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홍이포 수량 파악 2부(완료) 병자호란 이야기

병자호란에서 청이 가져온 홍이포의 수량을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1편을 통해 후금은 최초로 1631년 8월의 대릉하성 공방전에 홍이포를 사용하였습니다.

1631년까지 보유 홍이포는 6문으로 추정되며, 대장군포는 54문으로 추정됩니다.


병자호란 홍이포 수량 파악 1부 https://cafe.naver.com/booheong/168136


그럼 계속하여 1637년까지의 청실록의 홍이포 기사를 모두 모아 1차 초벌번역해 보겠습니다.


3. 홍이포 자체 제작에 성공하다


1633년 3월 19일 기사中

○以王天相創鑄紅衣礮功。及金世昌繼造不用蠟輒鑄成。俱陞備禦。授董成功為千總

○왕천상(王天相)을 비로소 쇠를 부어 홍의포(紅衣礮)를 만든 공으로써

김세창(金世昌)과 더불어 계속(繼)하여 제조(造)하게 하였다.

납(蠟)을 사용(用)하지 않고 쉽게 주성(鑄成/주조함)하였다.

모두 비어관(備禦)으로 승(陞/올림)하였고, 동성공(董成功)을 천총(千總)으로 삼아 제수(授)하였다.


1633년 10월 7일 기사中

○丙寅。大閱。時滿洲行營兵未出。八旗護軍、舊漢人馬步軍、滿洲步軍俱集。分八旗護軍為左右翼。

舊漢人馬步軍為一營。滿洲步軍為一營。俱四面環列。前設紅衣礮三十位。及各種大小礮。隊伍既成。乃奏聞。

○병인일(丙寅)에 대열(大閱/황제의 군 사열)하였다.

이때 만주(滿洲)의 행영병(行營兵)은 미출(未出)하였고, 8기(旗)의 호군(護軍/바야라), 

구한인(舊漢人) 마보군(馬步軍), 만주(滿洲) 보군(步軍)이 모두 집(集)하였고,

8기(旗)의 호군(護軍)을 나눠 좌우익(左右翼)으로 삼았고,

구한인(舊漢人) 마보군(馬步軍)을 1영(營)으로 삼았으며,

만주(滿洲) 보군(步軍)을 1영(營)으로 삼았고, 모두 4면(面)으로 환열(環列)하였고,

앞에는 홍의포(紅衣礮) 30위(位)와 더불어 각종(各種) 대소(大小) 포(礮)를 설치(設)하여

대오(隊伍)가 이미 성(成)하자 이윽고 주문(奏聞)하였다.


1633년 10월 17일 기사中

授丁啟明為二等參將。啟明係明末弁。被擒收養。因善鑄紅衣礮故授是職

정계명(丁啟明)을 이등참장(二等參將)으로 삼아 제수(授)하였다.

정계명(啟明)은 명(明) 말변(末弁)에 관계(係)되어, 피금(被擒/포로로 잡힘)하고 수양(收養/거둬 돌봄)하였는데,

홍의포(紅衣礮)를 잘 주조(鑄)함으로 인(因)하여 이런 연고(故)로 이 직(職)을 제수(授)하였다.


→ 마침내 1633년이 되자 한족 왕천상, 김세창, 정계명 등의 기술자들이 홍이포 자체 제작에 성공합니다.

   기술자들은 모두 승진하였습니다.

→ 1633년 10월 7일에 홍 타이지가 군을 사열하였는데 이 자리에 홍의포 30문까지 배치되었네요.

   2년 만에 6문에서 30문으로 수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4. 우전 초오하(한족군)에게 18문 이동수레 제작을 명하다.


1634년 5월 19일 기사中

又諭漢軍甲喇章京圖瞻達爾漢曰。

朕因爾等誠信。特令留守。新附官員。可時加防範。

一切軍器宜加意修整。隨營紅衣礮一十八位。俱速令造車完備。

또 한군(漢軍) 갑라장경(甲喇章京) 도첨달이한(圖瞻達爾漢)에게 유지(諭)하여 말하길

짐(朕)이 너희들의 성신(誠信)으로 인(因)하여, 유수(留守)를 특령(特令)하여, 관원(官員)을 신부(新附)하였으니,

가히(可) 이때 방범(防範/방비의 계책)을 가(加)하고,

일체(一切)의 군기(軍器)는 의당(宜) 수정(修整/수선함)을 가의(加意/특별히 중시함)하여야 하며,

수영(隨營)은 홍의포(紅衣礮) 18위(位)는 모두 신속(速)히 조거(造車/수레를 만듦)를 완비(完備)해야만 한다.


→ 이 기록을 토대로 한군(우전 초오하)가 보유한 홍이포가 30문이고,

   이중 18문은 이동식이라고 추정하였나 봅니다.



5. 병자호란(홍이포 수송)


홍이포를 수송할 청의 6차 부대의 편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두두 : 1니루당 갑사3명, 여진족+내번몽고족 약 960명~990명

2. 석정주 한족 부대(우전 초오하) : 약 1만

3. 한족 3왕(공유덕,경중명,상가희) : 1340명

→ 총합 12300~12330명


1636년 12월 9일 기사中

○是日命多羅安平貝勒杜度恭順王孔有德 、懷順王耿仲明 、智順王尚可喜 、昂邦章京石廷柱、馬光遠等、

率每旗梅勒章京一員。每牛彔甲士三人。及石廷柱旗下漢軍在後。護送紅衣礮、將軍礮。法熕鳥鎗車牌、輜重等物

○이날에 명(命)하여 다라안평패륵(多羅安平貝勒/도로이 얼어훈 버이러) 두도(杜度/두두),

공순왕(恭順王) 공유덕(孔有德), 회순왕(懷順王) 경중명(耿仲明), 지순왕(智順王) 상가희(尚可喜),

앙방장경(昂邦章京/암반 장긴) 석정주(石廷柱), 마광원(馬光遠) 등(等)은

매(每) 기(旗)마다 매륵장경(梅勒章京/머이런 장긴) 1원(員)과

매(每) 우록(牛彔/니루)의 갑사(甲士) 3인과 더불어 석정주(石廷柱) 기(旗) 관하(下) 한군(漢軍)을 인솔(率)하여,

재후(在後/뒤에 남음)하여 홍의포(紅衣礮), 장군포(將軍礮), 법궁(法熕), 조창(鳥鎗), 차패(車牌), 치중(輜重) 

등(等)의 물건(物)을 호송(護送)하라!


1636년 12월 16일 기사中

大軍所帶紅衣礮、將軍礮、火器戰車、爾寧不之見耶。朕若速回、胡為攜此重器而來。

대군(大軍)이 소대(所帶)한 홍의포(紅衣礮), 장군포(將軍礮), 화기전차(火器戰車)를

너는 어찌 보지 못하였느냐?

짐(朕) 만약(若) 속회(速回/빨리 돌아감)한다면 이 중기(重器)를 어찌 끌고 왔겠느냐?


1637년 1월 10일 기사中

○是日、多羅安平貝勒杜度等護送紅衣礮將軍礮、火藥重器等車至。奏言、初六日、遣人往視臨津江渡口回報云冰已盡解。

即步行亦難。臣意此非架橋之時輜重何由得渡心甚憂之。及將至渡口之前一夜。天氣清朗。忽然陰翳。

雨雪交作寒甚。冰既泮復凝正月初七日。至臨津江向以徒步不可行者數萬軍士。坦然徑渡矣

上曰禎祥洊至。皆天意也

○이날에, 다라(多羅) 안평패륵(安平貝勒) 두도(杜度) 등(等)이 홍의포(紅衣礮)와 장군포(將軍礮) 및

화약(火藥) 중기(重器) 등(等)의 차(車/수레)를 호송(護送)하여 이르렀다.

주언(奏言/아뢰어 말함)하길

   <초(初) 6일에, 견인(遣人/사람을 보냄)하여 임진강(臨津江) 도구(渡口/나루터)를 왕시(往視/가서 봄)하게 하였는데,

    회보(回報/돌아와서 보고함)하여 말하길 얼음이 이미(已) 모두 녹아,

    곧 보행(步行) 역시(亦) 난(難/어려움)하다 하였습니다.

    신(臣)의 생각에 이는 가교(架橋/다리를 놓음)의 때가 아니라면 

    치중(輜重/군수품)을 어떤 도리로 득도(得渡/건넘을 얻음)하겠는가? 하며 

    마음이 심히(甚) 우(憂/근심함)하였습니다.

    도구(渡口/나루터)의 앞에 이르러 하룻밤을 보내니, 천기(天氣)가 청랑(清朗/맑음)하였는데,

    홀연히(忽然) 음예(陰翳/하늘에 구름이 덮여 어두움)하였고, 

    우설(雨雪/눈과 비)이 교작(交作/썪여 내림)하여 한심(寒甚/매우 추움)하였고,

    얼음이 이윽고 반(泮/물가)이 복응(復凝/다시 얼어붙음)하였습니다.

    정월(正月) 초(初) 7일에, 임진강(臨津江) 방향(向)에 이르러 

    도보(徒步)로 건너지 못하던 수만(數萬) 군사(軍士)가 탄연(坦然/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음)하게 

    경도(徑渡/가로질러 건넘)하였나이다.>

상(上/임금, 청 태종)이 말하길

   <정상(禎祥/상서로운 조짐)이 천지(洊至/연거푸 이름)하였으니, 모두 천의(天意/하늘의 뜻)이로다!>


1637년 1월 22일 기사中

○壬戌。往取江華島和碩睿親王多爾袞遣納敏代音楚興格內來奏云我軍至島朝鮮有兵船四十餘於渡口迎戰

我軍用紅衣礮攻擊。敵不能當東西逃散黎明我軍乘船進攻。入江華島殺鳥鎗手百人又擊殺伏兵千餘

○ 임술일(壬戌)에, 강화도(江華島)에 왕취(往取/가서 취함)한 화석(和碩) 예친왕(睿親王) 다이곤(多爾袞)이 보낸

납민(納敏), 대음초(代音楚), 흥격내(興格內)가 내주(來奏/와서 아룀)하여 말하길

   <아군(我軍)이 섬에 이르니 조선(朝鮮)의 병선(兵船) 40여 척이 있어

    도구(渡口/나루터)에서 영전(迎戰/맞아 싸움)하였습니다.

    아군(我軍)이 홍의포(紅衣礮)를 사용(用)하여 공격(攻擊)하니,

    적(敵)이 당(當)함이 불능(不能)하여 동서(東西)로 도산(逃散/도망쳐 흩어짐)하였습니다.

    여명(黎明/동틀 무렵)에 아군(我軍)이 승선(乘船/배를 탐)하고 진공(進攻/공격하여 나아감)하여

    강화도(江華島)에 들어가 조총수(鳥鎗手) 100인을 살(殺)하였고,

    또 복병(伏兵) 천여(千餘)를 격살(擊殺/공격하여 죽임)하였습니다.>


1637년 2월 2일 기사中

○壬申。

上自朝鮮班師命和碩睿親王多爾袞多羅安平貝勒杜度、率滿洲蒙古漢人大軍。攜所俘獲在後行又命貝子碩託、

恭順王孔有德 、懷順王耿仲明 、智順王尚可喜 、率每牛彔甲士四人及三王下全軍舁紅衣礮。十六位。

並朝鮮戰船五十艘往取明皮島

○임신일(壬申)에, 상(上)이 조선(朝鮮)으로부터 반사(班師/회군)하였다.

명(命)하여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호쇼이 머르건 친왕) 다이곤(多爾袞/도르곤),

다라안평패륵(多羅安平貝勒/도로이 얼허운 버이러) 두도(杜度/두두)는

만주(滿洲), 몽고(蒙古), 한인(漢人)의 대군(大軍)을 인솔(率)하고

부획(俘獲/포로)를 휴(攜/끎)하고 후미(後)에서 행군(行)하게 하였다.

또 명(命)하여 패자(貝子/버이서) 석탁(碩託/쇼토), 공순왕(恭順王) 공유덕(孔有德), 회순왕(懷順王) 경중명(耿仲明),

지순왕(智順王) 상가희(尚可喜)는 매(每) 우록(牛彔/니루)마다 갑사(甲士) 4인(人)과 더불어

3왕(王) 예하(下) 전군(全軍)을 인솔(率)하여, 

홍의포(紅衣礮) 16위(位)와 아울러 조선(朝鮮) 전선(戰船) 50소(艘) 를 거(舁/듦)하고

명(明) 피도(皮島/가도)를 왕취(往取/가서 취함)하게 하였다.


1637년 2월 5일 기사中

令八旗造小船八十艘。遣和碩睿親王多爾袞多羅安平貝勒杜度。率每牛彔甲士十人。取朝鮮王妻子所居之江華島。

和碩睿親王等。於正月二十二日。至江華島。我舟師將渡海時。江華島敵船。約有百艘。列為兩翼。

我舟師從中衝入。連發紅衣礮。敵船兵役。不能抵敵、逃去。於是我兵登岸。朝鮮兵來迎。敗之又擊敗其兵約千人。

8기(旗)로 하여금 소선(小船) 80소(艘)를 건조(造)하게 하였고,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 다이곤(多爾袞)과 다라안평패륵(多羅安平貝) 두도(勒杜)를 보내

매(每) 우록(牛彔/니루) 갑사(甲士) 10인을 인솔(率)하여 도(度/건넘)하여,

강화도(江華島)에 거주(居)하는 조선왕(朝鮮王)의 처자(妻子)를 취(取)하게 하였다.

화석예친왕(和碩睿親王) 등(等)이 1월 22일에 강화도(江華島)에 이르러,

아군(我)의 주사(舟師)가 장차(將) 도해(渡海/바다를 건넘)할 때에, 

강화도(江華島)의 적석(敵船)은 약(約) 100소(艘)가 양익(兩翼)으로 배열(列)해 있었다.

아군(我)의 주사(舟師)가 쫓아 가운데로 충입(衝入/공격하여 들어감)하여 홍이포(紅衣礮)를 연발(連發)하니, 

적선(敵船)의 병역(兵役)이 저적(抵敵/대적함)이 불능(不能)하여 도거(逃去/도망쳐 가버림)하였다.

이에 아병(我兵)이 등안(登岸/해안가에 올라감)하니 조선병(朝鮮兵)이 내영(來迎/맞이하여 옴)하였는데 

패(敗/깨트림)하였고, 또 其 그 병(兵) 약(約) 1000인을 격패(擊敗/공격하여 깨트림)하였다.


→ 석정주의 우전 초오하(한족군)가 보유한 홍이포 18문

→ 한족3왕이 가도 공격에 동원한 홍이포 16문

   하여 총합 34문이라고 추정하였다고 생각합니다.


2부 결론

1. 1633년 후금은 홍이포 자체 생산에 성공한다.

2. 1636년 병자호란 직전 후금의 홍이포 보유량은 총 46문 정도이다.

3. 병자호란에 동원한 홍이포는 우전 초오하(한족군) 18문+한족3왕 16문 총합 34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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