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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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4일

○是日、朝鮮國王李倧、以書來奏曰。

朝鮮國王臣李倧、謹上書於大清國寬溫仁聖皇帝陛下

臣罄竭衷悃。冒陳一書誠意淺薄未蒙領可慙惶悸恐若無所容。

仍念君臣之名非可以苟立但為宗社計。不容不請雖蒙嚴譴臣敢避乎

伏惟陛下垂察焉小邦以海外弱國與中土絕遠。惟強且大者。是臣是服從前之於遼金元是也今

陛下受

天眷佑丕開鴻運而小邦壤地相接。服事已久。

固宜首先歸順為諸國倡。而所以遲迴至今者苐以世事明朝名分素定。其不欲遽變臣節。亦出於情之當然惟是昏謬無狀。

事多妄作。自上年春後大國之所以待小邦者。情意靡替。而小邦之所以獲過大國者種種非一大軍之加。

實所自取。君臣上下。惴惴度日惟待死亡。不圖

聖德如天。俯賜矜憫。思所以保全宗社本月十七日。

上旨有曰。若爾國盡入版圖朕有不生養安全。字若赤子者乎。二十日

上旨有曰。朕開弘度許以自新恩綸一布。萬物皆春真所謂生死而肉骨者也東方之人子子孫孫皆將頌

陛下之功德况臣躬被再造之賜者乎今之所以稱臣奉表願為藩邦世事大國者。

亦出於人情天理之不容已此臣所謂君臣之名。非可以苟立者也臣既委躬

陛下。則其於

陛下之命固當奔走承命之不暇至於未敢出城之由則臣之情勢誠有如前所陳止此一款臣有死而已傳曰人之所欲天必從之

陛下即臣之天也豈有不曲賜鑒納者乎且

陛下既以貸罪許臣臣既以臣禮事

陛下。則出城與否特其小節耳寧有許其大者而不許其小者乎故臣之所望欲待天兵退舍之日親拜

恩敕於城中而設壇望拜以送

乘輿即遣大臣充謝恩使以表小邦誠心感悅之情。自茲以往。事大之禮悉照常式永世不絕。臣方以誠信事

陛下

陛下亦以禮義待小邦君臣之間各盡其道貽福生民。見稱後世則今日小邦之被兵實為子孫無疆之休慶矣敗和諸臣事前書亦已略陳。

大抵此輩敢為妄言壞兩國大計此非但

陛下之所惡。實小邦君臣之所共憤也鈇鉞之誅有何顧惜但上年春間首倡臺諫洪翼漢

當大軍到境時斥為平壤庶尹令渠自當兵鋒若不為軍前俘獲則必在本土班師之路不難縛致

其他被斥在外者道路不通未易尋其處所此則理勢然也以

陛下之大度仁恕想能包容而寬宥之必欲窮究請於師還之後查得其人以待處分。謹冒死以聞

○ 이날에,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인조)이 서신(書)으로써 내주(來奏/와서 아룀)하여 말하길

   <조선국왕(朝鮮國王) 신(臣) 이종(李倧)은 삼가 대청국(大清國)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 폐하(陛下)께 

    상서(上書/글을 올림)하나이다!

    신(臣)은 충곤(衷悃/거짓 없는 속마음)을 경갈(罄竭/모두 다함)하여 성의(誠意/진실되고 정성스러운 뜻)로 

    일서(一書/서신 한 장)를 모진(冒陳/번민하여 진술함)하였는데,

    천박(淺薄)하고 미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가히(可) 참(慙/부끄럼)하고 황계(惶悸/두려워서 가슴이 두근거림)하며 

    만약(若) 무소용(無所容/용서할 바가 없음)할까 공(恐/두려움)하나이다.

    이에 군신(君臣)의 명예(名)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가이(可以) 구차(苟)하게 단지(但) 종사(宗社)의 계책(計)으로 삼아 세우고자 하나이다.

    불용(不容/용서하지 않음)하고 불청(不請/청하지 않음)한다면

    비록 어리석음을 엄견(嚴譴/엄하게 꾸짖음)한들 신(臣)이 감히(敢) 피(避)하겠나이까?

    복유(伏惟/삼가 엎드려 생각하옵건대)하니 폐하(陛下)께오서는 수찰(垂察/미루어 헤아려 주심)하소서!

    소방(小邦)은 해외(海外)의 약국(弱國)으로써 중토(中土/중국 땅)와 더불어 절원(絕遠/동떨어지게 멈)하나,

    오로지 강(強)하고 또한 대(大)하니 이에 신(臣)이 되었나이다.

    이렇게 이전(前)에 요금원(遼金元)에 복종(服從)한 것이 이것이나이다.

    지금(今) 폐하(陛下)께서는 천권(天眷/하늘의 은혜)의 우(佑/도움)를 애(受/받음)하여,

    홍운(鴻運/대운)을 비개(丕開/크게 엶)하시었고

    소방(小邦)의 양지(壤地/강토)와 상접(相接/서로 닿음)하여 복사(服事/복종하여 섬김)가 이미(已) 구(久/오래됨)하였나이다.

    원래 제국(諸國/여러 나라)이 창(倡/노래 부름)함에 마땅히 가장 먼저 귀순(歸順)하여야 하였는데,

    그러나 지회(遲迴/지체함)한 까닭에 지금에 이른 것은,

    단지 세사(世事/세상 일)로써 명조(明朝)의 명분(名分)이 소정(素定/본디 정해짐)하였기 때문이옵니다.

    그 신절(臣節/신하의 절개)을 거변(遽變/급히 변절함)하지 않고자 함 역시(亦) 정(情)에서 나옴이 당연(當然)하나이다.

    생각건대 이에 혼유(昏謬/어리석고 잘못함)와 무상(無狀/아무렇게나 함부로 굴어 버릇이 없음)하여,

    일이 망작(妄作/망령되어 만듦)함이 많았나이다.

    상년(上年/지난해) 봄 이후(後)으로부터 대국(大國)이 소방(小邦)을 대(待/기다림)한 까닭으로

    정의(情意/호의)가 미체(靡替/쓰러지고 쇠퇴함)하였고,

    소방(小邦)이 대국(大國)에 획화(獲過/화를 얻음)한 까닭으로 종종(種種) 비일(非一/하나가 아님)하였습니다.

    대군(大軍)의 가(加)함은 실로(實) 자취(自取/자초함)한 바이니, 군신(君臣) 상하(上下)가 췌췌(惴惴/매우 두려워함)하였고,

    도일(度日/날을 보냄)하며 오직 사망(死亡)을 대(待/기다림)하였나이다.

    부도(不圖/뜻밖에) 성덕(聖德/임금의 덕)은 하늘과 같이 부사(俯賜/높은 상대가 머리를 숙여 줌)하시고,

    긍민(矜憫/불쌍히 여김)하게 생각하시어 본월(本月) 17일에 종사(宗社)를 보전(保全)케 해주신다는

    상(上/임금)의 지(旨)가 있어 말씀하시길

    <만약(若) 너의 나라가 판도(版圖/한 나라의 영토)로 진입(盡入/모두 들어옴)한다면,

     짐(朕)이 생양(生養/길러 키움)하고 안전(安全)하게 적자(赤子/갓난 아이)와 같이 자(字/사랑함)함이 없겠느냐?>하였나이다.

    20일에 상(上)께서 성지(旨)로 말씀하시길

    <짐(朕)은 홍도(弘度/큰 도량)를 열어 이로써 자신(自新/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함)을 허(許)하노라>하셨으니,

    은륜(恩綸/은혜로운 윤음, 황제의 조칙)이 일포(一布/한번 베풂)하여 만물(萬物)이 모두 봄이 되었으니,

    진실로(真) 소위(所謂) 생사이육골(生死而肉骨/죽은 사람을 살려 뼈에 살을 붙임)한 것이니,

    동방(東方)의 사람 자자손손(子子孫孫) 모두 장차(將) 폐하(陛下)의 공덕(功德)을 칭송(頌)할 것이나이다.

    더군다나 신(臣)은 재조지사(再造之賜/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를 궁피(躬被/몸소 받음)하지 않았나이까?

    지금(今) 그런 까닭에 칭신(稱臣)과 봉표(奉表/표문을 올림)하여 번방(藩邦/속국)으로 삼아주시길 원(願)하나이다.

    세사(世事/세상일) 대국(大國)이라 함은, 역시(亦) 인정(人情)에서 나옵니다.

    신(臣)이 소위(所謂) 옳지 않은 군신(君臣)의 명예(名)를 구차하게 세우는 것은 

    천리(天理/천지자연의 이치)의 불용(不容/용납하지 않음)이나,

    신(臣)이 이미(既) 폐하(陛下)께 위궁(委躬/몸을 맡김)하였으니

    곧 그것은 폐하(陛下)의 명(命)에 승명(承命/명령을 받듦)하여 분주(奔走)하게 불가(不暇/겨를이 없음)함이 

    고당(固當/진실로 마땅함)하나

    감히(敢) 출성(出城)하지 못하는 이유(由)를 말하자면 

    곧 신(臣)의 정세(情勢)가 실로 전의 소진(所陳/진술한 바)과 같기 때문이옵나이다.

    이 일관(一款/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신(臣)은 죽음만 있을 뿐이옵니다.

    전왈(傳曰/전하여 말하길) <사람의 소욕(所欲/하고 싶어 하는 바)은 하늘이 필종(必從/반드시 따름)한다> 하였나이다.

    폐하(陛下)는 즉(即) 신(臣)의 하늘이나이다.

    어찌 곡사(曲賜/굽어살펴 돌봐줌)하여 감납(鑒納/살피어 거둬들임)하지 않으시겠나이까?

    또한 폐하(陛下)께옵서 이미 대죄(貸罪/죄를 용서함)함으로써 신(臣)을 허(許)하시었고,

    신(臣)은 이미 신(臣)으로써 폐하(陛下)께 예사(禮事/절하여 섬김)하였으니,

    곧 출성(出城)의 여부(與否)는 다만 그 소절(小節/대수롭지 않은 예절)일 뿐이옵니다.

    어찌 큰 것은 허(許)함이 있으시고, 그 작은 것은 불허(不許)하시나이까?

    이런 연고(故)로 신(臣)의 소망(所望)은 천병(天兵/황제국의 군사)이 퇴사(退舍/물러나서 머무름)하는 날을 기다려,

    성중(城中)에서 은칙(恩敕/은혜로운 황제의 칙서)에 친배(親拜/친히 절함)하고,

    설단(設壇/단을 설치함)하고 망배(望拜/멀리서 절함)하여 이로써 승여(乘輿/임금이 타는 수레)를 전송(送)하고자 함이고,

    곧 대신(大臣)을 사은사(謝恩使/대국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신)로 충원(充)하고 보내어,

    표문(表)으로써 소방(小邦)의 성심(誠心/참된 마음)과 감열(感悅/감격하여 기뻐함)의 정(情)이 이로부터 갈 것이옵니다.

    사대(事大)의 예(禮)가 실조(悉照/남김없이 비침)하고,

    상식(常式/상례로 되어 있는 규식)이 영세(永世/영원히)히 부절(不絕/끊이지 아니하고 계속됨)할 것이옵고,

    신(臣)은 바야흐로 성신(誠信/정성스럽고 참됨)으로써 폐하(陛下)를 섬길 것이옵니다.

    폐하(陛下) 역시(亦) 예의(禮義)로써 기다려 주신다면 소방(小邦) 군신(君臣) 간(間)에 

    각각(各) 그 도리(道)를 다하여 생민(生民)에게 이복(貽福/복을 전함)할 것이며,

    후세(後世)에는 곧 금일(今日) 소방(小邦)의 피병(被兵/병사에 의해 피해를 봄)은 

    실로(實) 자손(子孫)이 무강(無疆/끝이 없음)한 휴경(休慶/경사)이라 여길 것이라 견칭(見稱/칭찬을 받음)할 것이옵니다.

    패화(敗和/화친을 깨트림)의 제신(諸臣/여러 신하)의 일은 

    전서(前書/앞전의 서신)에 또한 이미(已) 약진(略陳/간략하게 진술함)하였나이다.

    대저(大抵) 이 무리가 감히(敢) 망언(妄言)으로 양국(兩國)의 대계(大計)를 괴(壞/무너뜨림)하였으니

    이는 비단(非但) 폐하(陛下)의 소악(所惡/미워하는 바)일 뿐만 아니라,

    실로(實) 소방(小邦) 군신(君臣)의 공분(共憤/한 가지로 분노함)이나이다.

    부월(鈇鉞)로 주살(誅)함을 어찌 고석(顧惜/중히 아낌)하겠나이까?

    단지(但) 상년(上年/지난해) 봄 간에 수창(首倡/제일 먼저 주창함)한 대간(臺諫) 홍익한(洪翼漢)은

    대군(大軍)이 국경(境)에 이른 때를 당하여 평양(平壤) 서윤(庶尹)으로 삼아 척(斥/내침)하였는데,

    그자는 스스로 병봉(兵鋒/선봉)을 담당하고 있으니, 만약(若) 군전(軍前)의 부획(俘獲/포로)가 되지 않았다면 

    즉 필히(必) 본토(本土) 반사(班師/군사를 이끌고 돌아옴)의 길에 있을 것이오니,

    박치(縛致/포박하여 끌고 옴)함은 어렵지 않나이다.

    그 다른 피척(被斥/내쫓김을 당함)하여 재외(在外/밖에 있음)한 자(者)들은 도로(道路)가 불통(不通)하여

    그 처소(處所)를 심(尋/찾음)함이 미이(未易/쉽지 않음)하나이다.

    이는 곧 이세(理勢/사리와 형세)가 그러하나이다.

    폐하(陛下)의 대도(大度/큰 도량)와 인서(仁恕/어질게 용서함)로써 생각건대 

    능히(能) 포용(包容)하시고 관유(寬宥/너그럽게 용서함)하신다면 

    필히(必) 사환(師還/회군)의 후(後)에 궁구(窮究/깊이 조사함)를 청(請)하여,

    그 사람들을 얻고 조사(查)하여 이로써 처분(處分)을 기다리고자 하나이다.

    삼가 모사(冒死/죽음을 무릅씀)하여 이문(以聞/임금께 아룀)하나이다.



이날(1637년 1월 24일)에 조선국왕 이종(인조)이 서신을 보내 아뢰어 말하길

<조선국왕 신 이종은 삼가 대청국 관온인성황제 폐하께 글을 올리나이다!

 신은 거짓 없는 속마음을 모두 다하여 진실되고 정성스러운 뜻을 담은 서신 한 장을 번민하여 진술하였으나,

 천박하고 미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가히 부끄럽고 가슴이 두근거려 만약 용서치 않으실까 두렵나이다.

 이에 군신의 명예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구차하게 단지 종사의 계책으로 삼아 세우고자 하나이다.

 용서치 않으시고 청하지 않는다면 비록 어리석음을 엄하게 꾸짖은들 신이 감히 피하겠나이까?

 삼가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미루어 헤아려 주시옵소서!

 소방은 해외의 약소국으로 중국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나 오로지 중국이 강하고 크니 이에 신하가 되었나이다.

 이렇게 이전에 요금원에 복종한 것이 이것이나이다.

 지금 폐하께서는 하늘의 은혜와 도움을 받아 대운을 크게 여시었고

 소방의 강토와 서로 닿아 복종하여 섬긴 지가 이미 오래되었나이다.

 원래 마땅히 가장 먼저 귀순하여 여러 나라와 함께 받들었어야 하였는데 

 그러나 지체한 까닭에 지금에 이른 것은 단지 세상사 명나라의 명분이 본디 정해졌었기 때문이옵니다.

 그 명나라에 대한 신하의 절개를 급히 변절하지 않고자 함 역시 정에서 나온 것이 당연하나이다.

 생각건대 이에 어리석고 버릇이 없어 일을 망령되이 행함이 많았나이다.

 지난해 봄 이후로 대국이 소방을 기다린 까닭에 호의가 쇠퇴하였고

 소방이 대국에 화를 얻은 까닭에 종종 하나가 되지 못하였으니,

 대군이 온 것은 실로 자초한 바이니 군신 상하가 매우 두려워하였고 오직 죽을 날만을 기다렸나이다.

 뜻밖에 황제의 덕은 하늘과 같아서 소방을 불쌍히 여기시어 본월 17일에 종사를 보전케 해 주신다는

 황제의 성지가 있어 말씀하시길

 <만약 너의 나라가 짐의 판도로 모두 들어온다면 짐이 길러 키우고 안전하게 갓난 아이와 같이 사랑함이 없겠느냐?>

 하였나이다.

 20일에 상께서 성지로 말씀하시길

 <짐은 큰 도량을 열어 이로써 네가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하는 것을 허락하노라>하셨으니,

  황제께옵서 은혜를 한번 베풀어 만물이 모두 봄이 되었고 이는 실로 죽은 사람을 살려 뼈에 살을 붙인 것이니

  동방의 사람 자자손손 모두 장차 폐하의 공덕을 칭송할 것이나이다.

  더군다나 신은 몸소 폐하의 재조지은을 받지 않았나이까?

  지금 그런 까닭에 칭신과 표문을 올려 번방(속국)으로 삼아주시길 원하나이다.

  세상일에 대국이라 함은 역시 인정에서 나옵니다.

  신이 소위 옳지 않은 군신의 명예를 구차하게 세우고자 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는 맞지 않습니다만,

  신이 이미 폐하께 몸을 맡기었으니 곧 그것은 폐하의 명을 받듦에 분주하게 겨를이 없어야 진실로 마땅하나

  감히 성을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곧 신의 정세가 실로 전에 진술한 바와 같기 때문이옵나이다.

  이 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신은 죽음만 있을 뿐이옵니다.

  전하여 말하길 <사람의 하고 싶어 하는 바는 하늘이 반드시 따른다> 하였나이다.

  폐하는 즉 신의 하늘이나이다.

  어찌 굽어살피시어 거둬들이지 않으시겠나이까?

  또한 폐하께옵서 이미 죄를 용서하시고 신을 허락하시었고

  신은 이미 신하로써 폐하께 예를 올려 섬기었으니

  곧 출성의 여부는 다만 그 작은 예절일 뿐이옵니다.

  어찌 큰 것은 허락하시고 그 작은 것은 불허하시나이까?

  이런 연고로 신의 소망은 천병(황제국의 군사)이 물러나는 날을 기다려

  성중에서 은혜로운 칙서에 친히 절하고 단을 설치하여 멀리서 절함으로써 황제께옵서 타신 수레를 전송코자 함이며,

  곧 대신을 사은사로 충원하여 보내어 표문을 바치고 

  소방은 참된 마음과 감격하여 기뻐하는 정을 이로부터 갈 것이옵니다.

  사대의 예가 남김없이 비칠 것이고 상례의 법식이 영원히 끊기질 않고 계속될 것이오니

  신은 바야흐로 정성스럽고 참된 마음으로 폐하를 섬길 것이옵니다.

  폐하 또한 예의로써 기다려 주신다면 소방 군신은 각각 그 도리를 다하여 백성들에게 폐하의 복을 전할 것이오며

  후세에는 곧 금일 소방이 대국 군사의 침입을 받은 것은 실로 자손의 끝이 없는 경사라 여길 것이옵니다.

  화친을 깨트린 여러 신하의 일은 앞전의 서신에 이미 간략하게 진술하였나이다.

  대저 이 무리가 감히 망언으로 양국의 대계를 무너뜨린 것은

  이는 비단 폐하께옵서 미워하는 바일뿐만 아니라 실로 소방 군신들 또한 공분하오니,

  부월로 죽이는 것을 어찌 아끼겠나이까?

  단지 지난해 봄 간에 척화를 제일 먼저 주창한 대간 홍익한은 대군이 국경에 이른 때를 당하여

  평양 서윤으로 삼아 내쳤는데 그자는 스스로 군대의 선봉을 담당하고 있으니

  만약 대국 군문에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면 곧 필히 본토의 회군로에 있을 것이오니

  포박하여 끌고 오는 일은 어렵지 않나이다.

  그 밖에 내쫓김을 당하여 밖에 있는 자들은 도로가 통하지 않아 그 처소를 찾는 것이 쉽지 않나이다.

  이는 곧 사리와 형세가 그러하나이다.

  폐하의 큰 도량과 어질게 용서함을 생각하건대 능히 포용하시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신다면

  반드시 대군이 회군한 이후에 모조리 잡아들여 조사하고 이로써 처분을 기다리고자 하나이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황제께 아뢰나이다.



요약.

1637년 1월 24일 청 태종 홍 타이지는 인조에게 칙서를 보내 강화도 함락 사실을 통보한다.

홍 타이지는 성을 나와 투항하지 않는다면 강화도에서 잡힌 왕실과 신하들의 식솔에 대한

안위를 장담하지 못하겠다 경고한다.

이에 남한산성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들었고 어떻게든 인조의 출성을 막아보려 노력한다.

이미 청에서 요구한 척화대신 박송에 관한 일은 22일에 결정되었는데

최명길은 인척이기도 한 척화파 대신 홍익한의 박송을 주장하였고 인조는 척화파들에게 자수하라는 명을 내린다.

또한 성내 수원의 장수들 또한 척화파 출성을 인조에게 요청한다.

이에 김상헌, 윤황, 윤무거, 윤집, 오달제, 정온, 이명웅 등은 서로 자신이 나가서 죽음을 맞겠다고 자청한다.

또한 소현세자마저 자신에게는 아들과 동생이 있으니 출성하겠다고 말하였으나 인조는 불허하였다.

결국 24일 인조의 출성은 어떻게든 피하고 박송 대신의 일은 홍익한으로 마무리하고자

간절하고 비굴한 서신을 써서 홍 타이지에게 바치게 된다.

서신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조의 출성은 불가하다.

   이유는 조선의 풍습에 왕이 성을 나가 굽히는 모습을 보면 왕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2. 홍 타이지의 칭제/추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명과의 의리 때문이다.

   명을 배신하는 것은 백성들이 용납하지 못한다.


3. 작년 봄 이후 조선이 크게 잘못한 것은 인정한다.

   (후금 8대신+몽고 부족장들의 합동 추존 거부)

   (잉월다이, 마푸타 사신 홀대)

   (적대 교지 반포)


4. 이미 신하가 되었으니 홍 타이지는 인조의 하늘이다.

   하늘답게 너그럽게 용서해 다오!


5. 출성 대신 청군이 회군하는 날 성 위에서 큰절하겠다!


6. 재조지은을 베푼다면 영원히 신하의 도리를 다하겠다.


7. 척화파 박송은 우리도 찬성한다.

   그러나 척화파 수장 홍익한은 평양으로 내쳤는데 청군에 잡혀있거나 조선 군중에 있을 것이다. 곧 잡아서 보내겠다.

   나머지 척화파 잔당들은 이미 쫓겨나서 어디 있는지 모른다.

   후에 잡아들여 처분을 기다리겠다.


-17부에서 계속-


덧글

  • 외세결탁 신라와 한국 2018/10/13 04:08 #

    도대체 외교를 어떻게 했길래 저런 꼴이 되었는지...
    이씨 지배도적들의 망신도 망신이지만 백성들이 큰 고통을 겪었죠.
    지금도 주제넘게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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