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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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8일

○戊辰。朝鮮國王李倧又以書來奏曰小邦昔年曾有一等浮議壞事。臣摘其中尤甚者若干人並加斥黜。而首倡臺諫一人。

當天兵到境時。命為平壤庶尹。督令即日前進。或為前軍所獲。或從間道赴任。俱未得知。今在城中者。

雖或有雷同和附之罪。較前被斥者。則輕重相懸。伏見前日詔旨。實出恩恤小邦之至意臣若終始持難。則恐

陛下未察本國之事。疑臣有所容隱。臣誠心向順之意。將無以自白故察得弘文館校理尹集。

修撰吳達濟二人。送詣軍前。以竢處分。謹昧死以聞

○무진일(戊辰)에,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이 또 서신(書)으로써 와서 주(奏/아룀)하여 말하길

  <소방(小邦)이 석년(昔年/왕년)에 거듭 부의(浮議/근거 없는 들뜬 논의)로 

   괴사(壞事/일을 무너뜨림)하는 일등(一等/한 무리)가 있어,

   신(臣)은 그 중(中)에 우심(尤甚/매우 심함)한 자(者) 약간인(若干人/몇몇 사람)을 적발(摘)하여,

   모두 척출(斥黜/벼슬을 떼어서 내쫓음)을 가(加)하였고,

   수창(首倡/맨 먼저 주창함)한 대간(臺諫) 1인은 천병(天兵/황제의 군사)이 도경(到境/국경에 이름)한 때를 당(當)하여,

   명(命)하여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삼았고, 즉일(即日/당일)에 전진(前進)하도록 독령(督令/영을 내려 독촉함)하였는데,

   혹(或) 전군(前軍)이 소획(所獲/포로로 잡힘)하였는지, 혹(或) 간도(間道/샛길)을 종(從/따름)하여 부임(赴任)하였는지,

   모두 알지 못하나이다.

   지금(今) 성중(城中)에 있는 자(者)들은 비록 혹(或) 뇌동화부(雷同和附/부화뇌동, 번개 소리에 맞춰 움직임)의 죄(罪)가 

   있지마는,

   전(前)의 피척(被斥/내침을 당함)한 자(者)와 비교(較)하면,

   곧 경중(輕重/가벼움과 무거움)이 상현(相懸/서로 현격함)하나이다.

   엎드려 전일(前日)의 조지(詔旨)를 보아하니, 

   실로(實) 소방(小邦)을 은휼(恩恤/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풂)하시는 지의(至意/지극한 마음)에서 나왔으니,

   신(臣)이 만약(若) 종시(終始/처음부터 끝까지) 지난(持難/질질 끌며 미루기만 함)하기만 한다면,

   곧 폐하(陛下)께옵서 본국(本國)의 사정(事)을 미찰(未察/살피지 아니 함)하시고,

   신(臣)이 용은(容隱/속내를 숨김)하는 바가 있다 의심(疑)하시어

   신(臣)이 성심(誠心/참된 마음)으로 향순(向順/귀순)할 의(意/뜻)가 

   장차(將) 무이자백(無以自白/스스로 변명하고자 하나 되지 않음)할까 공(恐/두려움)하나이다.

   이런 연고(故)로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윤집(尹集), 수찬(修撰) 오달제(吳達濟) 

   두 사람을 찰득(察得/조사하여 얻음)하였고,

   송(送/보냄)하여 군전(軍前)에 예(詣/출두함)하였으니 이로써 처분(處分)을 사(竢/기다림)하나이다.

   삼가 매사(昧死/죽기를 무릅씀)하여 이문(以聞/임금께 아룀)하나이다.>


○1637년 1월 28일에 조선국왕 이종이 또 서신을 보내와 아뢰어 말하길

  <소방이 예전에 거듭 들뜬 논의로 일을 무너뜨리는 한 무리가 있어

   신은 그중에 매우 심한 자 몇몇 사람을 적발하여 모두 벼슬을 떼어 내쫓았고

   맨 먼저 주창한 대간 1인은 황제의 군사가 국경에 이른 때를 당하여

   명을 내려 평양서윤으로 삼아 당일에 나아가도록 영을 내려 독촉하였습니다.

   혹 폐하의 선봉군에 포로로 잡혔는지 혹 샛길을 따라 부임하였는지 모두 알지 못하나이다.

   지금 성중에 있는 자들은 비록 혹 부화뇌동한 죄가 있지마는 전에 내침을 당한 자들과 비교하면

   곧 죄의 경중이 서로 현격하나이다.

   엎드려 전일의 조서를 보아하니 실로 소방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푸시는 지극한 마음에서 나왔으니

   신이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질질 끌며 미루기만 한다면

   곧 폐하께옵서 본국의 사정을 살피시지 아니할 것이고, 신이 속내를 숨기는 바가 있다 의심하시어

   신이 성심으로 귀순할 뜻이 장차 변명하고자 하나 되지 않을까 두렵나이다.

   이런 연고로 홍문관 교리 윤집, 수찬 오달제 두 사람을 조사하여 군전에 보내 출두하게 하였으니

   이로써 처분을 기다리나이다.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폐하께 아뢰나이다.>


요약.

1637년 1월 27일 인조는 출성을 결심하고 홍 타이지에게 서신을 보내 안위를 보장해 달라 간청한다.

한편 28일 마침내 척화대신을 보내라는 홍 타이지의 협박에 

인조는 평양 부서윤 홍익한, 교리 윤집, 수찬 오달제 즉 삼학사를 청에 통보하고

남한산성에 있던 윤집과 오달제를 포박하여 청군에 보낸다.

이때 인조는 윤집과 오달제를 면담하고 서럽게 울었다.

윤집과 오달제는 모두 자청하여 나갔는데 당시 나이가 갓 30을 넘은 젊은 선비들이었다.

이로써 청이 요구한 인조의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을 조선이 따르자 청은 인조의 출성 날짜를 통보해주겠다 말한다.


-19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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