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배구고두례(삼전도 투항의식) 병자호란 이야기

흔히 삼전도의 치욕이라 불리는 인조가 청 태종 홍 타이지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던 

삼배구고두례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요근래 영상매체에서 간간이 다루는 삼전도의 3배 9고두례는

청 태종이 인조를 모욕하거나 치욕스럽게 하려 했다는 식으로 묘사가 되었는데요.

심지어는 인조가 땅에 머리를 처박고 피를 철철 흘리는 묘사도 하더군요.

실상 3배 9고두례는 그냥 후금과 청의 일상적인 예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머리를 처박고 피를 철철 흘린다면 이는 홍 타이지를 모욕하는 중대 실례가 되어

아마 홍 타이지의 역린을 건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전에도 누르하치는 예허를 멸망시킬 때 고두례 의식에서

제대로 고두하지 않은 부양워를 목졸라 죽인 예도 있었습니다.


만주어 만문노당 256부-누르하치<건방진 놈들!> https://cafe.naver.com/booheong/152950


삼전도의 경우를 살펴보면 투항 의식임에도 홍 타이지는 인조를 배려하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였습니다.


첫째 인조가 출성하는 날 투항 의식인 몸을 포박하거나 관을 끌고 오는 예법을 일체 삭제하였습니다.

둘째 홍 타이지는 인조의 위차를 묻는 예부관의 물음에 군사력에 밀려 여기까지 왔으나

일국의 왕이라며 모든 청과 몽고의 친왕, 군왕, 버이러의 상석에 앉게 하였습니다.

셋째 홍 타이지가 인조에게 선물한 화려한 안장을 얹은 백마와 검은 담비 가죽옷은 

미리 홍 타이지가 인조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는데

조선에 와보니 옷 입는 풍습이 확연히 달랐고 이에 담비 가죽 옷은 인조를 배려해 안 입어도 된다고 말까지 하였지요.

넷째로 홍 타이지는 인조를 알현하기 전에 예법을 평상시와 같이 하라 명하였습니다.

다섯째 삼전도 대연회 때 술상의 안주는 예법에 맞춰 차려졌으나 홍 타이지의 특명에 의해 인조도

홍 타이지와 똑같은 술상의 안주를 받았지요.


여하튼 홍 타이지의 눈으로 보자면 삼전도의 의식은 평범한 접견 의식 내지 속국의 투항 의식 정도로 여겼지 

당시 신분이 고귀한 이들은 명예를 지극히 중히 여겼기 때문에 적국 왕실을 능멸하거나 모욕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 누르하치나 홍 타이지가 적대국 수장을 대놓고 능멸하거나 모욕한 예를 저는 찾지 못하였습니다.


삼전도의 치욕은 조선의 입장에서 왕이 천한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는데 왕은 무력하여 이들을 구제하지 못한 것들이 종합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후금과 청의 선조격인 금나라의 경우만 해도 북송을 멸하고 황제들과 황족들을 모조리 잡아가

견양례 등 모욕을 주고 나라를 멸망시킨 정강의 치도 벌인 종족이었지요.


송 황실 여인들의 웃통을 드러나게 한 비극의 견양례(牽羊禮) https://cafe.naver.com/booheong/140658


조선의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역사적 수치이나 홍 타이지의 눈으로 보자면 

관대하게 조선왕과 조선을 살려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홍 타이지는 인조에게 <재조지은>을 언급하기도 하였지요.

물론 인조입장에서는 만력제의 <재조지은>과 비교해서 아마 속에서 천불이 났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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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삼배구고두례 형식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삼배구고두례

: 말그대로 3번 무릎을 꿇고 9번 절하는 예법입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1번 무릎 꿇고 3번 절하는데 이걸 3번 반복하면 삼배구고두례가 됩니다.



만주어로는 헝킬엄비(hengkilembi/고두하다)이며 구체적으로는

일안 저르기 냐쿼라피 우윤 저르기 헝킬엄비

(ilan jergi niyakvrafi uyun jergi hengkilembi / 3번 무릎꿇고 9번 고두한다)


홍 타이지 당시 3배 9고두례 기록은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4부-청태종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다! https://cafe.naver.com/booheong/155910


참고하시고요.


우선 소리치는 관리(훨아라 하판/hvlara hafan)가 큰 소리로 선창하여 예식을 주도합니다.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훨아라 하판 <정렬하라!/파이다!/faida!> → 자리를 잡고 배열한다.

2. 훨아라 하판 <무릎 꿇어라!/냐쿼라!/niyakvra!> → 무릎을 꿇는다.

3. 훨아라 하판 <고두하라!/헝킬어!/hengkile!> → 양손을 땅에 대고 이마를 땅에 닿을 듯 머리를 3번 조아린다.

4. 훨아라 하판 <일어서라!/일이!/ili!> → 일어선다.

5. 훨아라 하판 <고두하라!/헝킬어!/hengkile!> → 2번째 고두를 시행하여 3번 머리를 조아린다.

6. 훨아라 하판 <일어서라!/일이!/ili!> → 일어선다.

7. 훨아라 하판 <고두하라!/헝킬어!/hengkile!> → 3번째 고두를 시행하여 3번 머리를 조아린다.

8. 훨아라 하판 <일어서라!/일이!/ili!> → 일어선다.


<파이다! 냐쿼라! 헝킬어! 일이!>

<정렬하라! 무릎꿇어라! 고두하라!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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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는 대상이 한(황제)에게만 한정되어 있진 않습니다.

누르하치도 3배9고두례를 행하였지요.

그 대상은 후금 건국 전에는 명나라 황제의 조서에 행하였고

집안의 어른 및 조상신을 모시는 당자(탕서)에도 행하였습니다.

물론 제천행사시나, 상서로운 기상 현상을 발견하였을 때에 하늘에 고두하였지요.

누르하치는 생전 후계자 발언 등을 통해 자신의 후계자 다음 한은 설날 등의 명절에

집안의 어른 및 형님에게 고두례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누르하치의 중요한 후계자 발언 번역 https://cafe.naver.com/booheong/140302


고두(머리를 조아리고 절함) 규칙

1. 설날 아침에 한은 당자와 신에게 고두하라!

2. 한은 스스로 숙부와 형들에게 먼저 고두하고 옥좌에 머물라!

3. 한과 한의 고두를 받은 숙부, 형들은 모두 한 곳에 머물러 8왕과 신하들의 고두를 받아라!


이에 홍 타이지가 즉위한 이후 설날에 집안 어른들에게 고두하고

이복 형인 암바 버이러(대패륵) 다이샨에게 고두하려 하였으나

다이샨은 이를 거부하였고 홍 타이지와 동석에 앉아 황족들과 신하들의 고두례를 같이 받은 적이 있습니다.


즉 누르하치에게 3배9고두례의 대상은 하늘, 집안의 어른, 당자에 한정되었고

누르하치에게 투항하거나 접견하는 외부 부족장은 예외 없이 3배9고두례를 행하여야 했습니다.

물론 명절 등에는 황족을 비롯한 모든 제장은 누르하치에게 3배9고두례를 행하여야 하지요.



결론. 

삼전도에서 인조가 홍 타이지에게 3배 9고두를 한 것은 

홍 타이지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접견 의식 정도이며 인조를 모욕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P.S1) 병자호란 전 조선에 사신으로 온 잉월다이(용골대)나 마푸타(마부대)도 인조에게 3배 3고두를 행하였습니다.

인조가 장관에 불과한 용골대와 맞절하다(병자호란 전후 예법 비교) https://cafe.naver.com/booheong/158953


*P.S2) 삼전도 당시 인조가 삼전도에 도착하자마자 홍 타이지에게 3배 9고두를 한 것은 아닙니다.

        인조가 오자 먼저 홍 타이지가 단 안에서 문무 제장들과 하늘에 3배 9고두를 시행하였고

        단 밖에서 인조 일행도 홍 타이지를 따라 하늘에 3배 9고두를 시행하였습니다.

        이후 홍 타이지가 단 중앙에 정좌하고 인조가 3배 9고두를 시행하였지요.


*P.S3) 태종 이방원도 명나라 5절 3숙을 거부한 적이 있긴 합니다.

태종 이방원<감히 나보고 5절3숙 하라고???> https://cafe.naver.com/booheong/106754


*P.S4) 임란 당시 조선 신충일도 누르하치에게 5절 3숙을 행하였습니다.

임란 중 여진방문기 6부-누르하치에게 오배삼고두를 행하다 https://cafe.naver.com/booheong/105941


P.S5) 금대 여진족의 인사 방법

여진족의 오랑캐 인사법(호궤) https://cafe.naver.com/booheong/105023



덧글

  • 외세결탁 신라와 한국 2018/10/19 17:44 #

    2년 뒤에 이방원은 황엄에게 무릎을 꿇죠.

    1408 조선왕조실록
    임금(태종 이방원)이 황제(영락제)의 서신에 절하고 나서 서쪽 섬돌로 올라가 사신 앞에 꿇어앉았다. 황엄이 황제의 뜻을 전하기를, "네가 조선국에 가서 국왕에게 말하여 잘 생긴 여자가 있으면 몇 명을 간택해 데리고 오라." 하였다. 임금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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