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431부-누르하치의 부인들 레드카펫을 밟고 요동에 오다!(21권)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자세히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orin emuci debtelin. abkai fulingga i ningguci aniya duin biyaci sunja biyade isinahabi.

오린 어무치 덥털인. 압카이 풀잉아 이 닝우치 아냐 두인 뱌치 순자 뱌더 이시나하비.

20 1번째 권. 하늘의 명령 의 6번째 해 4 월로부터 5 월에 이른다.


tongki fuka sindaha hergen i dangse.

통키 푸카 신다하 허르건 이 당서.

점 동그라미 놓은 문자 의 당자.


○ ice sunja de. fujisai isinjiha inenggi. dzung bing guwan i jergi ambasa. hoton i tule tucifi

○ 이처 순자 더. 푸지사이 이신지하 이넝이. 중 빙 구완 이 저르기 암바사. 호톤 이 툴어 투치피

○ 초 5 에. 부인들의 이른 날. 총 병 관 의 직위 암반들. 성 의 밖 나가서


giyoocan de okdofi. morin ci ebufi yafahalafi.

교오찬 더 옼도피. 모린 치 어부피 야파할아피.

교장 에 맞이하고. 말 로부터 내려서 걷고서.


fujisai morin be yarume hoton de dosimbuha.

푸지사이 모린 버 야루머 호톤 더 도심부하.

부인들의 말 을 인도하며 성 에 들어오게하였다.


tereci geren coohai niyalma. giyai de faidafi okdoko.

터러치 거런 초오하이 냘마. 갸이 더 파이다피 옼도코.

그로부터 여러 군대의 사람. 거리 에 정렬하고 맞이하였다.


terei dolo boode dositala. xanggiyan derhi sektefi.

터러이 돌오 보오더 도시탈아. 샹얀 더르히 섴터피.

그의 안 집에 들어가도록. 흰 돗자리 담요를깔고.


derhi dele fulgiyan jafu sektefi fehume. han i jakade dosika.

더르히 덜어 풀갼 자푸 섴터피 퍼후머. 한 이 자카더 도시카.

돗자리 위 붉은 모전 담요깔고 밟으며. 한 의 곁에 이르렀다.


○ ice nadan de. jaisa monggo. solho hafan be ganabufi juwan emu de isinjiha.

○ 이처 나단 더. 자이사 몽고. 솔호 하판 버 가나부피 주완 어무 더 이신지하.

○ 초 7 에. 자이사 몽고. 고려 관리 를 데려오게하고 10 1 에 이르렀다.


juwan juwe de. han de hengkileme acaha.

주완 줘 더. 한 더 헝킬어머 아차하.

10 2 에. 한 에 고두하며 만났다.


*yafahalambi[야파할암비] : 걷다, 걸어가다.

*yarumbi[야룸비] : 이끌다, 길을 안내하다, 인도하다, 계속 뒤를 잇다.

*giyai[갸이]: 거리.

*sektembi[섴텀비] : 담요를 깔다, 방석을 깔다.






(만문노당) 21권 천명 6년(1621년) 4월로부터 5월에 이른다.

유권점 문자의 당자(관문서)


 (1621년 4월) 5일에 부인(푸진)들이 이른 날 총병관 직위의 암반들이 성밖으로 나가서

교장에서 맞이하고 말로부터 내려서 걷고서 부인(푸진)들의 말을 인도하며 성에 들어오게 하였다.

그로부터 여러 병사는 거리에 정렬하고 맞이하였다.

그의 안 집에 들어가도록 흰 돗자리 담요를 깔고 

돗자리 위에는 붉은 모전 담요 깔고 밟으며 한(누르가치)의 곁에 이르렀다.

 (1621년 4월) 7일에 자이사 몽고와 고려(조선) 관리를 데려오게 하고 11일에 이르렀다.

(1621년 4월) 12일에 한(누르가치)에 고두하며 만났다.


요약.

1621년 4월 5일 사르후에 있던 누르하치의 부인들(푸진)이 마침내 요양성에 도착했다.

총병관 관직의 암반들이 모두 성밖으로 나가 말에서 내려 푸진들을 인도해서 성에 들어왔다.

거리에는 팔기군이 도열하여 푸진들을 맞이하였고

누르하치의 저택에는 흰 돗자리 담요 위에 붉음 모전을 깔아 화려하게 입성을 축하하였다.

한편 인질로 잡혀있던 몽고 자이사와 강홍립을 비롯한 조선 관리들도 7일에 요양성으로 오라 명하였고

11일에 도착하였으며 12일에 누르하치에게 고두하였다.


-432부에서 계속-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