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고 완안부 장수 강객라(캉칼아) 열전 국역 청사고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열전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완안부 출신으로 후금 개국공신 중 한명인 보르진의 증손자 강객라(캉갈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강객라는 삼번의 난 당시 오삼계 군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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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열전>

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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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월다이[영아이대/용골대]어르더니 밬시[액이덕니]양우리[양고리]보르진[박이진], 특금마심[마친]

송서

원문 출처 : https://zh.wikisource.org/wiki/%E6%B8%85%E5%8F%B2%E7%A8%BF/%E5%8D%B7227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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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喀喇,博爾晉曾孫。

初為二等侍衛。

順治四年,蘇尼特部騰機思與其弟騰機特叛,康喀喇從豫親王多鐸帥師往討,大破之,陣斬騰機特。

進二等阿達哈哈番。

十五年,從寧南大將軍洛託征貴州。

康熙十年,遷護軍參領。

十二年,吳三桂反,順承郡王勒爾錦帥師討之,康喀喇將護軍從。

十三年,攻岳州,戰荊河口,戰城陵磯,破三桂將吳應麒。

十六年,攻長沙,復茶陵,戰攸縣,破三桂將王輝。

十七年,取耒陽,下常寧、新寧諸縣,又克郴州,康喀喇皆在行間。

二十五年,授鑲紅旗滿洲副都統。

二十九年,從裕親王福全征噶爾丹。

三十年,卒。

강객라(康喀喇)는, 박이진(博爾晉)의 증손(曾孫)이다.

처음에 이등(二等) 시위(侍衛)가 되었다.

순치(順治/청 3대 황제 세조의 #1연호) 4년(1647년)에, 소니특부(蘇尼特部) 등기사(騰機思)가 그 동생 등기특(騰機特)과 함께 반란(叛)하였는데,

강객라(康喀喇)가 예친왕(豫親王) 다탁(多鐸)을 따라 수사(帥師/군을 이끎)하여 왕토(往討/가서 토벌함)하였고,

대파(大破)하였으며, 등기특(騰機特)을 진참(陣斬/진에서 참수함)하였다.

이등(二等) 아달합합번(阿達哈哈番)에 진(進/오름)하였다.

순치(順治/청 3대 황제 세조의 #1연호) 15년(1658년)에, 영남(寧南) 대장군(大將軍) 낙탁(洛託)을 따라 귀주(貴州)를 정벌(征)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10년(1671년)에, 호군(護軍) 참령(參領)으로 천(遷/관직을 옮김)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12년(1673년)에, 오삼계(吳三桂)가 배반(反)하자,

순승군왕(順承郡王) 늑이금(勒爾錦)이 수사(帥師/군을 이끎)하여 토벌(討)하였는데,

강객라(康喀喇)가 호군(護軍)을 장(將/거느림)하여 종군(從)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13년(1674년)에, 악주(岳州)를 공격(攻)하였고,

형하구(荊河口)에서 싸웠으며, 성릉기(城陵磯)에서 싸웠고, 오삼계(三桂)의 장수(將) 오응기(吳應麒)를 격파(破)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16년(1677년)에, 장사(長沙)를 공격(攻)하였고,

차릉(茶陵)을 수복(復)하였고, 유현(攸縣)에서 싸웠으며, 오삼계(三桂)의 장수(將) 왕휘(王輝)를 격파(破)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17년(1678년)에, 뇌양(耒陽)를 취(取)하였고,

상녕(常寧)과 신녕(新寧)의 제현(諸縣/여러 현)을 하(下/함락함)하였고,

또 침주(郴州)에서 극(克/승리함)하였는데, 강객라(康喀喇)가 모두 행간(行間/공적록)에 있었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25년(1686년)에, 양홍기(鑲紅旗) 만주(滿洲) 부도통(副都統)을 제수(授)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29년(1690년)에, 유친왕(裕親王) 복전(福全)을 따라 갈이단(噶爾丹)을 정벌(征)하였다.

[강희(康熙/청 4대 황제 성조의 #1연호)] 30년(1691년)에, 졸(卒)하였다.


강객라(캉칼아)는 박이진(보르진)의 증손이다.

처음에 이등 시위가 되었다.

1647년에 소니특 부족 등기사가 그 동생 등기특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는데 

강객라가 예친왕 다탁(도도)을 따라 군을 이끌고 가서 토벌하여 대파하였고 등기특을 진에서 참하였다.

이등 아달합합번(아다하 하판)에 올랐다.

1658년에 영남대장군 낙탁(로토)을 따라 귀주를 정벌하였다.

1671년에 호군 참령으로 옮겼다.

1673년에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자 순승군왕 늑이금(너르곈)이 군을 이끌고 토벌하였는데 강객라가 호군을 거느리고 종군하였다.

1674년에 악주를 공격하였고 형하구에서 싸웠으며 성릉기에서도 싸워 오삼계의 장수 오응기를 격파하였다.

1677년에 장사를 공격하였고 차릉을 수복하였으며 유현에서 싸워 오삼계의 장수 왕휘를 격파하였다.

1678년에 뇌양을 취하였고 상녕과 신녕의 여러 현을 함락하였으며 또 침주에서도 승리하였는데 강객라가 모두 공적이 있었다.

1686년에 양홍기 만주 부도통을 제수하였다.

1690년에 유친왕 복전(푸쵸완)을 따라 갈이단(몽고 부족 갈단)을 정벌하였다.

1691년에 졸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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