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노비의 유일한 꿈<면천!> 병자호란 이야기

임진왜란과 사르후 전투,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조정은 수많은 병사를 모집하였는데요.

이때마다 줄 것이 없었던 조정에서는 신분 상승을 비롯한 다양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청나라 대군에 포위되었던 남한산성에서도 이런 당근책이 나왔는데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한량 양반들

→ 관직을 얻고 싶어요!


2. 군졸들

→ 친위군(금군)이 되고 싶어요!


3. 평민

→ 부역을 면제받고 싶어요!


4. 노비

→ 딴 거 필요 없고 면천! 면천! 면천! Only 면천!!!


특히나 노비들은 면천을 받고 싶었는데 걸림돌이 있었지요.

바로 상전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면천을 요청했다가 상전한테 곤장을 맞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고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남한산성 포위 초기엔 노비에 대한 면천은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하였던 인조도

날이 점점 더 길어지자 노비에 대한 대대적인 면천을 시행하게 됩니다.

물론 단서를 붙이지만요.^^;



1. 공을 세운 노비만 특별히 면천한다!


조선왕조실록 1636년 12월 19일

상이 하교하였다.

“성내의 거주민은 5년을 기한으로 1결을 면세하고 복호하라. 

 두드러지게 수고한 자는, 천인은 면천하고 양인은 별도로 논상하라.”


→ 남한산성 내의 주민에겐 5년 부역 면제를 결정하고 노비는 <두드러지게 수고한 자>에 한해서 면천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2. 노비에겐 은자 5냥씩 주면 충분하다!


승정원일기 1636년 12월 19일

사노(私奴)는 면천(免賤)을 원한다고 하는데 면천은 사안이 너무 중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면천은 너무 중하다. 양인(良人)은 금군(禁軍)에 제수하고 영장(領將)은 직임에 제수하고 공사천(公私賤)에게는 은을 주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경증이 아뢰기를,

“양인의 경포수(京砲手)는 모두 금군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은을 장수에게 보내서 그로 하여금 참작해서 나누어 주도록 하라.”

하였다. 이경증이 아뢰기를,

“영남(嶺南)의 군병들은 모두 내금위와 사복시의 직첩을 얻기 원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사천(私賤)에게는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가?”

하자, 박황이 아뢰기를,

“양인에게 직첩으로 상을 주면 은냥이 남으니 공사천에게 각각 5냥의 은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3. 적의 목을 베면 면천한다!


승정원일기 1636년 12월 20일

사노에게는 면천이 큰 상전(賞典)이니, 한 번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면천만 해 주고 

두 번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승정원일기 1636년 12월 21일

적의 수급을 한 개 벤 사람의 경우에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은 면천시키고, 양인은 급제(及第)를 주고, 직임이 있는 사람은 승천(陞遷)시키며, 수급을 두 개 이상 벤 사람에게는 가자하여 논상하겠다는 내용이 이미 조정의 사목(事目)에 들어 있다. 


→ 그렇습니다! 이러니 적의 목에 목숨을 거는 것이지요!!! @_@



4. 실제 면천되다!


승정원일기 1636년 12월 26일

수어사(守禦使) 아병(牙兵)의 사노(私奴) 서흔남(徐欣男)은 사람됨이 영리하고 건장하고 용맹스러운데, 낮에는 종군하여 출전하고 밤에는 틈을 타서 나가 정탐을 하였으니, 공로가 매우 가상합니다. 면천(免賤)시키도록 허락해 주소서. 감히 아룁니다.


→ 그렇습니다! 낮에는 싸우고 밤에는 정찰까지!!!

    밤낮으로 목숨 걸고 분투하니 면천을 받네요!!!



5. 성내의 모든 노비들은 부역을 면제시켜라!


조선왕조실록 1637년 1월 14일

성첩(城堞)을 지키는 군사 중에 직책을 받기를 자원하는 자는 차등있게 직책을 제수하도록 명하였다. 한량(閑良)은 금군(禁軍)에, 금군은 수문장(守門將)에 임명하고, 수문장과 부장(部將)은 사과(司果)로 옮기고,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은 복호하고 아울러 직첩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 여전히 노비의 면천은 어렵군요. 겨우 부역 면제(복호)를 명하고 있는데요.....

    실은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습니다.



5. 주인의 곤장이 무서워 면천을 요청하지 못했어요!!!


승정원일기 1637년 1월 22일

상이 김류(金瑬), 최명길(崔鳴吉), 이성구(李聖求)를 불러서 묻기를,

“성첩을 지키는 장관(將官)과 군병들이 근래 불어 닥친 눈보라에 몸이 상하여 매우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한다고 한다. 장관에 대해서는 변장(邊將)으로 차정(差定)하고 군사들에 대해서는 위로하고 기쁘게 해 주는 일을 한층 더해 주려고 하는데, 이 사람의 말이 어떠한가?”

(중략)

“성첩을 지키는 군졸은 설령 상을 남용하게 되더라도 시행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군사들이 말하기를, ‘복호(復戶)는 바라는 바가 아니고 면천(免賤)을 바랐다가는 상전(上典)에게 곤장을 맞을 것이다.……’ 하니, 

전부터 국가의 법령이 엄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이 이처럼 믿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사목(事目)을 만들어 각영에 보내되, ‘일이 안정된 뒤에 복호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해 수령이 제대로 거행하지 않거나 면천될 사람에 대해 그 주인이 감히 책임을 돌리는 경우에는 그 장관으로 하여금 논보(論報)하게 하여 발각되는 대로 치죄하도록 하며, 장관은 궐원이 생기는 대로 변장에 충차(充差)하고, 비록 모든 사람들에게 직임을 제수하지는 못하더라도 출전(出戰)한 사람에 대해서는 즉시 요해처(要害處)의 변장에 제수했다가 대궐로 다시 들어간 뒤에 부임시켜 주겠다.’는 내용으로 말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중략)

최명길이 아뢰기를,

“복호한 사람이 1만 3000명에 이르는데, 가자(加資)되었거나 면천되기를 자원한 자를 제외하고 50결을 복호해 주되, 종신토록 복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 노비들에게 부역 면제(복호)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지만 감히 면천을 요구했다가 [상전에게 곤장을 맞을까 두려워] 라고 인조가 노비들에게

   들었나 봅니다.

   해서 공을 세운 노비가 면천을 원하면 주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강제 시행하라는 인조의 깔끔한 말씀!!!



P.S) 용감히 싸운 이시백에 의해 면천된 남한산성 수원의 노비병들!!


승정원일기 1637년 1월 29일

이시백이 아뢰기를,

“이번 수원(水原)의 군병은 적과 싸워 봐서 적을 잘 알고 가장 후한 은혜를 받은 데다 경도(京都)와도 가깝습니다만, 외방의 군사는 지금의 형편으로 볼 때 진실로 헛일입니다. 이 군사들에게 포상하고 권면하되, 사노(私奴)는 면천(免賤)하고 양인(良人)은 직책을 제수한 다음 대오를 만들어 따로 명호(名號)를 지어 주신다면 정초군(精抄軍)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하였다.


자! 이제 오랑캐의 목을 베러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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