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무황제 노아합기 국역 64부-광해군 여진족 수천 명을 누르하치에 넘기다! 무황제실록 번역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청 개국 후 태종 숭덕조 1636년에 편찬된 태조무황제실록(太祖武皇帝實錄)을 틈틈이 국역코자 합니다.
무황제실록은 강희제에 의해 다듬어지고 변경된 청실록 고황제실록의 원본으로
태조 누르하치의 일대기를 있는 그대로 투박하게 기록한 사서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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酉年二月,太祖遣使申奏大明國曰:
「鄰朝鮮境斡兒哈部眾,皆吾所屬,有入朝鮮者,乞傳諭查與,故奏。」
萬曆皇帝遣使諭朝鮮國,查千餘戶與之。
十二月,太祖命胡兒剛蝦領兵一千,征東海兀吉部所屬呼夜衛,克之,獲人畜二千而還。
因有功,賞胡兒剛蝦盔甲馬匹,仍賜名大兒漢蝦。
時兀吉部內,瑞粉衛酋長吐朗,[乃夙附太祖者],被本部押攬衛人擄去。
庚戌歲十一月,太祖命厄一都領兵一千,往兀吉部內那木都魯、瑞粉、寧古塔、尼媽義四衛,將其酋長康孤里、康都里、昂孤、明剛吐、惡洛合、僧革、尼哈里、湯松剛、夜革樹等,盡招服之。
令其舉家先赴滿洲,復領兵擊押攬衛,獲人畜萬餘而回。
기유년(己酉年/1609년) 2월에, 태조(太祖)가 대명국(大明國)에 사신을 보내 신주(申奏/상주)하여 말하길
「조선(朝鮮) 국경(境)에 인접(鄰)한 알아합(斡兒哈/와르카) 부중(部眾/부족 무리)는,
  모두 나의 소속(所屬)이니, 조선(朝鮮)에 들어간 자가 있으면, 
  바라건대 사여(查與/조사하여 줌)를 전유(傳諭/전하여 타이름)하소서.
  이런 연고(故)로 주(奏/아룀)합니다.」
만력황제(萬曆皇帝)가 사신을 보내 조선국(朝鮮國)을 유(諭/타이름)하였고,
천여호(千餘戶)를 조사(查)하고는 주었다.
12월에, 태조(太祖)가 명(命)하여 호아강(胡兒剛/훠르간) 하(蝦/햐)는 1천을 영병(領兵/병을 거느림)하고,
동해(東海) 올길부(兀吉部/워지부) 소속(所屬) 호야위(呼夜衛/후예위)를 정벌(征)하게 하였는데,
극(克/함락함)하였고, 인축(人畜/사람과 가축) 2천을 획득(獲)하고는 귀환(還)하였다.
유공(有功/공이 있음)으로 인(因)하여, 호아강(胡兒剛) 햐(蝦)에게 회갑(盔甲/투구와 갑옷)과 
마필(馬匹/말 몇 마리)를 포상(賞)하였고,
거듭 대아한(大兒漢/다르한) 하(蝦/햐)를 사명(賜名/칭호를 하사함)하였다.
이때 올길부(兀吉部) 내(內)에, 서분위(瑞粉衛/수이푼위) 추장(酋長) 토랑(吐朗/툴언)이,
[곧 일찍이 태조(太祖)에게 귀부(附)한 자이다]
본부(本部) 압람위(押攬衛/야란위) 사람의 노거(擄去/노략질하여 감)를 당하였다.
경술년(庚戌/1610년) 11월에, 태조(太祖)가 명(命)하여 액일도(厄一都/어이두)는 1천을 영병(領兵/병을 거느림)하고,
올길부(兀吉部) 내(內)의 나목도로(那木都魯/남둘우), 서분(瑞粉/수이푼), 영고탑(寧古塔/닝우타), 니마의(尼媽義/니마차) 
4위(衛)에 가서,
장차(將) 그 추장(酋長) 강고리(康孤里/캉우리), 강도리(康都里/캌두리), 앙고(昂孤/앙워), 명강토(明剛吐/밍아투), 
악랍학(惡洛合/울우카), 승혁(僧革/성어), 니합리(尼哈里/니카리), 탕송강(湯松剛/탕숭아), 야혁수(夜革樹/옠슈) 등(等)을,
모두 초복(招服/불러 복종시킴)하였다.
그 거가(舉家/모든 집)로 하여금 먼저 만주(滿洲)로 부(赴/다다름)하게 하였는데,
다시 영병(領兵/병을 거느림)하고 압람위(押攬衛)를 공격(擊)하여, 
인축(人畜/사람과 가축) 만여(萬餘)를 획득(獲)하고는 회군(回)하였다.

1609년 2월에 태조가 대명국에 사신을 보내 상주하여 말하길
   <조선 국경에 인접한 와르카 부족 무리는 모두 나의 소속이니 조선에 들어간 자가 있으면
    바라건대 조사하여 줄 것을 (조선에) 전하여 타이르소서!
    이런 연고로 아뢰나이다!>
만력황제(명 신종)가 사신을 보내 조선국을 타일렀고 1천여 호를 조사하고는 주었다.
1609년 12월에 태조가 명하여 훠르간 햐는 1천의 병을 거느리고 
동해 워지부 소속 후예위를 정벌하게 하였는데 함락하고는 사람과 가축 2천을 획득하여 귀환하였다.
공이 있음으로 인하여 훠르한 햐에게 투구와 갑옷 및 말 몇 마리를 포상하였고 거듭 다르한 햐라는 칭호를 하사하였다.
이때 워지부 내에 수이푼위 추장 툴언이 본부 야란위 사람의 노략질을 당하였다.
[툴언은 곧 일찍이 태조에게 귀부한 자이다]
1610년 11월에 태조가 명하여 어이두는 1천의 병을 거느리고 워지부 내의 남둘우, 수이푼, 닝우타, 니마차 4위에 가서
장차 그 추장 캉우리, 캌두리, 앙워, 밍아투, 울우카, 성어, 니카리, 탕숭아, 옠슈 등을 모두 불러 복종시켰다.
그 모든 집을 먼저 만주로 다다르게 하였는데 다시 병력을 거느리고 야란위를 공격하여 
사람과 가축 1만여를 획득하고는 회군하였다.

요약.
1609년 2월 누르하치는 명 만력제에게 상소를 올려 두만강 일대에 살고 있던 동해여진(야인여진)
와르카 부족 중에 조선으로 내투한 자를 다시 만주로 돌려달라 말한다.
이미 울아 부잔타이와의 동해여진 쟁탈전에서 승리한 누르하치는 남아 있는 동해여진족들을
갈고리 쓸어 담듯 거성 허투 알아 인근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이에 만력제는 조선 광해군에게 명을 내렸고, 광해군은 1천 호를 조사하여 만주로 보냈다고 무황제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전혀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와르카 부족 중의 일부는 계속해서 조선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병자호란 당시의 만문노당과 태종실록을 살펴보면 청군이 조선을 침략하자
조선에 남아 있던 와르카 부족 200호가 자진하여 홍 타이지에게 투항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누르하치는 동해여진을 계속 공격하여 인축을 모조리 잡아오기 시작했다.
1609년 12월에 훠르한 햐는 1천으로 워지부 후예위를 정복하고 다르한 햐의 칭호를 받았고
1610년 11월에 어이두는 1천으로 워지부 남둘우, 수이푼, 닝우타, 니마차 4위를 정복하고 인축 1만을 획득했다.

<동해여진 쟁탈전>


-6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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