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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청실록 21부-삼전도(2)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

삼배구고두례(삼전도 투항의식)

흔히 삼전도의 치욕이라 불리는 인조가 청 태종 홍 타이지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던 삼배구고두례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고자 합니다.요근래 영상매체에서 간간이 다루는 삼전도의 3배 9고두례는청 태종이 인조를 모욕하거나 치욕스럽게 하려 했다는 식으로 묘사가 되었는데요.심지어는 인조가 땅에 머리를 처박고 피를 철철 흘리는 묘사도 하더군요.실상 ...

병자호란 청실록 19부-조선은 청의 영원한 속국이 될 것이니라!

인조<쓰지 말라고!> 사관<난 써야겠는데?>

장소는 고립된 남한산성.인조의 출성이 결정되고 인조는 청이 요구한 명나라 고명과 책인 반납 문제, 가도 공격에 동원할 병력 문제 등을 상의하기 위해 김류와 최명길을 부릅니다.이미 전날 정온은 절구시를 읇고 칼로 배를 찔러 자결을 시도했는데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인조에게 명나라 고명과 책인은 절대 반납해서는 안되며가도 공격도 절대 해서는 ...

홍 타이지가 요구한 1차 조공품목

병자호란 막바지인 1637년 1월 28일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와 투항하기로 통보하자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홍 타이지는 서신을 보내 매년 1차로 바칠 조공품목을 보냅니다.그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청실록 태종문황제 1637년 1월 28일每年進貢一次其方物數目。黃金百兩白銀千兩水牛角二百對豹皮百張鹿皮百張茶千包水獺皮四百張青黍皮三百張。胡椒十斗腰刀二十六口順刀二十口蘇木二...

병자호란 청실록 18부-인조 눈물로 삼학사를 죽음의 길로 보내다!

안녕하세요. 길공구입니다.그간 원초적 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의 맨 마지막 부분, 즉 1636년 11월~12월 병자호란 관련 부분을 번역하여 연재하였는데요.만주어 사서 만문노당은 1636년이 마지막입니다.하여 이후의 내용은 한문사서 청실록 태종 문황제실록을 틈틈이 번역해 볼까 합니다.1부-청태종 남한산성을 둘러보다2부-아녀자같이 숨느냐? 만세의 웃...

병자호란 청실록 8부-목을 길게 빼고 패왕 대국황제의 말씀만 기다리고 있나이다!

인조가 장관에 불과한 용골대와 맞절하다(병자호란 전후 예법 비교)

조선에 주로 사신으로 오던 용골대, 만주어로는 잉월다이(잉궐다이/inggvldai), 한문으로는 영아이대(英俄爾岱), 현 중국어로는 잉어르다이[Yīng é ěr dài]입니다.용골대의 직위는 호부 승정, 호부의 장관이었습니다.군사적인 지위로는 1기의 궈사 어전(기주)이었고요.용골대가 홍 타이지의 신임을 받던 신하이며 청나라 8기의 주인인 왕과 ...

팩트체크! 인조는 남한산성을 탈출하다 말에서 떨어졌나?

만문노당만문노당 1636년 12월 25일 도도의 보고서 中13일에 고려(조선)의 왕의 아내 두 명과 아들을 섬(강화도)에 보냈다.왕의 자신과 큰 아들(세자)이 가자니 겨를이 없었다.우리의 군대를 파거에 이르고 섬(강화도)의 나루터를 군대 보내고 지키게 하라 하였다! 하며 듣고서산성에 들어가 있다.14일에 우리의 군대를 왕경성(한양)에 이른다! 하며 듣고...

병자호란 만주어 만문노당 47부-300명으로 남한산성을 포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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