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고 완안부 장수 마심(마친) 열전 국역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완안부 출신으로 후금 개국공신 중 한명인 보르진의 손자 마심(마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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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열전>

송사

한세충이치, 양재흥, 동관[방랍], 채경, 부언경, 곽약사, 반미, 이사사고구송강장방창, 황잠선묘부(유정언)진회

금사

명사

두송 이성량

청사고

왕올당, 왕고, 다이샨[대선], 태조 누르하치, 추옝[저영], 슈르하치[서이합제], 야르하치[아이합제] 

피옹돈[비영동], 호호리[하화례], 어이두[액역도], 안퍙워[안비양고]훠르한/호이한푸차 군다이[부찰씨] 

잉월다이[영아이대/용골대]어르더니 밬시[액이덕니]양우리[양고리]보르진[박이진], 특금

송서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27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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瑪沁,博爾晉孫。

父本託輝,博爾晉長子。

官牛彔額真,兼都察院理事官。

崇德三年,以擺牙喇甲喇章京從貝勒岳託伐明,自牆子嶺入邊,明薊遼總督吳阿衡以馬步兵六千來援,

瑪沁與勞薩等率兵擊敗之,獲其馬及砲。

六年,從圍錦州,敗敵於松山。

順治初,從入關,破流賊,授牛彔章京世職。

五年,擢鑲紅旗蒙古副都統。

七年,恩詔加半個前程。

尋從鄭親王濟爾哈朗征湖廣,至衡州,疾,卒。

無子,以兄子康喀喇襲。

마심(瑪沁)은, 박이진(博爾晉)의 손자(孫)이다.

부친(父) 본탁휘(本託輝)는, 박이진(博爾晉)의 장자(長子)이다.

관직(官)은 우록액진(牛彔額真)이었고, 도찰원(都察院) 이사관(理事官)을 겸(兼)하였다.

숭덕(崇德/청 2대 황제 태종의 #2연호) 3년(1638년)에, 

파아라(擺牙喇) 갑라장경(甲喇章京)으로써 패륵(貝勒) 악탁(岳託)을 따라 명(明)을 정벌(伐)하였고,

장자령(牆子嶺)으로부터 입변(入邊/변경으로 들어감)하였는데, 

명(明) 계요총독(薊遼總督) 오아형(吳阿衡)이 마보병(馬步兵) 6천(千)으로써 내원(來援/구원하여 옴)하였는데,

마심(瑪沁)이 노살(勞薩) 등(等)과 함께 솔병(率兵/병을 인솔함)하여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고,

그 말과 더불어 포(砲)를 획득(獲)하였다.

[숭덕(崇德/청 2대 황제 태종의 #2연호)] 6년(1641년)에, 종군(從)하여 금주(錦州)를 포위(圍)하였고,

송산(松山)에서 패적(敗敵/적을 깨트림)하였다.

순치(順治/청 3대 황제 세조의 #1연호, 1643년~1661년) 초(初)에, 종군(從)하여 입관(入關)하였는데,

유적(流賊/이곳저곳 떠돌며 노략질하는 도적, 농민 반란군)을 격파(破)하였고, 

우록장경(牛彔章京)의 세직(世職/세습)을 수여(授)받았다.

[순치(順治/청 3대 황제 세조의 #1연호)] 5년(1648년)에, 양홍기(鑲紅旗) 몽고(蒙古) 부도통(副都統)에 발탁(擢)되었다.

[순치(順治/청 3대 황제 세조의 #1연호)] 7년(1650년)에, 

은조(恩詔/임금의 은혜로운 조서)로 반개전정(半個前程/세습 관직)을 가(加/관직을 더함)하였다.

잇달아 정친왕(鄭親王) 제이합랑(濟爾哈朗)을 따라 호광(湖廣)을 정벌(征)하였는데,

형주(衡州)에 이르러, 질(疾/병 듦)하였고, 졸(卒)하였다.

자식(子)은 없었고, 형(兄)의 아들 강객라(康喀喇)가 세습(襲)하였다.


마심(마친)은 박이진(보르진)의 손자이다.

부친 본탁휘는 박이진의 큰 아들이다.

관직은 우록액진(니루 어전)으로 시작하고 도찰원 이사관을 겸하였다.

1638년에 파아라(바야라) 갑라장경(잘안 장긴)으로써 패륵(버이러) 악탁(요토)을 따라 명을 정벌하였고

장자령으로부터 명 국경으로 들어갔는데 명 계요총독 오아형이 보기군 6천으로 구원하여 왔는데

마심이 노살(로오사) 등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공격하여 깨트렸고 그 명나라 말과 포를 획득하였다.

1641년에 종군하여 금주를 포위하였고 송산에서 적을 깨트렸다.

순치(청 3대 황제 세조의 #1연호, 1643년~1661년) 초에 종군하여 입관하였는데

유랑 도적을 격파하였고 우록장경(니루 장긴)의 세습을 수여받았다.

1648년에 양홍기 몽고 부도통에 발탁되었다.

1650년에 조서로 반개전정(세습 관직)을 더하였다.

잇달아 정친왕 제이합랑(지르갈앙)을 따라 호광을 정벌하였는데, 형주에 이르러 병이 들었고 졸하였다.

자식은 없었고 형의 아들 강객라가 관직을 세습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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