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전투 오류 정정(양구리가 주력은 아니었다!) 병자호란 이야기

만주어 사서 내국사원당을 번역하다 보니 광교산 전투 재구성에 오류가 있음을 파악하였습니다.

본래 광교산 전투의 주력은 양구리의 1천5백 병력이었고, 

도도는 후방에 있다가 양구리를 소환하였고 양구리가 물러나다가 전사했다고 해석하였으나

이는 오류였습니다.


내국사원당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637년 1월 7일 전라도+충청도의 병력이 합세하여 남한산성으로 온다는 첩보 입수

2. 홍 타이지 격퇴하라는 조서를 도도와 양구리에게 보냄

3. 조서를 받은 도도와 양구리 적이 있는 광교산으로 이동

4.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흐려 조선군의 위치 파악 못함

5. 도도는 군사를 풀어 적을 찾아서 공격하게 함

6. 도도군 산기슭에 정렬한 조선군 발견→공격→조선군 산 위로 도주→산 정상의 조선 본영 발견

7. 도도 양구리와 함께 합병하여 조선군 공격하기 위해 소라고동 불어 양구리 소환

8. 양구리 고동소리 듣고 도도를 만나러 산 위로 올라감

9. 산기슭 전투에서 패전한 조선군 저격병 언덕에 숨어있다 양구리 저격

10. 도도 조선 본영 공격 안 하고 대치

11. 1월 8일 도도가 본군 및 양구리의 군을 모두 인솔하여 조선 본영 공격

12. 이미 밤에 조선군 말 1140마리를 매어둔 채 모두 도망친 상태


조선왕조실록과 김준용의 묘명&신도비를 참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637년 1월 7일 새벽 광교산 안개가 심하게 낌

2. 청군이 공격을 개시함

3. 하루 종일 진퇴를 반복함

4. 해 질 무렵 청군이 산 정상을 점거하고 화살을 쏘아댐

5. 김준용군이 수백 명을 보내 상 정상을 점거하게 함

6. 이 과정에서 양구리 저격

7. 21시경 적이 물러나서 청군의 시신을 수습하고 불태움

8. 김준용 사방에 횃불을 피고 몰래 군을 퇴각함.


청실록, 내국사원당, 조선의 기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1. 광교산에 조선군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도도(1천), 양구리(1천5백)

   1월7일 새벽에 광교산 밑에 도착함

2. 눈이 많이 내리고 안개도 끼고 매우 흐려서 시야가 매우 안 좋음

3. 조선군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청군은 군사를 풀어 조선군을 찾음

4. 산 밑 기슭에 포진한 조선군 전방 부대를 발견함

5. 도도와 양구리 조선군 공격 시작, 하루 종일 싸움

6. 산 밑의 조선군 산 위의 본영으로 도주 시작

7. 해 질 무렵 도도군이 산 정상 포진

   1637년 1월 7일(양력2월1일) 해지는 시각 17:53분

8. 도도 산 정상에 있는 조선 본군을 상대하기 위해 소라고동 불어 양구리 소환

9. 양구리 소라고동 소리를 듣고 산 정상으로 올라감

10. 산 밑에서 도주하여 언덕 틈에 숨어 있던 조선 조총병 양구리 저격, 청군 양구리 시신 수습 못함

11. 21시경 도도 산 밑으로 퇴각

12. 청군이 물러나자 김준용 횃불 키고 말 묶어놓고 야영하는 것처럼 꾸미고 수원 방면으로 하산 퇴각.




내국사원당 1637년 1월 7일 기사中

○ ice nadan de. jirla doo. gung ceng doo juwe goloi dutan dzung bing guwan acafi.
○ 이처 나단 더. 지르라 도오. 궁 청 도오 줘 골오이 두탄 중 빙 구완 아차피.
○ 초 7 에. 전라 도. 충 청 도 2 지방의 도당 총 병 관 만나고.
cooha gaifi wang ni kabuha nan han i hecen de dame jifi. ing ilihabi seme donjifi.
초오하 가이피 왕 니 카부하 난 한 이 허천 더 다머 지피. 잉 일이하비! 서머 돈지피.
군대 가지고 고려 왕 의 포위된 남 한 의 성 에 도우며 와서. 영 세웠다! 하며 듣고서.
enduringge han [ini deo] hoxoi erke cin wang dodo.
언두링어 한 [이니 더오] 호쇼이 어르커 친 왕 도도.
성스러운 한 [그 동생] 화석 예(豫) 친 왕 도도.
amban jergici lakcaha [ujui] gung yangguri efu be cooha gaifi genefi tuwame afabu seme unggihe.
암반 저르기치 랔차하 [우주이] 궁 양우리 어푸 버 초오하 가이피 거너피 투와머 아파부! 서머 웅이허.
암반 초 품 [1등] 공 양구리 어푸 를 군대 가지고 가서 살펴보며 싸워라! 하며 보냈다.
hoxoi erke cin wang. jergici lakcaha [ujui] gung yangguri efu se hese be alifi genefi tuwaci.
호쇼이 어르커 친 왕. 저르기치 랔차하 [우주이] 궁 양우리 어푸 서 허서 버 알이피 거너피 투와치.
화석 예 친 왕. 초 품 [1등] 공 양구리 어푸 등 조서 를 받고 가서 살피니.
abka nimarame farhvn ofi batai cooha ing be getuken saburakv.
압카 니마라머 파르훤 오피 바타이 초오하 잉 버 거투컨 사부라쿼.
하늘 눈내리며 어둡게 되고 적의 군대 영 을 분명히 보지못했다.
uthai cooha be sindafi afabume alin i buten i jakade faidaha cooha be gidame gamafi.
웉하이 초오하 버 신다피 아파부머 알인 이 부턴 이 자카더 파이다하 초오하 버 기다머 가마피.
곧바로 군대를 풀어서 싸우게하며 산 의 기슭 의 곁에 정렬한 군대 를 격파하며 처치하고.
alin i ninggui amba ing de isibuha.
알인 이 닝우이 암바 잉 더 이시부하.
산 의 위의 큰 영 에 이르렀다.
tereci erke cin wang buren burdeme cooha bargiyafi jergici lakcaha [ujui] gung be alin i ninggude jio.
터러치 어르커 친 왕 부런 부르더머 초오하 바르갸피 저르기치 랔차하 [우주이] 궁 버 알인 이 닝우더 죠!
그로부터 예 친 왕 소라고동 불며 군대 거두고 초 품 [1등] 공 을 산 의 위에 오라!
emgi tuwame coohai niyalma be afabume gidaki seme hvlara jakade.
엄기 투와머 초오하이 냘마 버 아파부머 기다키! 서머 훨아라 자카더.
함께 살피며 군대의 사람 을 싸우게하며 격파하자! 하며 부를 적에.
jergici lakcaha [ujui] gung yangguri efu. hoxoi erke cin wang de acaname genere de.
저르기치 랔차하 [우주이] 궁 양우리 어푸. 호쇼이 어르커 친 왕 더 아차나머 거너러 더.
초 품 [1등] 공 양구리 어푸. 화석 예 친 왕 에 만나러가며 갈 때에.
solho i burlaha cooha hadai fiyeren de ukafi bihengge alime gaifi.
솔호 이 부르라하 초오하 하다이 폐런 더 우카피 비헝어 알이머 가이피.
고려 의 도망친 군대 언덕의 틈 에 도망가고 있던자 받으며 가지고.
miyoociyang[mioociyang] sindara jakade. [ujui] gung yangguri efu goifi feye de akv oho.
묘오챵[묘오챵] 신다라 자카더. [우주이] 궁 양우리 어푸 고이피 퍼예 더 아쿠 오호.
조총 놓을 적에. [1등] 공 양구리 어푸 명중하고 상처 에 없게 되었다.
ninju ninggun se bihe.
닌주 닝운 서 비허.
60 6 세 이었다.
[daicing] gurun boo de tusa arame yaya [babai] dain de [ujulame] juleri afame.
[다이칭] 구룬 보오 더 투사 아라머 야야 [바바이] 다인 더 [우줄아머] 줄어리 아파머.
[대청] 국 가 에 이득 만들며 어떤 [곳곳의] 전쟁 에 [앞장서며] 앞에서 싸우며.
amba gung [ambula] ilibuha [gungge amban] bihe.
암바 궁 [암불아] 일이부하 [궁어 암반] 비허.
큰 공 [많이] 세운 [공적 많이] 이었다.
[tereci] hoxoi erke cin wang cooha bargiyafi jai cimari gereke manggi afaki seci
[터러치] 호쇼이 어르커 친 왕 초오하 바르갸피 자이 치마리 거러커 망이 아파키! 서치
[그로부터] 화석 예 친 왕 군대 거두고 다음 아침 날밝은 뒤에 싸우자! 하니
solhoi cooha gemu morin waliyafi dobori burlame genefi ing de emu niyalma hono akv 
untuhun ohobi.
솔호이 초오하 거무 모린 와랴피 도보리 부르라머 거너피 잉 더 어무 냘마 호노 아쿠 운투훈 오호비.
고려 군대 모두 말 버리고 밤 달아나며 가서 영 에 1 사람 도 없었고 텅비게 되었다.
tereci hoxoi erke cin wang batai emu minggan emu tanggv dehe morin be bargiyafi amasi bedereme da ing de jihe.
터러치 호쇼이 어르커 친 왕 바타이 어무 밍안 어무 탕우 더히 모린 버 바르갸피 아마시 버더러머 다 잉 더 지허.
그로부터 화석 예 친 왕 적의 1 천 1 백 40 말 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며 본 영 에 왔다.
jergici lakcaha [ujui] gung ni giran be gajime han i ing ni tule isinjiha manggi.
저르기치 랔차하 [우주이] 궁 니 기란 버 가지머 한 이 잉 니 툴어 이신지하 망이.
초 품 [1등] 공 의 시신 을 가져오며 한 의 영 의 바깥 이른 뒤에. 


○ 7일에 전라도와 충청도 2 지방의 도당이 총병관과 만나서 군대 가지고 

고려왕(인조)의 포위된 남한성에 도우러 와서 영 세웠다! 하며 듣고서

성스러운 한(홍 타이지) [그 동생] 호쇼이 어르커 친왕 도도와 암반 초품[1등]공 양구리 어푸를 

군대 가지고 가서 살펴보며 싸워라! 하며 보냈다.

호쇼이 어르커 친왕(도도)과 초품[1등]공 양구리 어푸 등이 조서를 받고 가서 살피니

하늘 눈 내리며 어둡게 되고 적의 군대와 영을 분명히 보지 못하고

곧바로 군대를 풀어서 싸우게 하며 산기슭의 곁에 정렬한 (조선) 군대를 격파하며 처치하고 

산 위의 (조선의) 큰 영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어르커 친왕(도도) 소라고동 불며 군대 거두고 초품[1등]공(양구리)을 산 위에 오라!

함께 살피며 군대의 사람을 싸우게 하며 격파하자! 하며 부를 적에

초품[1등]공 양우리 어푸가 호쇼이 어르커 친왕(도도)에 만나러 가며 갈 때에

고려(조선)의 도망친 군대가 언덕의 틈에 도망가고 있던 자가 맞이하여 조총 쏠 때에

[1등]공 양구리 어푸 명중하고 상처에 죽게 되었다.

66세이었다.

[대청] 국가에 이득 만들며 어떤 [곳곳의] 전쟁에 [앞장서며] 앞에서 싸우며 큰 공 [많이] 세워 [공적 많이] 있었다.

[그로부터] 화석 호쇼이 어르커 친왕(도도) 군대 거두고 다음 아침 날밝은 뒤에 싸우자! 하니

고려 군대 모두 말 버리고 밤에 달아나며 가서 영에 1 사람도 없었고 텅비게 되었다.

그로부터 호쇼이 어르커 친왕(도도) 적의 말 1140마리를 거두고 뒤로 물러나며 (홍 타이지의) 본영에 왔다.

초품[1등]공(양구리)의 시신을 가져오며 한(홍 타이지)의 영의 바깥에 이른 뒤에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7일

○丁未朝鮮全羅忠清兩道巡撫總兵合兵來援立營於南漢山城

上聞之遣和碩豫親王多鐸超品公額駙楊古利率兵相機迎戰多。鐸楊古利等奉命往視值天雪陰晦。不見敵營遂縱兵進擊敗其山下列陣兵追至山頂敵營多鐸鳴角集兵招楊古利登山督戰楊古利往會適有一朝鮮敗卒伏於石窟暗以鳥鎗擊中楊古利創重而卒時年六十有六楊古利凡在行間率先破敵克建奇勳於國家宣力為多云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8일

○戊申和碩豫親王多鐸率軍進擊朝鮮兵時敵已棄馬夜遁營內虛無人獲馬千一百有四十是日舁楊古利屍至

上哭之慟群臣屢勸不止親臨其喪。奠酒賜御服黑貂裘套帽鞾殯之仍哭不止群臣固勸。

上始還營


○ 1637년 1월 7일에 조선의 전라, 충청 양도의 순무와 총병이 병력을 합쳐 구원하여 와서 남한산성에 영을 세웠다.

(홍 타이지)이 듣고는 화석예친왕(호쇼이 어르커 친왕) 다탁(도도, 누르하치의 #15남)과 
초품공 액부 양고리(양구리)을 보내 병력을 인솔하여 기회를 보아 반격하게 하였다.
다탁과 양고리 등이 명을 받들어 가서 보니 때마침 눈이 와 하늘이 흐리고 어두워 적의 군영을 보지 못 하였다.
마침내 병사를 풀어 진격하여 깨트렸다.
그 산 아래에 진을 친 군대를 추격하여 산 정상의 적의 군영에 이르렀다.
다탁이 뿔피리를 불게 하여 병력을 모으고 산에 올라 전투를 감독하는 양고리를 소환하니
양고리가 가다가 때마침 석굴에 매복한 한 명의 조선의 패잔병과 마주하였다.
은밀히 조총으로써 양고리를 쏘아 명중하니 중상을 입어 졸하였고 이때 나이 66세였다.
양고리는 무릇 앞장서서 적을 격파하고 승전한 것이 공적록에 있었고
국가에 뛰어난 공훈을 세움에 있어 열심히 노력함이 많다 하였다.

○ 1637년 1월 8일 화석예친왕 다탁(도도)이 군을 인솔하여 진군하여 조선군을 공격하였다.

이때 적이 이미 말을 버리고 야밤에 도주하여 군영 내가 텅 비어 한 사람도 없었고 말 1140마리를 획득하였다.



多鐸鳴角集兵招楊古利登山督戰

다탁이 뿔피리를 불게 하여 병력을 모으고 산에 올라 전투를 감독하는 양고리를 소환하니


번역이 잘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탁이 뿔피리를 불어 병력을 모으고 양고리를 소환하여 산에 오르게 하고 전투를 독려하였다.


표점이 없어 번역에 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뿔피리를 불고 양구리를 소환하고 산에 오르게하고 전투를 감독하는 주체는 도도였습니다.

은연중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에 양구리가 주력이다는 생각이 박여 있어서 인지 오역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도와 양구리는 청나라 서열이 각각 5위와 11위로 둘 다 직위가 매우 높은 데다가

둘 다 1천 이상씩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도도가 휘하 병력 1천을 데리고 뒤에서 놀고 있고

양구리만 1500을 거느리고 광교산을 공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듯합니다.

어차피 이 병력들은 자신들의 직속병도 아니고 모두 8기에서 조금씩 할당받은 병력일 뿐이니까요.



동명집 제15권 비갈(碑碣) 북병사 김공의 묘명〔北兵使金公墓銘〕

그해 12월에 청나라 군사가 갑작스럽게 쳐들어와 상께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행행하였다. 공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변란의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영하(營下)의 군대를 거느리고 행군하면서 열읍의 군사를 거두어 밤낮없이 달려갔다. 기읍(畿邑)에 이르러 광교산(光敎山)에 진을 치고는 때때로 정예병을 내어 약탈하러 나온 오랑캐들을 쳤다.

오랑캐들이 새벽녘에 삼군(三軍)을 합하여 안개가 낀 틈을 타고 곧장 침범하여 오자, 군사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공은 부월(斧鉞)을 잡고 싸움을 독려하였는데, 오랑캐들이 쏘는 화살이 비가 오듯이 쏟아졌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피하라고 권하였으나, 듣지 않은 채 더욱더 급하게 싸움을 독려하였다. 적들이 물러갔다가 황혼녘에 또다시 몰래 뒤쪽 고개를 넘어와서는 산꼭대기를 점거하였다. 이에 공은 직접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올라가 그 봉우리를 빼앗았다. 그때 오랑캐 장수 하나가 탄환에 맞아 죽었는데, 적군이 모두 통곡하였으므로 어떤 장수가 죽었는데 저처럼 통곡을 하는가 하고 괴이하게 여겼다. 나중에 한흥일(韓興一)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청나라 사람들이 ‘동국과의 전쟁에서는 광교산의 전투가 가장 치열하여 백양고라(白羊高羅)가 죽었다.’라고 하였다. 백양고라라는 자는 관직이 높고 또 용략(勇略)이 있어 무오년(1618, 광해군10)에 요동을 함락시킨 자였다.

백양고라를 죽이고 오랑캐의 장수 몇 사람을 계속하여 죽였다. 하루 종일 크게 싸워 오랑캐들이 패배하였는데, 시체가 삼대가 쓰러진 것 같았다. 2경이 지난 뒤에 적들이 그 시신을 모두 불태우고 몇 리 밖으로 물러났다. 이에 사기가 백배는 충천하여 다시 싸울 만하였다. 그러나 군량과 화살이 다 떨어졌으므로 다시 쳐들어올 경우에는 반드시 패할 것이 염려되었다. 이에 횃불을 늘어세워서 군사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는 몰래 군사를 빼내어 고개를 넘어 수원(水原)으로 향하였다. 다음 날에 오랑캐들이 과연 크게 쳐들어왔으나, 군영은 이미 텅 비어 있었으므로 몹시 놀라며 귀신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방백이 공의 군대가 패하였다고 아뢰었다. 공은 체포되어 중죄를 받게 되었으나, 유배형으로 낮추어졌다. 그때 마침 여러 사람이 모여 모두 사실을 말함에 따라 마침내 석방되었다. 공은 공을 세우고서도 무함을 당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원통하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공은 이를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공의 도량에 탄복하였다.


기언 별집 제17권 구묘문(丘墓文) 증(贈) 좌찬성 김공(金公) 신도비명(神道碑銘)

오랑캐들이 진격과 퇴각을 반복하여 하루 종일 양군이 온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는 가운데 오랑캐의 날랜 기병이 아군의 후방에 있는 고개를 몰래 넘어가 상봉을 먼저 점거하고는 화살을 비 오듯 쏘아대기 시작했다. 공이 급히 용사 수백 명을 출격시키고 상봉을 앞다투어 오르게 하면서,

“지금이 바로 충신이 나라에 보답할 때이다.”

하니, 육박전에 나선 군사들이 모두 일당백(一當百)으로 싸웠다. 오랑캐 가운데 갑옷을 입고 깃발을 잡고 있던 자가 봉우리 위로 말을 타고 올라가 서더니 큰 깃발을 세우고 군사들에게 호령을 내리자 군사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공이 그자를 가리키며,

“저놈을 죽이지 못하면 적들이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하면서 더욱 싸움을 독려하여 총포를 일제히 쏘아 대게 하니, 깃발을 잡고 군사들에게 호령을 내리던 자와 좌우에 서 있던 추장들 가운데 함께 탄환에 맞아 죽은 자가 여러 명이었고 오랑캐 군사들 가운데 죽은 자들이 즐비하여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반면에 아군의 전사자는 겨우 수십 명에 불과했다. 크게 패한 오랑캐가 산에서 내려와 곳곳에 시체를 쌓아 놓고 이를 태우니 오랑캐 군중이 곡소리로 가득하였으며, 시각은 밤 2경이 거의 다 되었다. 공이 군중을 둘러보니 탄환이 이미 다 떨어졌고 군량미도 고갈되어 아침에 오랑캐가 필시 대거 들이닥칠 터인데 그렇게 되면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군진을 이동하여 군사들을 쉬게 할 생각으로 사방에 횃불을 벌려 놓아 마치 군사들이 있는 양 속여 놓고 야음을 틈타 몰래 군사를 이동하였다. 아침이 되어 오랑캐가 대거 들이닥쳤으나 보루들은 이미 텅 비어 있는 상태였고, 적들은 복병이 있을까 두려워 감히 따라오지 못하였다. 이때 전사한 오랑캐의 패장 백양고라(白羊高羅)는 지위가 높은 오랑캐 장수로서, 전투를 잘하고 전공을 많이 세워 선칸(先汗)이 사위로 삼아 오랑캐들로부터 추중을 받는 인물이었다.

한편 아군이 행군을 하던 도중에 적들로부터 야습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군중이 혼란해지면서 큰 소리로 외쳐 대기를,

“주장(主將)을 위해 이미 온 힘을 다해 싸워 적들에게 승리를 거두어 놓고도 아무런 원조도 받지 못한 채 졸지에 이런 변고를 당하고 말았으니 이렇게 부질없이 죽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하고는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공이 휘하의 기병 수백 명과 함께 수원(水原)에 이르렀으나 군사가 없어 남쪽으로 내려가 다시 군사를 모아 다음을 도모하려고 하였다. 



결론

1. 광교산 전투의 주력은 도도와 양구리 2천5백 병력 전부다.

2. 날이 어두워 시야가 좋지 못하였다.

3. 청군은 산 밑의 조선군을 격파했다.

4. 김준용의 본군은 광교산 정상에 포진하고 있었다.

5. 산에 올라 김준용의 본군과 조우한 것은 도도다.

6. 도도는 소라고동을 불어 양구리를 오게 하고 병력 집결 명령을 내렸다.

7. 집결령에 따라 양구리는 산 정상으로 향했다.

8. 산 밑에서 패전하여 산 위로 도주하여 언덕 틈에 숨어있던 조선 조총병이 양구리를 저격하였다.

9. 밤이 늦고 양구리가 오지 않자 도도는 군을 이끌고 산 밑으로 내려간다.

10. 김준용은 횃불을 켜고 말을 묶어 놓고 수원 방면으로 하산하여 퇴각한다.

11. 다음날 조선 본영으로 쳐들어온 도도는 허탕을 친다.

12. 양구리의 시신을 수색하여 찾았다.

13. 양구리의 시신을 들고 남한산성으로 회군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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