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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쓰지 말라고!> 사관<난 써야겠는데?>

장소는 고립된 남한산성.인조의 출성이 결정되고 인조는 청이 요구한 명나라 고명과 책인 반납 문제, 가도 공격에 동원할 병력 문제 등을 상의하기 위해 김류와 최명길을 부릅니다.이미 전날 정온은 절구시를 읇고 칼로 배를 찔러 자결을 시도했는데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인조에게 명나라 고명과 책인은 절대 반납해서는 안되며가도 공격도 절대 해서는 ...

홍 타이지가 요구한 1차 조공품목

병자호란 막바지인 1637년 1월 28일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와 투항하기로 통보하자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홍 타이지는 서신을 보내 매년 1차로 바칠 조공품목을 보냅니다.그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8일每年進貢一次其方物數目。黃金百兩白銀千兩水牛角二百對豹皮百張鹿皮百張茶千包水獺皮四百張青黍皮三百張。胡椒十斗腰刀二十六口順刀二十口蘇木二...

병자호란 청실록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

병자호란 청실록 17부-인조 출성을 결심하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의 피해 상황 및 삼학사의 처형

병자호란이 끝나고 몇 달 후인 1637년 7월 청나라로 갔던 사신단이 돌아옵니다.이때 사신단은 인조에게 병자호란 당시 청군의 피해 상황 및 삼학사의 처형에 대해 보고합니다.한편 인조는 사신단이 청나라 관리들과 술을 마신 일에 대해 대노하기도 하였습니다.당시 삼학사는 홍익한, 윤집, 오달제인데 홍익한은 홍 타이지가 척화대신을 내놓으라 협박하는 통에최명길이...

병자호란 청실록 16부-폐하(홍타이지)는 신(인조)의 하늘이니 재조지은을 베푸소서!

병자호란 잔인하게 떼죽음 당한 어린이들

병자호란 당시 서울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서울 백성 중에서도 어린아이의 피해가 가장 극심하였습니다.이는 워낙 청군 선봉대의 진격이 빠르기도 하였고 김자점이 파발을 중간에 막는 바람에미처 피난령을 내릴 시간적 여유가 급박하였기 때문입니다.한양 백성 상당수가 청군과 몽고군의 포로가 되었는데청군과 몽고군은 젊은 사람들만 포로로 사로잡고 노인들과 어린아...

광교산 전투 오류 정정(양구리가 주력은 아니었다!)

병자호란 청실록 15부-강화도가 함락되었다! 안 나오면 네 식솔은 어찌 되겠느냐?

병자호란 직전 심각한 청나라의 식량 사정

1636년 11월 25일 동짓날에 청 태종 홍 타이지는 조선 정벌을 선포합니다.그 이전인 10월에 이미 외번 몽고 동원령을 예고한 상태였지요.그런데 홍 타이지는 청 내국의 식량 사정이 너무 안좋아 외번 몽고 부족장들에게 <강물이 얼면 즉각 출병할 것이니 그전엔 청으로 오지 마라~>심지어는 <부족장들도 고두하러 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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