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안부 출신 후금 장수 보르진(박이진) 열전 국역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완안부 출신으로 누르하치의 시위이자 대신(양홍기 기주)인 박이진(보르진)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보통은 임금의 시위를 뜻하는 햐[hiya]를 붙여 [보르진 햐]라고 불립니다.

금나라 황실이었던 완안부[완얀 아이만/왕야 아이만]와의 혈연적 관계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누르하치 당시에도 완안부는 존재하였는데 보르진이 바로 그 완안부 출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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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열전>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청사고

왕올당, 왕고, 대선/다이샨, 태조 누르하치, 저영/추옝, 서이합제/슈르하치, 아이합제/야르하치 

피옹돈[비영동], 호호리[하화례], 어이두[액역도], 안퍙워[안비양고]훠르한/호이한부찰씨(푸차 군다이) 

영아이대/용골대/잉월다이액이덕니/어르더니 밬시양고리/양우리

송서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27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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博爾晉,世居完顏,以地為氏。

太祖初起兵,有挾丁口來歸者,籍為牛彔,即使為牛彔額真,領其眾。

順治間,定官名皆漢語,謂之

「世管佐領」。

領牛彔,隸滿洲鑲紅旗,尋授侍衛。

歲癸巳,太祖侵哈達,略富爾佳齊寨,博爾晉與族弟西喇布從。

西喇布被二矢死,拔其矢還射,殪發矢者西忒庫,為西喇布報仇。

天命六年,授扎爾固齊。

城薩爾滸,命博爾晉博爾晉 博爾晉董其役。

役竟,從伐明,攻瀋陽,擊敗明總兵賀世賢、陳策。

瀋陽下,進攻遼陽,明總兵李懷信、侯世祿、蔡國柱、姜弼、董仲葵合軍五萬,屯城東南五里,左翼四旗與戰,大破之。

城兵自西門出援,博爾晉方奉命詗敵,傍城行,遂合兩紅旗兵邀擊,明兵敗,入城爭門,相蹂踐死者枕籍。

會左翼四旗兵已登陴,博爾晉麾眾畢登,遼陽亦下。

復分兵拔沙嶺,擊敗明廣寧援軍。

八年,與達音布、雅希禪帥師伐扎魯特部,其貝勒昂安突走,達音布戰死,博爾晉與雅希禪奮進,斬昂安,俘其孥。

師還,上優賚之。

十年,擢梅勒額真。

將兵二千伐東海虎爾哈部,收五百戶以歸,上郊迎宴勞。

太宗即位,列八大臣,領鑲紅旗,兼侍衛如故。

天聰元年正月,從伐朝鮮。

五月,上自將圍錦州,屯城西二里。

博爾晉自瀋陽帥師至,敗明兵,追至寧遠城下盡殲之。

敘先後戰功,授一等副將。

旋卒。

以失敕書,子孫不得襲。

康熙三年,其子特錦疏請立碑紀績,部議無左證,持不可,聖祖以博爾晉事太祖,勤勞夙著,特詔許之,並追諡忠直。

特錦及博爾晉孫瑪沁、曾孫康喀喇,皆有戰績。

박이진(博爾晉)은, 완안(完顏)에 세거(世居/대대로 거주함)하였고, 땅을 성씨(氏)로 삼았다.

태조(太祖/누르하치)가 처음에 기병(起兵/군사를 일으킴)하였는데,

정구(丁口/장정)를 협(挾/낌, 모음)하여 내귀(來歸/귀부하여 옴)하는 자(者)가 있으면,

우록(牛彔)으로 하여 적(籍/명부, 등록함)하였고, 곧 우록액진(牛彔額真)으로 삼아, 그 무리를 영(領/통솔함)하게 하였다.

순치(順治/청 3대 황제 세조의 #1연호, 1643년~1661년) 간(間)에,

관명(官名/관리의 명칭)을 모두 한어(漢語/중국어)로 정(定)하였는데,

이르길 「세관(世管) 좌령(佐領)」이라 하였다.

박이진(博爾晉)은 우록(牛彔)을 영(領/통솔함)하였는데, 

만주(滿洲) 양홍기(鑲紅旗)에 예속(隸)하였으며, 거듭 시위(侍衛)를 제수(授)하였다.

계사년(癸巳/1593년)에, 태조(太祖)가 합달(哈達)을 침략(侵)하였는데,

부이가제채(富爾佳齊寨)를 공략(略)하였고, 박이진(博爾晉)은 족제(族弟/일족 동생) 서라포(西喇布)와 함께 종군(從)하였다.

서라포(西喇布)가 두 발의 화살을 맞고 전사(死)하자, 

박이진(博爾晉)은 그 화살을 발(拔/뽑음)하여 환사(還射/다시 쏨)하였고,

발시(發矢/화살을 쏨)한 자(者) 서특고(西忒庫)를 에(殪/죽임)하니,

서라포(西喇布)의 보구(報仇/원수를 갚음)하였다.

천명(天命/후금 1대 황제 태조의 #1연호) 6년(1621년)에, 찰이고제(扎爾固齊)를 제수(授)하였다.

살이호(薩爾滸/사르후)에 축성(城)하였는데, 명(命)하여 박이진(博爾晉)은 그 부역(役)을 동(董/감독함)하게 하였다.

역(役)을 마치자, 명(明)을 정벌(伐)함에 종군(從)하여, 심양(瀋陽)을 공격(攻)하였고,

명(明) 총병(總兵) 하세현(賀世賢)과 진책(陳策)을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다.

심양(瀋陽)이 함락되자, 요양(遼陽)을 진공(進攻/진군하여 공격함)하였고,

명(明) 총병(總兵) 이회신(李懷信), 후세록(侯世祿), 채국주(蔡國柱), 강필(姜弼), 동중규(董仲葵)가

오만(五萬)을 합군(合軍)하여, 성(城) 동남(東南) 5리(里)에 둔(屯)하였는데,

좌익(左翼) 4기(旗)와 더불어 싸워, 대파(大破/크게 깨트림)하였다.

성병(城兵)이 스스로 서문(西門)으로 출원(出援/구원하려 출격함)하였는데,

박이진(博爾晉)이 바야흐로 봉명(奉命/명을 받듦)하여 형적(詗敵/적을 염탐함)하여,

성(城) 곁으로 가서, 마침내 양(兩) 홍기(紅旗)의 병(兵)과 합세(合)하여 요격(邀擊)하니,

명병(明兵)이 패(敗)하였고, 입성(入城)하여 쟁문(爭門/성문을 다툼)하니,

서로 유천(蹂踐/짓밟힘)하여 죽은 자가 침적(枕籍/깔려 드러눔)하였다.

때마침 좌익(左翼) 4기(旗)의 병(兵)이 이미 등비(登陴/성가퀴에 오름)하였는데,

박이진(博爾晉)이 휘중(麾眾/무리를 지휘함)하여 필등(畢登/오르길 마침)하였고,

요양(遼陽) 역시(亦) 함락되었다.

다시 분병(分兵/병을 나눔)하여 사령(沙嶺)을 발(拔/쳐서 빼앗음)하였고,

명(明) 광녕(廣寧)의 원군(援軍)을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다.

[천명(天命/후금 1대 황제 태조의 #1연호)] 8년(1623년)에, 

달음포(達音布), 아희선(雅希禪)과 함께 솔사(帥師/군대를 거느림)하여 찰로특부(扎魯特部)를 정벌(伐)하였고,

그 패륵(貝勒) 앙안(昂安)이 돌주(突走/돌격)하였고, 달음포(達音布)는 전사(戰死)하였는데,

박이진(博爾晉)은 아희선(雅希禪)과 함께 분진(奮進/기운을 떨쳐 앞으로 나감)하여,

앙안(昂安)을 참(斬)하였고, 그 노(孥/처자)를 부(俘/사로잡음)하였다.

사환(師還/회군)하자, 상(上/태조 누르하치)이 우뢰(優賚/후하게 포상함)하였다.

[천명(天命/후금 1대 황제 태조의 #1연호)] 10년(1625년)에, 

매륵액진(梅勒額真)으로 발탁(擢)되었다.

병(兵) 2천(千)을 장(將/인솔함)하여 동해(東海) 호이합부(虎爾哈部)를 정벌(伐)하였는데,

500호(戶)를 수(收/거둠)하여 이로써 귀환(歸)하니,

상(上/태조 누르하치)이 교영(郊迎/교외에 나가 맞이함)하여 연로(宴勞/잔치를 열어 위로함)하였다.

태종(太宗/후금 2대 황제 홍 타이지)이 즉위(即位)하여, 8 대신(大臣)을 열(列/순서를 매김)하였는데,

양홍기(鑲紅旗)를 영(領/통솔함)하였고, 겸(兼)하여 시위(侍衛)는 여고(如故/전과 같음)하였다.

천총(天聰/후금 2대 황제 태종의 #1연호) 원년(元年/1627년) 정월(正月)에, 

조선(朝鮮)을 종벌(從伐/정벌에 종군함)하였다.

5월에, 상(上/태종 홍 타이지)이 자장(自將/스스로 장수가 됨)으로 금주(錦州)를 포위(圍)하였는데, 

성(城) 남쪽(西) 2리(里)에 둔(屯)하였다.

박이진(博爾晉)이 심양(瀋陽)으로부터 수사(帥師/군대를 인솔함)하여 이르러, 

명병(明兵)을 패(敗/깨트림)하였고, 영원성(寧遠城) 아래까지 추지(追至/추격하여 이름)하여 진섬(盡殲/모두 섬멸함)하였다.

선후(先後) 전공(戰功)을 서(敘/펼침)하여, 일등부장(一等副將)을 제수(授)하였다.

선졸(旋卒/갑자기 죽음)하였다.

칙서(敕書)를 실(失/잃어버림)함으로써, 자손(子孫)은 세습(襲)을 부득(不得/얻지 못함)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3년(1664년)에, 

그 아들 특금(特錦)이 소청(疏請/임금에게 상소하여 청함)하여 기적(紀績/공적을 적음)을 입비(立碑/비를 세움)하였는데,

부의(部議/관부의 의논)가 좌증(左證/증거)이 없으니, 불가(不可)를 유지(持)하니,

성조(聖祖/청 4대 황제 효완 예이, 현엽)가 박이진(博爾晉)이 태조(太祖)에게 종사(事)함으로써,

근로(勤勞/부지런히 일함)가 숙저(夙著/예로부터 드러남)하니, 특조(特詔/특별한 조서)를 내려 허(許)하였고,

아울러 충직(忠直)을 추시(追諡/사후 시호를 추증함)하였다.

특금(特錦)은 박이진(博爾晉)의 손자(孫) 마심(瑪沁), 증손(曾孫) 강객라(康喀喇)와 더불어,

모두 전적(戰績/전공)이 있다.

 

*찰이고제(扎爾固齊) : 

 만주어로 자르궈치(jargvci)로, 1615년 누르하치는 팔기를 확립하면서 4패륵, 5대신, 10 자르궈치를 두었다. 

 자르궈치는 관내 영민의 송사를 담당하며 처리 후 상급 대신에게 이를 보고한다.



박이진(보르진)은 완안(완얀)에 대대로 살았는데 땅을 성씨로 삼았다.

태조(누르하치)가 처음에 거병하였는데 장정을 끼고 귀부하여 오는 자가 있으면

우록(니루)으로 하여 등록하여 곧 우록액진(니루 어전)으로 삼아 그 무리를 통솔하게 하였다.

순치(1643년~1661년)간에 관리의 명칭을 모두 중국어로 정하였는데 이르길 <세관 좌령>이라 하였다.

박이진은 우록을 통솔하였는데 만주 양홍기에 예속하였으며 거듭 시위를 제수 받았다.

1593년에 태조가 합달(하다)를 침략하여 부이가제채를 공략하였는데

박이진은 일족 동생 서라포와 함께 종군하였다.

서라포가 두 발의 화살을 맞고 죽자 박이진은 그 화살을 뽑아 다시 쏘아

화살을 쏜 자 서특고를 죽여 서라포의 원수를 갚았다.

1621년에 찰이고제(자르궈치)를 제수하였다.
살이호(사르후)에 성을 쌓았는데 박이진에게 명하여 그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공사를 마치자 명 정벌전에 종군하여 심양을 공격하여 명 총병 하세현과 진책을 공격하여 깨트렸다.
심양이 함락되자 요양으로 진군하여 공격하였고 명 총병 이회신, 후세록, 채국주, 강필, 동중규가
병력 5만을 합하여 심양성 동남쪽 5리에 주둔하였는데 좌익 4기와 함께 싸워 대파하였다.
심양성 병력이 스스로 서문으로 나와 구원하고자 하였는데 박이진이 명을 받들어 적을 염탐하였고
성 곁으로 가서 마침내 두 홍기(정홍기, 양홍기)의 병력과 합세하여 요격하니
명군을 격파하고 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다투니 명나라 군은 서로 짓밟혀 죽은 자가 깔려 드러누웠다.
때마침 좌익 4기의 병력이 이미 성가퀴에 올랐는데 박이진이 무리를 지휘하여 오르길 마쳤고,
요양 또한 함락되었다.
다시 병력을 나누어 사령을 쳐서 빼앗았고 명 광녕의 원군을 공격하여 깨트렸다.
1623년에 달음포, 아희선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찰로특부를 정벌하였는데
그 패륵(버이러) 앙안이 돌격하였고 달음포는 전사하였는데 박이진은 아희선과 함께 기운을 떨쳐 앞으로 나아가
앙안을 참하였고 그 처자를 사로잡았다.
회군하자 상(태조 누르하치)이 후하게 포상하였다.
1625년에 매륵액진(머이런 어전)으로 발탁되었다.
병력 2천을 인솔하여 동해 호이합부(훠르하)를 정벌하였는데 500호를 거둬 이로써 귀환하니
상(태조 누르하치)이 교외에 나가 맞이하여 잔치를 열어 위로하였다.
태종(홍 타이지)이 즉위하여 8 대신의 순서를 매겨 양홍기를 통솔하게 하였고 겸하여 시위는 전과 같게 하였다.
1627년 1월에 조선 정벌전에 종군하였다.
5월에 상(태종 홍 타이지)이 친정하여 금주를 포위하여 성 남쪽 2리에 주둔하였다.
박이진이 심양으로부터 군대를 인솔하여 이르러 명군을 깨트렸고 영원성 아래까지 추격하여 모두 섬멸하였다.
전후의 전공을 헤아려 일등부장을 제수하였는데 갑자기 죽었다.
칙서를 잃어버림으로써 자손은 세습을 얻지 못하였다.
1664년에 그 아들 특금이 상소를 올려 공적을 기록한 비를 세워주길 청하였는데
관부의 의논이 증좌가 없으니 불가하다 하였으나
성조(청 4대 황제 효완 예이, 현엽)가 박이진이 태조에게 종사하여 부지런히 일한 것이 예로부터 드러났으니
특히 조서를 내려 허락하였고 아울러 충직의 시호를 추증하였다.
특금은 박이진의 손자 마심, 증손자 강객라와 더불어 모두 전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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