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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고 도도 열전 4부-명의 마지막 희망을 소멸시키다! 송산전투!

청사고 도르곤 열전 4부-명나라 마지막 야전! 송금지전!

송산전투 명군을 향해 조총 5만3천발을 쏜 조선군

1641년 8월 송산전투에는 유림이 이끄는 조선군 약 2500명도 참전하였는데요.전투가 벌어진 직후 조선에 보고된 보고서에 조선군의 전사자와 소비 군량, 소비 탄환이 기록되어 있네요.조선왕조실록 1641년 9월 21일 기사中명ㆍ청의 전투 상황과 아군의 피해 상황대명(大明)의 군사가 청인과 싸워 전세가 불리하자 기병(騎兵)은 도주하여 송산보(松山...

청사고 도르곤 열전 3부-4차 북경포위전(산해관 따위!!!)

명군으로 참전한 몽고족 포로 학살!

송산전투가 끝난 지 14년 후 이곳을 지나던 왕자 인평대군 이요(인조의 3남)는 송산전투를 회상하며 일기를 남겼는데이 기록에 송산전투 당시 명군에 종군했던 몽고군 수천명이 청나라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청군이 이들의 무장을 해제한 후 모조리 죽였다는 내용이 나오네요.몽고군은 맨손으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몰살...송산, 금주 전투에는 청나라 ...

대릉하성 공방전으로 살펴본 후금 갑병 동원

1631년 8월 대릉하성 전투에 후금 홍 타이지는 1니루당 갑병 60의 동원령을 내렸고40명은 출정, 20명은 본국 수비에 동원하였습니다.당시 후금의 니루가 총 280여 개였으니동원 총 병력은 16800명, 이중 대릉하로 진군한 병력은 11200명, 본국 수비는 5600명이 담당한 셈입니다.한편 당시 외번 몽고 8개 부족에서 동원되어 후금군에 종군한 몽...

병자호란 당시 요동으로 진군한 명군 7만(조선아 버텨줘!)

병자호란 직전 명나라 북경에 사신으로 갔던 김육(金堉)의 조경일록(朝京日錄)에 의하면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명나라 군은 그 틈을 이용하여 요동을 공격하고자 하였더군요.실행자는 금주(錦州)에 있던 조대수(祖大壽)인데, 후금 시절에도 후금군의 공격을 받아 거짓 항복을 할 정도로 수세적인 입장이었습니다.그러던 그가 청의 본군이 조선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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