.

    동틀 무렵에 아군이 배를 타고 공격하여 나아가 강화도로 들어가 조총수 100인을 죽이고

    또 복병 천여 명을 공격하여 죽였습니다.>


○ 1637년 1월 23일에 외번 과이심(코르친), 찰노특(자루트), 오한(아오칸), 나만(나이만)의 

여러 부족의 병력을 보내 함경도를 나가서 와이객(와르카) 지방으로 가서 정벌하게 하였다.

명을 내려 몽고 아문승정 니감, 갑라장경(잘안장긴) 계사합, 우록장경(니루장긴) 섭극서는

매 기마다 갑사 10인을 인솔하고 인도하여 이로써 행하게 하였다.


○ 1637년 1월 23일 이날에 화석 예친왕 다이곤이 강화도에서부터 법초혼, 필양고, 목성격, 선도객을 보내

   <강화도의 성을 포위하였다>

와서 아뢰었다.

얼마 안 있어 다시 포뢰, 아포난을 보내 아뢰길

   <강화도 성이 이미 항복하였고 섬 안에서 조선왕비 1, 왕자 2, 각신 1, 시랑 1과

    그 성안의 재물과 더불어 뭇 신하의 처자와 식솔을 사로잡았습니다.

    조사하여 판명함을 기다려 다시 아뢰겠습니다.>


요약.

1637년 1월 22일 강화도 공략을 맡은 도르곤의 사신이 와서 승전을 보고한다.

도르곤의 좌익군은 조선 수군 40여 척을 홍이포로 격퇴하고 동틀 무렵 강화도에 상륙하여

조총수 100명과 복명 1천 명을 죽였다고 말한다.

1월 23일 홍 타이지는 몽고아문승정 니칸에게 만주팔기병 100명과 외번 몽고 109부족 3700명을 주어

함경도를 거쳐 두만강 인근에 자리 잡은 동해여진 와르카 부족을 공격하라 명한다.

1월 23일 도르곤에서 2차, 3차 보고가 도달한다.

강화도성을 포위하였고 다시 항복을 받아내 왕비와 왕자 및 관료, 식솔을 모두 사로잡았다는 보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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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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