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병자호란 관련 사서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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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4일

○甲子。敕諭朝鮮國王李倧曰大清國

寬溫仁聖皇帝諭朝鮮國王李倧朕進兵時。曾命大臣馬福塔等至爾國諭王王若引罪自責可居城中苐令世子群臣來迎請罪而已。大軍亦不深入爾不聽命遁入南漢山城此大失也本月十六日又遣大臣英俄爾岱馬福塔等諭出城歸命一切勿論不來朕必命一王分兵造船於十八日起行攻取江華島城矣然猶以爾為必來故十八日暫停攻江華島城之師爾又違命不來朕始有速攻江華鳥城之命本月十九日我軍用車輪駕所造小船八十陸地曳行二十二日至江華島渡口乘船渡江爾兵用大船三十餘分兩路拒戰為我紅衣將軍礮所擊爾船兵俱各逃潰我軍登岸時爾江華島又有鳥鎗手將及千人距岸迎敵亦為我軍所敗我軍既入島城即令人守視城門護爾家室凡物一無所擾爾二子來見朕弟和碩睿親王即令同處又命爾閣臣及一侍郎善護爾妃家室。勿令紛擾群臣亦各保聚其妻子宗族據先奏者所云如此俟江華島人來後再報王若早聽朕言豈至於此今朕之成命已明示於二十日詔內矣即攻戰所得朕猶矜憫寬恤令爾家屬完聚。茲特諭爾聞。知爾不速遵二十日之詔而前來是自棄其家屬也。朕豈能常令人護守乎

○ 갑자일(甲子)에,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인조)에게 칙유(敕諭/칙서를 보내 타이름)하여 말하길

   <대청국(大清國)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가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에게 유(諭/타이름)하노라!

    짐(朕)이 진병(進兵/진군)하였을 때 일찍이 대신(大臣) 마복탑(馬福塔/마푸타) 등(等)에게 명(命)하여,

    너의 나라에 이르러 왕(王)을 유(諭/타이름)하게 하였다.

    왕(王)이 만약(若) 인죄(引罪/죄를 이끎)하고 자책(自責/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꾸짖음)한다면

    성중(城中)에 거(居)할 수 있게 하고,

    단지 세자(世子)와 군신(群臣/뭇 신하)로 하여금 내영(來迎/와서 맞이함)하고 청죄(請罪/죄를 청함)할 뿐이고,

    대군(大軍) 역시(亦) 심입(深入/깊게 들어감)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명(命)을 불청(不聽/듣지 않음)하고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둔입(遁入/도망쳐 들어감)하였으니,

    이는 대실(大失/큰 잘못)이니라!

    본월(本月) 16일 또 대신(大臣) 영아이대(英俄爾岱/잉월다이)와 마복탑(馬福塔) 등(等)을 보내

    출성(出城)하여 귀명(歸命/귀부)하라 유(諭/타이름)하였으나,

    일체(一切) 물론(勿論/논하지 않음)하고 불래(不來/오지 않음)하였다.

    짐(朕)이 필히(必) 한 명의 왕(王)에게 명(命)하여 분병(分兵/병을 나눔)하고 조선(造船/배를 만듦)하여

    18일에 기행(起行/출발함)하여 강화도성(江華島城)을 공취(攻取/공격하여 취함)하고자 하였다.

    그런데도 오히려 너로 하여금 필히(必) 오게 하고자 이런 연고(故)로 18일에 

    강화도성(江華島城)의 군사(師)를 공격(攻)하는 것을 잠정(暫停/잠깐 멈춤)하였는데,

    너는 또 위명(違命/명을 어김)하고 불래(不來/오지 않음)하니

    짐(朕)이 비로소 본월(本月) 19일에 강화도성(江華鳥城)을 속공(速攻/신속히 공격함)하라는 명(命)이 있었던 것이었다.

    아군(我軍)이 차륜(車輪/수레바퀴)과 가(駕/멍에)를 이용(用)하여 

    소조(所造/만든 바)한 소선(小船/작은 배) 80척을 육지(陸地)로 예행(曳行/끌고 감)하여 

    22일에 강화도(江華島)의 도구(渡口/나루)에 이르러 승선(乘船/배를 탐)하여 도강(渡江/강을 건넘)하였다.

    너의 병(兵)이 대선(大船/큰 배) 30여 척을 이용(用)하여 양로(兩路/두길)로 분(分/나눔)하여 거전(拒戰/막아 싸움)하니,

    우리의 홍의포(紅衣)와 장군포(將軍礮)로 공격(擊)하니

    너의 선병(船兵/수군)이 모두 각각(各) 도궤(逃潰/흩어져 도망감)하였다.

    아군(我軍)이 등안(登岸/상륙)할 때에 너의 강화도(江華島)에 또한 장차(將) 천인(千人)에 이르는 

    조창수(鳥鎗手/조총병)가 있어 거안(距岸/기슭을 막음)하고 영적(迎敵/적을 막음)하였으나,

    역시(亦) 아군(我軍)이 소패(所敗/깨트림)하였다.

    아군(我軍)이 이윽고 도성(島城/강화도성)에 들어가 

    즉시(即) 사람으로 하여금 성문(城門)을 수시(守視/지키어 봄)하고 

    너의 가실(家室)과 범물(凡物/온갖 물건)을 보호(護)하여 하나도 소요(所擾/시끄러운 바)가 없었다.

    너의 이자(二子/차남)이 짐(朕)의 동생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호쇼이 머르건 친왕)을 내견(來見/와서 봄)하니,

    즉시(即) 동처(同處/같은 곳에 거처함)하게 하였다.

    또한 명(命)하여 너의 각신(閣臣)과 더불어 1명의 시랑(侍郎)은 너의 비(妃)와 가실(家室)을 

    선호(善護/잘 보호함)하여 분요(紛擾/분란)하지 말라 하였다.

    군신(群臣/뭇 신하) 역시(亦) 각각(各) 그 처자(妻子)와 종족(宗族)의 근거(據)를 보취(保聚/거두어들여 지킴)하게 하였다.

    먼저 아뢰는 자가 이와 같이 운(云/말함)하였으나 강화도(江華島) 사람이 와서 

    재보(再報/두 번재 알림)하는 것을 사(俟/기다림)하였노라!

    왕(王)이 만약(若) 일찍 짐(朕)의 말을 청(聽/들음)하였다면 어찌 이 작금(今)에 이르렀겠느냐?

    짐(朕)의 성명(成命/이미 내려진 천명)이 이미(已) 22일의 조서(詔) 안에 명시(明示/분명하게 드러내 지적함)하였으니,

    즉(即) 공전(攻戰/공격하여 싸움)하면 소득(所得/얻은 것)하나,

    짐(朕)은 오히려 긍민(矜憫/불쌍히 여김)하고 관휼(寬恤/너그럽게 용서하고 돌봄)하여

    너의 가속(家屬/식솔)을 완취(完聚/한자리에 모임)하게 하여,

    이제 네가 문지(聞知/들어서 앎)하도록 특유(特諭/특별한 유지)하노라!

    네가 20일의 조서(詔)를 속준(速遵/신속히 따름)하고 전래(前來/앞으로 옴)하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 그 가속(家屬/식솔)을 기(棄/버림)하는 것이노라!

    짐(朕)이 어찌 영원히 사람을 시켜 호수(護守/보호하여 지킴)할 수 있겠는가?>


○ 1637년 1월 24일에 조선국왕 이종(인조)에게 칙서를 보내 타일러 말하길

   <대청국 관온인성황제가 조선국왕 이종에게 유지를 내리노라!

    짐이 진군하였을 때 일찍이 대신 마복탑(마푸타/마부대) 등에게 명하여 너의 나라에 이르러 왕을 타이르게 하였다.

    왕이 만약 죄를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친다면 성중에 머물 수 있도록 하고

    단지 세자와 뭇 신하로 하여금 와서 맞이하여 죄를 청하면 될 뿐이며 대군 또한 깊게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네가 명령을 듣지 않고 남한산성으로 도망쳐 들어갔으니 이는 큰 잘못이니라!

    이달 16일에 또 대신 영아이대(잉월다이/용골대)와 마복탑 등을 보내 성을 나와 귀부하라 타일렀으나 일체 논하지 않고 오지 않았다.

    짐이 반드시 한 명의 왕(다이곤)에게 명하여 군사를 나눠 배를 만들게 하여 18일에 출발하여 강화도성을 공격하여 취하려 하였다.

    그런데도 오히려 너로 하여금 반드시 오게 하고자 이런 연고로 18일에 강화도성 군사를 공격하는 것을 잠시 멈췄는데도

    너는 또 명을 어기고 오지 않으니 짐이 비로소 이달 19일에 강화도성을 신속히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던 것이었다.

    아군이 수레와 멍에를 이용하여 건조한 작은 배 80척을 육지로 끌고 가

    22일에 강화도의 나루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너의 군사가 큰 배 30여 척을 이용하여 두 길로 나누워 막아 싸웠으나 우리의 홍의포와 장군포로 공격하니 너의 수군은 모두 각각 흩어져 도망갔다.

    아군이 상륙할 때에 너의 강화도에 또한 장차 일천에 이르는 조총병이 있어 기슭을 막았으나 또한 아군이 깨트렸다.

    아군이 이윽고 강화도 성에 들어가 즉시 사람을 시켜 성문을 지키게 하고 너의 가실(종실)과 온갖 물건을 보호하여 하나도 시끄러운 바가 없었다.

    너의 차남(봉림대군/효종)이 짐의 동생 화석예친왕(호쇼이 머르건 친왕 도르곤)을 와서 보니 즉시 같은 곳에 거처하게 하였다.

    또한 명을 내려 너의 각신(재상)과 더불어 1명의 시랑은 너의 비와 가실(종실)을 잘 보호하여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 하였다.

    뭇 신하 역시 각각 그 처자와 종족의 근거를 거두어들여 지키게 하였다.

    먼저 아뢰는 자가 이와 같이 말하였으나 강화도에서 두 번째 알리는 사람을 기다렸노라!

    왕(인조)이 만약 일찍 짐의 말을 들었다면 어찌 오늘날에 이르렀겠느냐?

    짐의 이미 내려진 명령이 이미 22일의 조서 안에 명시되었다!

    즉 공격하면 얻으나 짐은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너그럽게 용서하고자 하여 너의 식솔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였고

    이제 네가 들어서 알 수 있도록 특별히 유지를 내리노라!

    네가 20일의 조서를 속히 준수하고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너 스스로 그 식솔을 버리는 것이노라!

    짐이 어찌 영원히 사람을 시켜 보호하여 지킬 수 있겠는가?>










요약.

1637년 1월 24일 청 태종 홍 타이지는 인조에게 칙서를 보내 강화도 함락 사실을 통보한다.

이미 22일에 다이곤이 강화도를 급습하여 조선 수군과 육군을 격멸시키고 왕비와 차남(봉림대군)을 사로잡았다고 말한다.

홍 타이지는 18일까지도 인조의 출성을 기다린 연후에 19일 비로소 강화도 공격을 명했다고 말하며

지금이라도 성을 나와 투항하라 말한다.

만약 신속히 성을 나오지 않으면 왕실과 신하들의 식솔에 대한 안위를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경고한다.

이때 남한산성에서는 이미 22일~23일 척화대신을 내보내기로 결정하였고

김상헌, 윤황, 윤무거, 윤집, 오달제, 정온, 이명웅 등은 서로 자신이 나가서 죽음을 맞겠다고 

자청하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1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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