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 생지옥도가 펼쳐진 명 대릉하 공방전 병자호란 이야기

1631년 8월 조대수는 보병 7천, 기병 7천, 부역자 8천, 장사꾼 2천을 이끌고 대릉하성을 쌓고 있었습니다.

이 정보를 들은 홍 타이지는 1니루당 60갑 동원령을 내리고, 이중 20갑은 요동 방어를 나머지 40갑은 대릉하로 진군합니다.

대략 동원 갑병은 11200명, 여기에 몽고 8부족(코르친/아루/자뤁/바린/아오한/나이만/카라친/투멑) 2만 명도 참전합니다.

여기에 퉁양성(시 울이)이 이끄는 홍이포를 동원한 한족부대도 대략 8800명이 종군합니다.

하여 총 4만 대군이 대릉하성으로 진군합니다.

여기에 노예병 쿠툴어들도 약 1만명이 종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릉하성 공방전으로 살펴본 후금 갑병 동원 https://cafe.naver.com/booheong/168126


당시 대릉하성에는 성을 한참 만들다가 후금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여자들이나 아이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홍 타이지는 공성을 하다 병력이 많이 손상될까 염려되어

무려 3개월 동안 대릉하성을 포위하고 구원오는 명나라 군을 격파합니다.

3개월 동안 대릉하 성은 그야말로 생지옥도가 펼쳐졌는데요.

군량이 다하자 아사자가 속출하였고,

마침내 서로가 서로를 잡아 먹는 지옥도가 펼쳐졌고

부역자 8천, 장사꾼 2천은 모조리 죽었고 병사들도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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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전 포위(1631.08.07)


만문노당 1631년 8월 7일 기사中

hoton i duin dere be akvmbume ulan fetehengge. xurdeme gvsin ba. hoton ulan i siden ilan ba bi.

성 의 4 면 을 모두 구덩이 판것. 둘레 30 리. 성 해자 의 사이 3 리 이다.

ulan xumin juwe da. onco juwe da fetefi. ulan i tulergi gencehen be. den juwe da.

구덩이 깊이 2 다(두팔 벌린 길이). 폭 2 다 파고. 구덩이 의 바깥 테두리 를. 높이 2 다.

keremu arame fu sahafi. terei dorgi juwan da i dubede. onco emu da. xumin emu da emu gala ulan fetefi.

성가퀴 만들며 벽 쌓고. 그의 안 10 다 의 끝에. 폭 1 다. 깊이 1 다 1 팔 구덩이 파고.

oiloi xuxu orho birefi boihon sisafi. xurdeme akvmbume ing iliha.

표면 수수 풀 펴서 흙 뿌리고. 주변 모두 영 세웠다.

ing ni tulergi de xumin emu da. onco emu da ulan fetehe.

영 의 바깥 에 둘레 1 다. 폭 1 다 구덩이 팠다.

tuttu bekilefi dorgi niyalma tucici ojorakv. tulergi niyalma dosici ojorakv obume kaha.

그와같이 견고하게 안 사람 나가자니 되지않고. 바깥 사람 들어가자니 되지않게 되며 포위했다.


성의 4면을 모두 구덩이 판 것이 둘레 30리, 성과 해자의 사이 3리이다.

구덩이 깊이는 2다(두팔 벌린 길이), 폭은 2다 파고 구덩이의 바깥 테두리를 높이 2다 성가퀴 만들며 벽 쌓고

그 안 10다의 끝에 폭 1다, 깊이 1.5다 구덩이 파고 표면은 수수풀 펴서 흙 뿌리고 주변 모두 영 세웠다.

영의 바깥에 둘레 1다, 폭 1다 구덩이 팠다.

그와 같이 견고하게 성안의 사람 나가자니 되지 않고 바깥사람 들어가자니 되지 않게 되며 포위했다.



2. 성안에 2만4천명의 남자가 있다!(1631.08.18)


만문노당 1631년 8월 18일 기사中

fonjici moringga cooha nadan minggan. yafahan cooha inu nadan minggan bi sembi.

물으니 기 병 7 천. 보 병 또한 7 천 있다 한다.

weilere niyalma jakvn minggan. hvdai niyalma juwe minggan bi sere.

일할 사람 8 천. 장사의 사람 2 천 있다 한다.


물으니 기병 7천, 보병 또한 7천 있다 한다.

부역자는 8천, 장사꾼은 2천 있다 한다.


→ 후금군은 대릉하성 주변에 구덩이를 파고 담을 쌓아 완전히 포위합니다.

   산해관을 비롯한 주변 성들에게 계속하여 원군이 이르렀지만 후금군은 이를 모조리 격파합니다.

   마침내 8월 30일이 되자 대릉하성의 명나라 군도 포위를 뚫기 위해 성문을 열고 뛰쳐나왔으나 모조리 격퇴당하지요.

   이때 포로로 잡힌 명군을 심문하니

   이미 대릉하성은 군량이 모두 바닥나고 말 또한 7000마리 중 3/4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3. 식량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굶어죽기 시작하다(1631.08.30)


만문노당 1631년 8월 30일 기사中

hoton i dorgi mejige be fonjici. alban weilere niyalma jeku wajifi bucembi.

성 의 안 소식 을 물으니. 부역 일할 사람 양식 끝나고 죽는다.

coohai niyalma inu jeku wajihabi sembi.

군대의 사람 또한 양식 끝났다 한다.

nadan minggan morin omihon de ubu bucehe. tubi bi. bisire morin yaluci ojorakv sembi.

7 천 말 굶주림 에 일부 죽었다. 1/4 있다. 있는 말 타자니 되지않는다 한다.


성안 소식을 물으니 부역자들 양식 떨어져 죽는다. 병사 또한 양식 떨어졌다 한다.

말 7천 마리가 굶어죽고 1/4만(2천) 있다. 있는 말도 타지 못한다.



4. 포위 44일째 사람들이 말을 다 잡아 먹었다(1631.09.20)


만문노당 1631년 9월 20일 기사中

jai orin de dalingho hoton i niyalma be jafafi fonjici.

다시 20 에 대릉하 성 의 사람 을 잡아서 물으니.

jeku emu hontoho bulun. ainci nikan hule i emu tanggv hule bi sembi.

양식 1 짚더미. 아마 한족 석 으로 1 100 석 있다 한다.

nadan minggan morin buceme wajifi. ergen bisirengge juwe tanggv.

7 천 말 죽으며 끝나고. 목숨 있는것 2 100.

yaluci ojorongge nadandu isime bi sere.

타자니 되는것 70 이르며 있다 한다.

alban weilere niyalma dulin bucehe sere.

부역 일할 사람 반 죽었다 한다.

erei majige tafi bisirengge. ainci morin i jalin de tahabi.

이의 조금 연명하고 있는것. 아마 말 의 때문 에 연명한다.


다시 9월 20일에 대릉하성의 사람을 잡아서 물으니

양식 1 짚더미, 아마 한족 석으로는 100석 있다 한다.

말 7천 마리 죽고 목숨이 남은 것은 200마리며 탈수 있는 말은 70마리에 이른다 한다.

부역꾼은 반 죽었다고 한다.

이렇게 조금 연명하고 있는 것은 아마 말 때문에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5. 마지막 원군 4만이 도착하다!(1631.09.27)


만문노당 1631년 9월 27일 기사中

nikan i yafaha morin i cooha duin tumen funceme ginjeo hecen ci orin duin de tucifi.

한족의 보 기 의 군대 4 만 남짓 금주 성 으로부터 20 4 에 나가서.

orin sunja de xolingho bira be doofi.

20 5 에 소릉하 강 을 건너서.

(중략)

orin nadan de nikan i cooha dobori duici ging ni debede axxafi dalingho i baru jime.

20 7 에 한족 의 군대 밤 4 경 의 끝에 이동하고 대릉하 로 향하여 오며.

tofohon ba i debede isinjiha be karun i niyalma safi alanjiha manggi.

15 리 의 끝에 이름 을 염탐 의 사람 알고 알린 뒤에.

han. amba beile. manggvltai beile. degelei taiji. ajige taiji. erke cvhvr.

한. 암바 버이러. 망월타이 버이러. 더걸어이 타이지. 아지거 타이지. 어르커 춰훠르.

xoto age. juxen monggo i cooha. si uli efu i cooha.

쇼토 공자. 여진 몽고 의 군대. 시 울이 어푸 의 군대.

uheri juwe tumen isirakv cooha be gamame genefi tuwaci.

모두 2 만 이르지않는 군대 를 데려가며 가서 보니.


명나라의 보기병 4만 남짓이 금주서으로부터 24일에 나와서 25일에 소릉하 강을 건넜고

(중략)

27일에 명나라 군은 밤 4경에 이동하여 대릉하로 향하여 와서 15리 끝에 이른 것을 염탐병이 보고 알린 뒤에

한(홍 타이지)은 암바 버이러(다이샨), 망월타이 버이러, 더걸어이 타이지, 아지거 타이지, 어르커 춰훠르,

쇼토 공자, 여진과 몽고의 군대, 시 울이 어푸의 (한족) 군대 모두 2만 이르지 않는 군대를 데려가며 가서 보니



6. 명 4만 원군 vs 후금 2만[여진족1만5천+나머지 5천(몽고+한족]


만문노당 1631년 9월 27일 기사中

tere afaha de tob seme henduci.

그 싸움 에 정확히 한다 말하면.

nikan i cooha duin tumen. juxen i cooha emu tumen sunja minggan bihe.

한족 의 군대 4 만. 여진 의 군대 1 만 5 천 있었다.

ere gisun dabaha ekiyehe ambula akv.

이 말 지나침 부족함 크지 않다.

nikan be dailame deribuhei yaya mudan ci tere mudan de ambula waha.

한족 을 정벌하며 시작함으로 어떤 때 로부터 그 때 에 많이 죽였다.


그 싸움에 정확히 한다 말하면

한족(명)의 군대 4만, 여진의 군대 1만 5천 있었다.

이 말 지나치거나 부족함 크지 않다.

한족(명)을 정벌하며 시작함으로 어떤 때로부터 그때에 많이 죽였다.



7.포위 77일째 희망은 없다! 잡아 먹히기 전에 투항하라!(1631.10.23)


만문노당 1631년 10월 23일 기사中

tere inenggi. sirdan de bithe arafi hoton i dolo gabtaha bithei gisun

그 날. 화살 에 글 써서 성 의 안 쏜 글의 말.

(중략)

te suweni dorgi niyalma gemu hutu ofi niyalma wame jembi kai.

지금 너희의 안 사람 모두 귀신 되고 사람 죽여 먹는다 하느니라.

neneme suwe tere be wafi jembi dere.

먼저 너희 그 를 죽이고 먹었던 것이니라.

amala gvwa suwembe wafi jeterakv sindambio.

뒤에 타인 너희를 죽이고 먹지않고 풀어주겠느냐?


10월 23일 그날 화살에 글 써서 성안에 쏜 글의 말

(중략)

지금 너희의 안 사람은 모두 귀신 되고 사람 죽여 먹는다 하느니라.

먼저 너희가 그를 죽이고 먹었던 것이니라.

뒤에 다른 사람이 너희를 죽이고 먹지 않고 풀어주겠느냐?



8. 생지옥도! 먼저 백성을 잡아먹고 이젠 병사끼리 잡아먹는다(1631.10.24)


만문노당 1631년 10월 24일 기사中

orin duin de dalingho hoton ci jang i fu gebungge niyalma ukame jihe.

20 4 에 대릉하 성 으로부터 장 익 보 이름난 사람 도망치며 왔다.

tede fonjici. orin sunja. orin ninggun de nukcimbi sembi.

그에 물으니. 20 5. 20 6 에 탈출한다 한다.

neneme alban weilere niyalmai yali jembihe.

앞서 부역 일할 사람의 고기 먹었다.

te meni meni ing ni niyalma yali jembi.

지금 제각 각 영 의 사람 고기 먹는다.

coohai niyalma de bele akv.

군대의 사람 에 쌀 없다.

ambasa hafasa de emte moro juwete moro bele bi seme alaha.

대신 관리 에 각1 승 각2 승 쌀 있다 하며 알렸다.


10월 24일에 대릉하성으로부터 장익보라는 사람이 도망쳐 왔다.

그에게 물으니 (명나라군이) 25일과 26일에 탈출한다 한다.

앞서는 부역자들의 고기 먹었다.

지금은 제각각 영의 병사들의 고기 먹는다.

병사에 쌀 없다. 대신과 관리에게는 각각 1승, 2승씩 쌀 있다 하며 알렸다.



9. 포위 82일째 투항(1631년 10월 28일)


마침내 3달간 성을 지킨 조대수는 항복을 결심하고 이를 말린 부장 하가강(何可綱)을 죽이고 

그 시체를 명나라 병사들이 앞다퉈 잡아먹다.


其尸体被城中饥民分食。事后祖大寿伪报朝廷:“可纲慰阁部,献身为食

그 시체(尸体)는 성중(城中)의 기민(饥民/굶주린 백성)이 분식(分食/나눠 먹음)하였고,

사후(事后) 조대수(祖大寿)가 조정(朝廷)에 위보(伪报/거짓으로 보고함)하길

   <하가강(可纲)이 각부(阁部)를 위로(慰)하기 위해 헌신(献身/몸을 바침)하여 식(食)하게 하였다.>



-이날 조대수는 투항하여 홍 타이지를 알현하고 자신을 금주성으로 보내주면

금주성을 무혈점령하게 해주겠다고 홍 타이지를 안심시키고 단신으로 금주성으로 들어가 후금에 대한 항전을 계속한다.

홍 타이지는 10년 후 다시 금주를 포위하였고 금주성은 다시 한번 지옥도가 펼쳐지게 된다.

결국 조대수는 홍 타이지에게 투항하였고, 청의 무장들은 모두 조대수의 처형을 원하였으나

홍 타이지는 조대수를 용서하였고 조대수는 진심으로 청에 투신하여 조국 명과의 전쟁에 나서게 된다.


-한편 식인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대릉하성 병사들은 후금의 충실한 병사들이 되어 조국 명나라 동족들을 죽인다.



-끝-


덧글

  • 외세결탁 신라와 한국 2018/10/31 00:24 #

    끔찍하군요.
    한나라가 왕험성을 포위했을 때나 왕씨고려가 묘청이 장악한 평양성을 포위했을 때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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