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청실록 21부-삼전도(2) 병자호란 이야기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

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

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


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

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음거리다!

3부-소국의 왕이 대국의 황제에게 간곡히 청하나이다.

4부-한족 3왕의 화포부대 도

5부-조선의 반격 광교산 전투와 양고리 전사!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7부-도르곤 김자점을 추격하다!(홍이포 도착)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9부-선봉대는 돌아가 배를 만들라! 강화도를 먼저 칠 것이노라!

10부-<조선왕 너는 입만 살았다!>조목조목 반박하는 청태종

11부-<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제는 용서하소서!>김상헌이 찢은 그 국서

12부-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을 나와라! 척화대신 3~4명은 반드시 죽이겠노라!

13부-칭신하다! 그러나 국왕 출성과 척화대신 박송은 거부하다.

14부-강화도 함락!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19부-조선은 청의 영원한 속국이 될 것이니라!

20부-삼전도(1)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1부~65부 http://cafe.naver.com/booheong/158623


청실록 원본 출처 : http://sillok.history.go.kr/mc/main.do


사전 보고 번역하는 것이라, 오역이 많습니다.
수정할 부분 알려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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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30일

上離座。率李倧及其諸子文武群臣。拜

天。行三跪九叩頭禮畢。

上還座李倧率群臣伏地請罪求我國諸臣代奏於

上曰。

皇帝天心赦臣萬罪生已死之身。存已亡之國俾得重立宗社緣臣罪過多端故加之罰今臣服罪。來謁

皇上。自茲以後。改過自新世世子孫不忘厚澤。於是我國諸臣以其言轉奏。

上諭曰。朝鮮國王。既知罪來降朕豈有念舊惡苛責之理今後一心盡忠不忘恩德可也。前事毋再言及。

李倧及其群臣。聞言大悅曰。

皇上萬歲恩德小邦不勝頂戴於是令李倧朝見。禮臣贊禮李倧在前。諸子。及群臣。

以次列於後行三跪九叩頭禮畢復位禮部官引至儀仗下立奏請李倧班次

上諭曰以威懾之不如以德懷之朝鮮王雖迫於兵勢來歸亦一國之王也命近前坐於左側禮部官從儀仗外引王

由北向入至壇下東坐西向其次左側則和碩親王多羅郡王多羅貝勒等依次坐李倧長子李汪坐於貝勒之下右側和碩親王多羅郡王。

多羅貝勒等依次坐李倧次子李淏三子李㴭亦坐於貝勒之下坐定大宴畢江華島所獲李倧妻子子婦及群臣妻子俱行三跪九叩頭禮

上命盡還李倧妻子子婦及。群臣家屬賜李倧黑貂袍套雕鞍馬賜王妃及第三子李㴭黑貂皮套大臣金

各賞貂皮套李倧率眾謝恩行兩跪六叩頭禮畢令李倧及群臣各與其妻子子婦相見皆相抱慟哭曰稍緩數日我等皆為灰燼矣今日幸遇

皇帝寬恩普天均被我等方得完聚因哀痛弗止。英俄爾岱、馬福塔等勸止之。

上命英俄爾岱馬福塔、送李倧妃、及其第三子、並家口七十六人。群臣妻子家口百六十六名。入王京城。

惟留長子汪、次子淏、為質。

上於申刻。還營

상(上)이 이좌(離座/자리를 떠남)하고, 이종(李倧)과 더불어 그 제자(諸子/여러 아들) 및 

문무(文武) 군신(群臣/뭇 신하)를 인솔(率)하여 배천(拜天/하늘에 절함)하였고,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의 행(行)함을 마쳤다.

상(上)이 환좌(還座/자리로 돌아옴)하자 이종(李倧)은 군신(群臣/뭇 신하)를 인솔(率)하여,

복지(伏地/땅에 엎드림)하고 청죄(請罪/죄를 청함)하여

아국(我國) 제신(諸臣/여러 신하)이 상(上)에게 대표(代奏/대신 아룀)해주길 구(求)하였는데 말하길

   <황제(皇帝)는 천심(天心)으로 신(臣)의 만죄(萬罪)를 사(赦)하시어,

    이미(已) 죽은 몸을 살리셨고, 이미(已) 망한(亡) 나라를 보존(存)하시었으며,

    더하여 종사(宗社)의 연(緣/연줄)을 중립(重立/거듭하여 세움)함을 득(得)하였나이다.

    신(臣)의 죄과(罪過/죄와 과오)가 다단(多端/실마리가 많음)하여,

    이런 연고(故)로 죄(罰)를 가(加)하시고자 지금(今) 신(臣)이 복죄(服罪/죄를 인정함)하고,

    황상(皇上)을 내알(來謁/와서 알현함)하오니, 

    이 이후(以後)로부터는 개과(改過/잘못을 고침)하고 자신(自新/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함)하여,

    세세자손(世世子孫)은 후택(厚澤/후한 은혜)을 불망(不忘/잊지 아니 함)하겠나이다.>

이에 아국(我國)의 제신(諸臣/여러 신하)가 그 말로써 전주(轉奏/전하여 아룀)하였다.

상(上)이 유지(諭)하여 말하길

   <조선국왕(朝鮮國王)이 이미(既) 지죄(知罪/자기가 지은 죄를 앎)하여 내항(來降/투항하여 옴)하였으니,

    짐(朕)이 어찌 구악(舊惡/예전의 죄악)을 유념(有念/생각함이 있음)하여 

    가책(苛責/모질게 꾸짖음)하여 리(理/다스림)하겠느냐?

    금후(今後/지금 이후)로는 일심(一心)으로 진충(盡忠/충성을 다함)하고 

    은덕(恩德)을 불망(不忘/잊지 아니 함)함이 옳을 것이노라!

    전사(前事/앞전의 일)은 재언(再言/다시 말함)하지 말라!>

이종(李倧)과 더불어 그 군신(群臣/뭇 신하)이 문언(聞言/말을 들음)함에 이르러 대열(大悅/크게 기뻐함)하여 말하길

   <황상(皇上)의 만세은덕(萬歲恩德)은 소방(小邦)이 정대(頂戴/머리에 올려놈, 경의를 나타냄)함을 

    불승(不勝/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억눌러 참아 내지 못 함)하나이다.>

이에 이종(李倧)으로 하여금 조현(朝見/배알함)하고 예신(禮臣/신하의 예법)으로 찬례(贊禮/예식에 참가함)하게 하였다.

이종(李倧)이 재전(在前/앞에 있음)하고 제자(諸子/여러 아들)와 더불어 군신(群臣/뭇 신하)가

차례(次列)로써 뒤에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행(行)함을 마치자 복위(復位/제 자리에 돌아옴)하였다.

예부관(禮部官)이 인도(引)하여 의장(儀仗) 아래에 이르러 서있도록 하고,

이종(李倧)의 반차(班次/품계)를 주청(奏請/청하여 아룀)하였다.

상(上)이 유지(諭)를 내려 말하길

   <위엄(威)으로써 섭지(懾之/두렵게 함)함은 덕(德)으로써 품지(懷之/따르게 함)함만 못하니,

    조선왕(朝鮮王)이 비록 병세(兵勢)에 박(迫/몰림)하여 내귀(來歸/귀부하여 옴)하였으나,

    역시(亦) 일국(一國)의 왕(王)이로다!>

명(命)하여 가까운 좌측 앞자리에 앉게 하였다.

예부관(禮部官)이 의장(儀仗) 외(外)를 따라 왕(王)을 인도(引)하여 

북향(北向/북쪽 방향)을 경유(由)하여 들어가 단(壇) 아래에 이르러 동(東)쪽에 앉아 서(西)쪽을 향(向)하였다.

그 다음 좌측(左側)은 곧 화석친왕(和碩親王), 다라군왕(多羅郡王), 다라패륵(多羅貝勒) 등(等)이었고,

의차(依次/차례대로) 이종(李倧)의 장자(長子) 이왕(李汪)이 좌(坐/앉음)하여 패륵(貝勒)의 아래에 앉았다.

우측(右側)은 화석친왕(和碩親王), 다라군왕(多羅郡王), 다라패륵(多羅貝勒) 등(等)이었고,

의차(依次/차례대로) 이종(李倧)의 차자(次子) 이호(李淏), 삼자(三子) 이요(李㴭)가 좌(坐/앉음)하였는데,

역시(亦) 패륵(貝勒)의 아래에 좌(坐/앉음)하였다.

좌정(坐定/자리 잡아 앉음)하고 대연(大宴)이 필(畢/마침)하자,

강화도(江華島)의 소획(所獲)한 이종(李倧)의 처자(妻子), 자부(子婦/며느리)와 더불어 

군신(群臣/뭇 신하)의 처자(妻子)가 모두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행(行)하였다.

상(上)이 명(命)하여 이종(李倧)의 처자(妻子)와 자부(子婦/며느리)와 더불어 

군신(群臣/뭇 신하)의 가속(家屬)을 진환(盡還/모두 돌려보냄)하게 하였고,

이종(李倧)에게 흑초(黑貂/검은 담비) 도포(袍)와 투투(套雕/덮개를 씌움)한 안마(鞍馬/안장을 얹은 말)를 하사(賜)하였고,

왕비(王妃)와 더불어 제(第) 삼자(三子) 이요(李㴭)에게 흑초(黑貂/검은 담비) 피투(皮套/가죽을 씌운 옷)를 하사(賜)하였다.

대신(大臣) 김류() 등(等)에게는 각각(各) 초피투(貂皮套/담비 가죽을 씌운 옷)을 포상(賞)하였다.

이종(李倧)이 솔중(率眾/무리를 인솔함)하여 사은(謝恩/은혜에 감사함)하고 양궤육고두례(兩跪六叩頭)를 행(行)하였다.

예필(禮畢/예를 마침)하자 이종(李倧)과 더불어 군신(群臣/뭇 신하)으로 하여금

각각(各) 그 처자(妻子)와 자부(子婦/며느리)와 함께 상견(相見/서로 만나 봄)하자,

모두 상포(相抱/서로 안음)하고 통곡(慟哭)하여 말하길

   <자못 수일(數日)만 완(緩/늦음)하였어도 아등(我等/우리들)은 모두 회신(灰燼/잿더미)이 되었을 것이다!

    금일(今日) 다행(幸)으로 황제(皇帝)의 관은(寬恩/관대한 은혜)이 보천(普天/넓은 하늘, 온 세상)에 

    균피(均被/골고루 미침)함을 우(遇/만남)하여, 아등(我等/우리들)은 바야흐로 완취(完聚/한자리에 모임)를 득(得)하였다.>

이로 인(因)하여 애통(哀痛)이 불지(弗止/그치지 않음)하자, 영아이대(英俄爾岱)와 마복탑(馬福塔) 등(等)이 권(勸)하여 

지(止/그침)하게 하였다.

상(上)이 명(命)하여 영아이대(英俄爾岱)와 마복탑(馬福塔)은 이종(李倧)의 비(妃)와 더불어

그 제(第) 삼자(三子)와 아울러 가구(家口/집안 식구) 76인과 군신(群臣/뭇 신하)의 처자(妻子)와 

가구(家口) 166명을 송(送/보냄)하여 왕경성(王京城/한양)에 들어가게 하였다.

오직 장자(長子) 이왕(汪)와 차자(次子) 이호(淏)를 남겨 인질(質)로 삼았다.

상(上)이 신각(申刻/15~17시)에 환영(還營/영으로 돌아옴)하였다.


상(태종 홍 타이지)이 자리를 떠나 이종과 더불어 그 여러 아들 및 문무의 뭇 신하를 인솔하여 하늘에 

삼궤구고두례(3번 무릎 꿇고 9번 절하는 청 고유 예절)를 행하였다.

끝나자 상이 자리로 돌아왔는데 이종이 뭇 신하를 인솔하여 땅에 엎드려 죄를 청하며

아국(청나라)의 여러 신하에게 상께 대신 아뢰어 주길 구하며 말하길

   <황제께옵서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신의 만가지 죄를 사하시고

    이미 죽은 몸을 살리셨고 이미 망한 나라를 보존하시었으며 더하여 종사의 연줄을 거듭하여 세워주셨나이다.

    신의 죄와 과오가 실마리가 많아 이런 연고로 죄를 받고자 지금 신이 죄를 인정하고 황상께 와서 알현하오니

    이 이후로부터는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행동하여 대대손손 후한 은혜를 잊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아국(청)의 여러 신하가 그 말을 전하여 아뢰었다.

상이 유지를 내려 말하길

   <조선국왕이 이미 지은 죄를 알고 투항하여 왔으니 짐이 어찌 예전의 죄악을 생각하여 모질게 꾸짖어 다스리겠느냐?

    지금 이후로는 한마음으로 충성을 다하고 은덕을 잊지 아니 함이 옳을 것이노라!

    앞전의 일은 다시 말하지 말라!>

이종과 더불어 그 신하들이 말을 듣고는 크게 기뻐하여 말하길

   <황상의 만세은덕은 소방이 머리에 이는 것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이에 이종으로 하여금 배알하게 하고 신하의 예법으로 예식에 참가하게 하였다.

이종이 앞에 있고 여러 아들과 더불어 뭇 신하들이 차례로 뒤에서 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예부관이 인도하여 의장 아래에 이르러 서있도록 하고 이종의 반차(품계)를 청하여 아뢰었다.

상이 유지를 내려 말하길

   <위엄으로써 두렵게 함은 덕으로써 따르게 함만 못하니 조선왕이 비록 병세에 몰려 귀부하여 왔으나 역시 일국의 왕이로다!>

명하여 가까운 좌측 앞자리에 앉게 하였다.

예부관이 의장대 밖을 따라 왕을 인도하여 북쪽 방향을 경유하여 들어가 단 아래에 이르러 동쪽에 앉아 서쪽을 향하게 하였다.

그다음 좌측은 곧 화석친왕(호쇼이 친왕), 다라군왕(도로이 군왕), 다라패륵(도로이 버이러) 등이었고,

차례대로 이종의 장자 이왕(소현세자)이 앉았는데 패륵(버이러)의 아래에 앉았다.

우측은 화석친왕, 다라군왕, 다라패륵 등이었고 차례대로 이종의 2남 이호(봉림대군), 3남 이요(인평대군)가 앉았는데 

역시 패륵의 아래에 앉았다.

좌석이 정해지고 대연회가 끝나자 강화도에서 사로잡은 이종의 처자, 며느리와 더불어 뭇 신하들의 처자가 

모두 삼궤구고두례를 행하였다.

상이 명하여 이종의 처자, 며느리와 더불어 뭇 신하의 가속을 모두 돌려보내게 하였고

이종에게 검은 담비 도포와 덮개를 씌우고 안장을 얹은 말을 하사하였고

왕비와 더불어 3남 이요에게는 검은 담비 가죽을 씌운 옷을 하사하였다.

대신 김류 등에게는 각각 담비 가죽을 씌운 옷을 포상하였다.

이종이 무리를 인솔하여 은혜에 사례하고 양궤육고두례(2번 무릎 꿇고 6번 고두함)를 행하였다.

예를 마치자 이종과 더불어 뭇 신하들로 하여금 각각 그 처자, 며느리와 함께 서로 만나 보게 하자 

모두 끌어안고 통곡하며 말하길

   <자못 수일만 늦었어도 우리들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금일 다행으로 황제의 관대한 은혜가 온 세상에 골고루 미침을 만나 우리들이 바야흐로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애통이 그치지 않자 영아이대(잉월다이, 용골대)와 마복탑(마푸타) 등이 권하여 그치게 하였다.

상이 명하여 영아이대와 마복탑은 이종의 비와 더불어 그 3자와 아울러 집안 식구(조선 왕족) 76인과

뭇 신하의 처자와 그 가족 166명을 보내 왕경성(한양)에 들어가게 하였다.

오직 장자와 차남 이호를 남겨 인질로 삼았다.

상이 15~17시에 영으로 돌아왔다.


*삼배구고두례 :

 후금과 청의 고유 예법으로 3번 무릎을 꿇고 9번 절하는 예법이다.


삼배구고두례(삼전도 투항의식) https://cafe.naver.com/booheong/167934


요약.

1637년 1월 30일 오전 삼전도에 도착한 인조를 용골대(잉월다이)와 마복탑(마푸타)이 영접한다.

인조가 용골대에게 감사를 표하자 용골대는 이제부터 한 집안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용골대가 단 안으로 들어가 홍 타이지를 알현했고 홍 타이지는 인조가 용단을 내려온 것이 매우 다행스럽고 기쁘다 말한다.

용골대가 다시 밖으로 나와 인조에게 홍 타이지의 말을 전하자 인조는 천은이 망극하다 말한다.

홍 타이지는 친히 제장들을 이끌고 훨아라 하판(소리치는 관리)의 선창하에 하늘에 3배 9고두례를 행하였고,

단 밖에 있던 인조를 비롯한 소현세자, 봉림대군 및 조선 신하들도 모두 하늘을 향해 3배 9고두례를 행한다.

제천 고두례가 끝나자 용골대는 인조 일행을 단 아래 북쪽으로 데려갔다.

인조는 용골대를 통해 홍 타이지에게 자신의 만가지 죄를 용서하고 종묘를 보존케 해주니 

대대손손 후은을 잊지 않겠다고 전해달라 말한다.

홍 타이지는 전일은 모두 용서하고 불문에 부칠 테니 앞으로 한마음으로 충성하라 말한다.

인조 일행은 크게 기뻐하고 이곳에서 단 중앙에 앉은 홍 타이지를 향해 역시 훨아라 하판의 선창하에 3배 9고두례를 행한다.

예부관이 인조의 위차에 대해 홍 타이지에게 묻자, 홍 타이지는 조선왕이 비록 군세에 몰려 항복해 왔으나

일국의 왕이라며 모든 청나라 친왕, 군왕, 버이러의 상석에 위치하게 한다.

인조의 자리는 홍 타이지의 좌측(동쪽) 맨 앞자리에 위치하였고

그다음에 화석친왕(호쇼이 친왕), 다라군왕(도로이 군왕), 다라패륵(도로이 버이러) 순이었으며 그다음에 소현세자가 앉았다.

우측(서쪽)에는 화석친왕, 다라군왕, 다라패륵이 앉았고 그다음에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앉았다.

남한산성에서 내려온 조선 신하들은 우측 모퉁이에 앉았고, 강화도에서 잡혀온 신하들은 서쪽 모퉁이에 앉았다.

이때 홍 타이지가 갑자기 단을 내려가 오줌을 싸러 간다.

이에 인조도 따라 일어나 단을 내려가 동쪽 모퉁이에 서있었다.

홍 타이지가 단 중앙으로 돌아와 남쪽을 향해 앉자 인조 또한 다시 앉기를 청한다.

좌석이 정해지자 차 한잔이 올라왔고 홍 타이지는 양국이 한 집안이 되었다며 활쏘기 대회를 벌인다.

청나라 황족들이 떠들썩하게 활을 쏘아댔고, 조선에서는 무장 정이중이 선발되어 활을 쏘았다.

활 쏘기 대회가 끝나자 술상이 들어왔고 예법대로 위차에 맞게 차려졌으나

인조의 술상은 홍 타이지의 특명으로 홍 타이지와 똑같았다.

술잔이 세 번 돌고 연회장에 큰 개 두 마리를 끌고 왔는데 홍 타이지가 직접 고기를 썰어 던져주었다.

차 한잔과 술 세잔을 마시는 연회가 끝나고 인조는 물러가겠다 청하였고

홍 타이지는 사로잡힌 왕비와 왕족, 신하들의 처자 약 250여 명을 데려오게 하였고 

이들은 다시 홍 타이지에게 3배9고두례를 행한다.

홍 타이지는 이들을 단 밖에서 인조 및 신하들과 상봉케하였는데 통곡소리가 요동친다.

이를 용골대와 마부대가 말린다.

홍 타이지는 용골대를 통해 화려한 안장을 얹은 백마와 진귀한 검은 담비 가죽옷을 인조에게 선물하였고,

가죽옷은 조선의 의복과 같지 않으니 입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인조는 담비 가죽옷을 입고 뜰에서 홍 타이지에게 사례를 표한다.

인조는 도승지 이경직을 시켜 조선의 옥새를 바쳤고 용골대는 명이 내린 고명과 책인은 왜 바치지 않느냐고 따진다.

이에 인조는 고명은 강화도로 보냈는데 행방이 묘연하고 책인은 이괄의 난 때 잃어버렸다 얼버무린다.

인조는 밭 인근에 앉아서 홍 타이지의 명을 기다렸고 

마침내 17~19시 경에 한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홍 타이지의 명이 떨어진다.

인조는 송파진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돌아가는데 청의 포로로 잡힌 남녀 1만 명이 울부짖으며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시나이까?>하였다.

자정에 마침내 한양에 도착하여 창경궁에 들어갔는데, 한양은 이미 몽고군의 대약탈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청군은 몽고군의 입궐을 엄히 금하였기 때문에 궁은 멀쩡하였고
인조를 따라온 백관들은 몽고군의 약탈을 피하여 궁에 머물렀다.


*만주어 삼전도비 번역 및 쓰기 1부~18부 https://cafe.naver.com/booheong/132621


-2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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