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선봉대 병력 규모를 통한 청군5만 증명 병자호란 이야기



만문노당 1636년 12월 3일 기사中

○ ice ilan de. boigon i jurgan i aliha amban mafuta.

○ 이처 이란 더. 보이곤 이 주르간 이 아리하 암반 마푸타.

○ 초 3 에. 호 의 부 의 승 정 마푸타.

gabsihiyan coohai amban loosa xongkoro baturu i jergi ambasa de ilan tanggv cooha afabufi.

갑시햔 초오하이 암반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 이 저르기 암바사 더 이란 탕우 초오하 아파부피.

선봉 군대의 암반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 의 직위 암반들 에 3 100 군대 맡기고.

juleri hvdai niyalma arame holtome dobori inenggi akv genefi 

주러리 후다이 냘마 아라머 홀토머 도보리 이넝이 아쿠 거너피

앞에 장사의 사람 만들며 속이며 밤 낮 없게 가서

solho i wang ni tehe wang ging hecen be ka seme unggihe.

솔호 이 왕 니 터허 왕 깅 허천 버 카! 서머 웅이허.

고려 의 왕 이 사는 왕 경 성 을 포위하라! 하며 보냈다.

mafuta. loosa xongkoro baturu sei sirame hoxoi erke cin wang.

마푸타.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 서이 시라머 호쇼이 어르커 친 왕.

마푸타.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 등의 다음 호소이 예(豫) 친 왕.

gvsai beise xoto. nikan de bayarai cooha emu minggan afabufi.

구사이 버이서 쇼토. 니칸 더 바야라이 초오하 어무 밍안 아파부피.

기의 버이서 쇼토. 니칸 에 바야라의 군대 1 천 맡기고.

solho i wang ging hecen be ka seme unggihe.

솔호 이 왕 깅 허천 더 카! 서머 웅이허.

고려 의 왕 경 성 을 포위하라! 하며 보냈다.


 (1636년 12월) 3일에 호부의 승정 마푸타와 선봉 군대의 암반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의 

동급 암반들에 300 군대 맡기고 앞에 장사의 사람 만들며 속이며 밤낮 없게 가서

   <고려의 왕이 사는 왕경성(한양)을 포위하라!>

하며 보냈다.

마푸타와 로오사 숑코로 바투루 등의 다음에는 호소이 예친왕(도도)와 기의 버이서 쇼토 및 니칸에

바야라의 군대 1천 맡기고

   <고려의 왕경성(한양)을 포위하라!>

하며 보냈다.


1차 선봉대 마푸타+로오사 300명

2차 선봉대 도도+쇼토+니칸 바야라 1천

이라고 분명히 기록하였습니다.


만주어 만문노당은 1636년 12월이 마지막이므로 한문 청실록 1월 16일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16일

○丙辰命碩翁科羅巴圖魯勞薩及吳拜等齎敕率前鋒全軍還盛京諭留守和碩鄭親王濟爾哈朗多羅武英郡王阿濟格

多羅饒餘貝勒阿巴泰等曰去年十二月初八日首隊前鋒兵已渡義州鎮江初九日黎明和碩豫親王多鐸率每牛彔甲士三名

多羅貝勒岳託率每牛彔甲士五名並以次相繼而渡初十日朕率大軍渡江首隊前鋒兵於十二月十四日將至朝鮮王京城

○병진일(丙辰)에 명(命)하여 석옹과라(碩翁科羅) 파도로(巴圖魯) 로살(勞薩)은 

오배(吳拜) 등(等)과 더불어 재칙(齎敕/칙서를 지님)하여 전봉(前鋒/선봉)의 전군(全軍)을 인솔(率)하여

성경(盛京)으로 귀환()하여 유수(留守/남아 지킴)하는 화석정친왕(和碩鄭親王) 제이합랑(濟爾哈朗),

다라무영군왕(多羅武英郡) 아제격(阿濟), 다라요여패륵(格多羅饒餘貝勒) 아파태(阿巴泰) 등(等)에게 

유지(諭)를 내려 말하길

거년(去年/지난해) 12월 초 8일에 수대(首隊/1차 선봉대)와 전봉(前鋒/선봉)의 병(兵)이 

이미(已) 의주(義州)의 진강(鎮江/압록강)을 도(渡/건넘)하였고,

초 9일 여명(黎明/동틀 무렵)에 화석예친왕(和碩豫親王) 다탁(多鐸)이 매(每) 우록(牛彔) 갑사(甲士) 3명씩을 

인솔(率)하고,

다라패륵(多羅貝勒) 악탁(岳託)은 매(每) 우록(牛彔) 갑사(甲士) 5명씩을 인솔(率)하고,

나란히 이차(以次/순서대로)로 상계(相繼/서로 이어나감)하여 도(渡/건넘)하였다.

짐(朕)은 초 10일에 대군(大軍)을 인솔(率)하여 도강(渡江)하였다.

수대(首隊/1차 선봉대)와 전봉(前鋒)의 병(兵)은 12월 14일에 장차(將) 조선(朝鮮) 왕경성(王京城)에 이르니


○ 1637년 1월 16일에 명을 내려 석옹과라 파도로(숑코로 바투루) 로살(로오사)은 오배(우바이) 등과 더불어

칙서를 지니고 선봉의 전군을 인솔하여 성경(청의 수도 심양)으로 귀환하게 하였다.

본국에 남아 수비하던 화석정친왕(호쇼이 우전 친왕) 제이합랑(지르갈앙), 다라무영군왕(도로이 바투루 균왕) 

아제격(아지거), 다라요여패륵(doroi bayan beile) 아파태(아바타이) 등에게 유지를 내려 말하길

   <지난해 12월 8일에 수대(1차 선봉대, 마푸타의 300기병)와 선봉의 병력이 이미 의주의 진강(압록강)을 건넜고 

    9일 동틀 무렵에 화석예친왕(호쇼이 어르커 친왕) 다탁(도도)이 1 우록(니루)당 갑사 3명씩을 인솔하고

    다라패륵(도로이 버이러) 악탁(요토)은 1 우록당 갑사 5명씩을 인솔하고 나란히 순서대로 서로 이어나가 

    강을 건넜다.

    짐은 10일에 대군을 인솔하여 도강하였다.

    수대와 선봉의 군대는 12월 14일에 장차 조선 왕경성(서울)에 이르렀는데


2차 선봉대 도도가 1니루당 갑사 3명씩 인솔했다고 나옵니다.


1병자호란 청군5만? 만주족+몽고족 정규군(요토의 병력 동원 명령장) 연구 

https://cafe.naver.com/booheong/167997


를 살펴보면 당시 청의 총 니루수가 320~330니루라 추정하였지요.

이를 갑사3명씩으로 계산하면 960~990명입니다.

만문노당 12월 3일 기사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즉 병자호란 청의 전군은 요토의 병력 동원령에 의해 총합 5만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당시 니루는 2차 선봉대 도도의 1니루 3갑사를 통해 약 333니루 정도였음이 확인되죠.

덤으로 갑사는 갑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야라(호군)도 포함됨으로 병종만을 뜻하지 않고

정규군을 뜻한다고 볼수있습니다.

또한 3차 선봉대 요토와 양구리의 총합이 3천인데,

요토는 1니루 갑사5명씩임으로 333니루라 생각하면 1665명,

3차 선봉대 양구리의 병력은 약 1335명이라고 추정됩니다.

물론 320니루라 하면 요토는 1600, 양구리는 1400명이 되네요.

이를 통해 광교산 전투 당시 전사한 양구리(양고리)의 병력도 얼추 계산이 됩니다.



결론 : 병자호란 청나라 군은 약5만이 거의 확실하다고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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