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433부-푸진들을 고생시킨 부산을 처벌하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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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nadan de ahvtu be weile arafi. xangname buhe aika jaka be gemu gaiha.

이처 나단 더 아훠투 버 워일어 아라피. 샹나머 부허 아이카 자카 버 거무 가이하.

초 7 에 아훠투 를 죄 만들고. 상내리며 준 모든 물건 을 모두 빼앗았다.


ts'anjiyang ni hergen nakabufi bai niyalma obuha.

찬쟝 니 허르건 나카부피 바이 냘마 오부하.

참장 의 관직 중지하고 평 민 되게하였다.


sarhv ci fujisa be liyoodung ni hecen de gajire de.

사르후 치 푸지사 버 료오둥 니 허천 더 가지러 더.

사르후 로부터 푸진들 을 요동 의 성 에 데려올 때에.


fujisa be gajire ambasa.

푸지사 버 가지러 암바사.

푸진들 을 데려올 암반들.


xun yamjiha. geneci isinarakv. xi lii ho de deduki seme gisureme bisire de.

슌 얌지하. 거너치 이시나라쿼. 스 리이 호 더 더두키! 서머 기수러머 비시러 더.

해 졌다. 가자니 이르지못한다. 십 리 하 에서 자게하자! 하며 말하며 있을 때에.

 

busan. encu weile de genefi. xi lii ho de acafi. fujisai baru hendume.

부산. 언추 워일어 더 거너피. 스 리이 호 더 아차피. 푸지사이 바루 헌두머.

부산. 다른 일 에 가서. 십 리 하 에 만나서. 푸진들로 향하여 말하길.


geneci isinambi. ubade ainu dedumbi seme marame gajifi dobori isinjiha seme.

거너치 이시남비. 우바더 아이누 더둠비? 서머 마라머 가지피 도보리 이신지하! 서머.

가면 이른다. 여기에 어찌하여 자느냐? 하며 고집피우며 데리고 밤 이르렀다! 하며.


han. geren be duile seme duilebuci. busan marame gajiha mujangga ofi.

한. 거런 버 두일어! 서머 두일어부치. 부산 마라머 가지하 무장아 오피.

한. 무리 를 판단하라! 하며 판단하게하니. 부산 고집피우며 데려옴 사실 되어서.


geren. busan be si waka seme wakalaci.

거런. 부산 버 시 와카! 서머 와칼아치.

무리. 부산 을 너 잘못! 하며 꾸짖으니.


busan waka be alime gaijarakv ojoro jakade.

부산 와카 버 알이머 가이자라쿠 오조로 자카더.

부산 잘못 을 아뢰며 취하지않게 될 적에.


ice nadan de weile arafi. xangnaha aika jaka be gemu gaiha.

이처 나단 더 워일어 아라피. 샹나하 아이카 자카 버 거무 가이하.

초 7 에 죄 만들고. 상내린 모든 물건 을 모두 빼앗았다.


ts'anjiyang ni

찬쟝 니

참장 의


*bai niyalma[바이 냘마] : 백신(白身), 관직이 없는 평민.

*xi lii ho[스 리이 호] : 십리하(十里河), 강 이름.

*busan[부산] : 포삼(布三), 인명.





(1621년 4월) 7일에 아훠투를 죄 만들고 상내리며 준 모든 물건을 모두 빼앗았다.

참장의 관직 중지하고 평민 되게 하였다.

사르후로부터 푸진들을 요동(요양)성에 데려올 때에 푸진들을 데려올 암반들이

   <해 졌다. 가자면 (요양성에) 이르지 못한다. 십리하에서 자게 하자!>

하며 말하며 있을 때에 부산은 다른 일에 가서 십리하에서 만나서 푸진들로 향하여 말하길

   <가면 이른다. 여기에 어찌하여 자느냐?>

하며 고집 피우며 데리고서 밤 이르렀다! 하며

(누르가치)은 무리를 [판단하라!] 하며 판단하게 하니 부산 고집 피우며 데려온 것 사실 되어서

무리는 부산을 [너 잘못!] 하며 꾸짖으니 부산 잘못을 아뢰며 취하지 않게 될 적에

(1621년 4월) 7일에 죄 만들고 상내린 모든 물건을 모두 빼앗았다.

참장의


요약.

1621년 4월 7일 누르하치는 푸진들을 맞이하라는 명을 받고도 즉각 시행하지 않은 참장 아훠투

삭탈 관직 및 재산 몰수를 행하고 평민으로 강등하였다.

또한 푸진들이 요양성으로 올 때 해가 져 십리하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참장 부산만이 밤중에 요양성에 당도할 수 있다고 우겨 푸진들을 데리고 요양성으로 향하게 하였다.

판관들은 푸진을 강제로 이동하게 한 부산에게 유죄를 판결하였으나 부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누르하치는 부산 또한 삭탈 관직 및 재산을 몰수하였다.


-43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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