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의 청군의 규모 5만에 대한 잡설 병자호란 이야기

작년에 청군의 규모를 추정하면서 병자호란 참전 청나라 병력 추정 https://cafe.naver.com/booheong/157577

근거2의 경우는 약4만7천~5만이라고 하였지요.


당시 만문노당의 병부상서 요토의 징발 명령장 등에 의하면

병자호란 당시 청군은 만주족+8기몽고족+8기한족+외번몽고족+한족3왕부대를

모두 포함하여 채 4만이 안되고, 여기에 노비 병력까지 포함하면 5만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에 떠나지 않는 것이 홍 타이지가 조선 사신에게 했던 말

<조선은 아녀자의 나라인데 무얼 믿고 이러는가?>


정말 홍 타이지는 조선을 얕잡아 본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홍 타이지가 친정하고 8기 중 7기가 동원되었으며

9명의 친왕,군왕,버이러 중에 무려 6명이나 참전하였고

홍이포의 경우에는 당시 청나라 보유 홍이포 46문 중에 34문이 동원되었다고 하더군요.

해당 내용은 현재 초벌 번역으로 급히 찾아보고 있습니다.

홍이포(홍의포) 청실록 기록 中 https://blog.naver.com/gil092003/221321114795


해당 논문에 의하면 누르하치 당시의 1니루 300명의 최대 동원령은 약 150명

홍 타이지 당시의 1니루 200명의 상시 동원령은 약 60명

심지어 사르후 전투의 후금 병력은 1~2만에 불과하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누르하치 역대 병력 현황은 후금, 조선, 명의 기록을 교차 검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르하치 역대 병력 현황 https://cafe.naver.com/booheong/137698


1618년 사르후의 병력이 2만이라면 

1595년 겨우 건주 1국만 유지하던 누르하치가 명 여희원과 조선 하세국이 직접 누르하치의 거성 퍼알아를 찾아 갔을 때

10km를 마중 나와서 도열해 있던 기병5천, 보병1만 수준 정도로 회귀한 셈이죠.


물론 누르하치와 홍 타이지 당시의 상황은 여러모로 다릅니다.

우선 누르하치 당시의 니루는 거의 대부분이 신규 편성입니다.

기존에 있던 지역에서 니루를 만든 것 보다는 대부분 타부족을 침공하고 끌고 오거나

투항을 받아 거성 허투알아 인근에 모두 모아놓고 니루에 편성시킨 것이지요.

즉 1니루 300명을 우격다짐으로 만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누르하치 당시 니루의 어전은 40%가 건주여진 출신, 30%는 동해여진 출신, 20%는 해서여진 출신이다고 하더군요.

누르하치대에 끌고온 동해여진은 남녀노소 모두 합하여 5만명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동해여진은 누르하치에게 끌려오긴 했지만 거의 투항한 수준이었고,

해서여진은 누르하치가 차례대로 멸망시키고 잡아온 부족들이었습니다.

해서여진의 울아만 해도 국외 동원병력이 1만, 국내 수비 병력은 3만에 달했고요.

예허 또한 그 정도 수준이었지요.

즉 인구수가 많았던 해서여진보다 동해여진 족장들이 신규편성 니루 대장이 된 셈입니다.


요는 누르하치는 니루를 신규 편성하면서 300명 정원에서 거의 총동원 수준으로 

여진족을 동원하여 전쟁을 치렀는가?

이에 비해 홍 타이지는 장기간 전시 유지로 인해 200명 정원으로 니루를 고정하고

니루당 동원병력을 1/3 수준으로 줄였는가?

입니다.


누르하치 당시의 병사들의 참전 욕구는 이미 이민환의 책중일록에 나타나듯이

포로와 물품을 약탈하기 위해 병사들이 앞다퉈 전쟁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지요.

그러나 당시 여진족의 총인구는 제가 아무리 이리 재고 저리 재 보아도

기록상 동원 병력이나 점령한 부족들의 인축수를 계산해 보아도 총 인구수가 50만이 넘질 못합니다.

사실 50만도 굉장히 널널하게 잡은 수로

여진5국중 세력이 강성하던 예허도 멸망 시에 장정이 겨우 1만, 호구가 남녀 수만에 불과하였습니다.

타이트하게 잡으면 누르하치 당시 여진족의 총인구는 30만까지도 줄일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모두 포함한 수치가 저 정도라면 가용가능한 뽑아낼 수 있는 병력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만을 넘길 수가 없는 수준이죠.


이에 비해 홍 타이지대에는 누르하치대에 비해 외연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누르하치와는 달리 홍 타이지는 한족과 몽고족을 병사로 폭넓게 받아들였습니다.

누르하치도 이영방 등에게 한족 1만 정도를 맡기긴 하였으나 따로 팔기에 편성되진 않았는데

홍 타이지는 아예 한족+내번 몽고족까지 팔기군에 편성시켰지요.

특히나 외번 몽고를 완전히 굴복시켜 병자호란 당시에는 1만2천 외번 몽고군을 동원하기도 하였습니다.


문제는 1니루 200명당 60갑병 동원이 사실이라면 홍 타이지가 조선을 침공하고

몽고를 경유하여 명의 북경을 포위한 최대 병력은 기껏해야 5만 내외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병자호란 직후 청에 간 조선의 사신단이 청측에 전해 들은

청군의 전사자는 장교300에 병사가 7천이나 됩니다.

단 2달간의 전투로 인해 유수님의 계산에 의하면 약 16%의 손실을 본 셈입니다.


그렇다면 누르하치대 후금군은 총동원체제에서 모든 것을 걸고 움직였고

홍 타이지대 청군은 지속된 전시체계에서 현실가능한 동원령을 통해 병력을 뽑아낸 것일까요?


기껏해야 5만도 안되는 청나라 기동군에 명, 조선이 멸망 위기까지 내몰렸단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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