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만문노당 435부-보르진의 사형을 면하는 대신 포상은 모두 회수한다! 만문노당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만문노당은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기록한 무권점 만문 사서 [만문원당/구만주당]을 
건륭조에 권점을 넣고 일부 내용을 변경하여 편찬하였습니다.
기 연재했던 내국사원당이 만주의 시조 부쿼리용숀부터 1584년 9월까지만 기록되어 있는데
만문노당은 1607년부터 기록이 시작됩니다.

만주어의 한글 발음은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하겠습니다.
만주어 문법을 이제 갓 배우고 있으며,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자세히 보실 분은 그림을 클릭하시고 원문보기를 누르세요>


maktaha bihe.

맠타하 비허.

던져 있었다.


han de alara jakade. wara weile be nakafi.

한 더 알아라 자카더. 와라 워일어 버 나카피.

한 에 알릴 적에. 죽일 죄 를 멈추고.


amban seme buhe liyoodung de xangnaha aika jaka be gemu gaiha.

암반! 서머 부허 료오둥 더 샹나하 아이카 자카 버 거무 가이하.

암반! 하며 준 요동 에 상내린 모든 물건 을 모두 빼앗았다.


sihan. ineku ere jergi de weile baha bihe.

시한. 이너쿠 어러 저르기 더 워일어 바하 비허.

시한. 같은 이 등급 에 죄 얻어 있었다.


ini deo i gung de weile waliyaha.

이니 더오 이 궁 더 워일어 와랴하.

그 동생 의 공 에 죄 버렸다.


○ ice nadan de. monggo i barin dureng beile i uyunju jakvn boo.

○ 이처 나단 더. 몽고 이 바린 두렁 버이러 이 우윤주 자퀀 보오.

○ 초 7 에. 몽고 의 바린 두렁 버이러 가 90 8 집.


emu tanggv orin haha. susai morin. duin tanggv juwan ihan. emu minggan honin gajime ukame jihe.

어무 탕우 오린 하하. 수사이 모린. 두인 탕우 주완 이한. 어무 밍안 호닌 가지머 우카머 지허.

1 100 20 남자. 50 말. 4 100 10 소. 1 천 양 데려오며 도망가며 왔다.


○ aiha i xeobei g'ao ming ho i bithe. ice uyun de isinjiha.

○ 아이하 이 셔오버이 까오 밍 호 이 빝허. 이처 우윤 더 이신지하.

○ 애하 의 수비 고 명 화 의 글. 초 9 에 이르렀다.


jeku i ton. bele nadan tanggv orin sunja

저쿠 이 톤. 벌어 나단 탕우 오린 순자

식량 의 수. 쌀 7 100 20 5


*sihan[시한] : 석한(锡翰), 인명.

*barin[바린] : 파림(巴林), 부족명.

*dureng[두렁] : 두릉(杜楞), 인명.

*aiha[아이하] : 애하(靉河), 강 이름.

*xeobei[셔오버이] : 수비(守备), 관직명.

*g'ao ming ho[까오 밍 호] : 고명화(高鸣和), 인명.





(양홍기 보르진과 휘하 6명을 사형죄에) 던져 있었다.

(누르가치)에 알릴 적에 죽일 죄를 멈추고

<암반!> 하며 준 요동에 상내린 모든 물건을 모두 빼앗았다.

시한 또한 이 등급에 죄 얻어 있었다.

그 동생의 공에 죄 버렸다.

 (1621년 4월) 7일에 몽고의 바린 두렁 버이러가 98호, 120 남자, 50 말, 410 소,

1천 양 데려오며 도망가며 (후금에) 왔다.

○ 애하의 수비 고명화의 글 (1621년 4월) 9일에 이르렀다.

식량의 수 쌀 725(석)


요약.

1621년 4월 7일 요양성 전투에서 누르하치의 지시를 어긴 양홍기 기주 보르진 이하 7명

판관들에 의해 사형죄를 언도받았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이들의 사형죄를 면하게 하고 요동 전투에서 내린 포상을 모두 회수하는 것으로 죄를 경감한다.

시한 또한 같은 죄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그 동생의 공적에 의해 죄를 면하게 되었다.

이날 몽고의 바린 두렁이 98호를 이끌고 후금에 투항해 왔다.

4월 9일 애하의 수비 고명화는 요양성에 서신을 보내 누르하치가 일전에 요구한 애하의 식량 사정을 보고한다.


-436부에서 계속-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